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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좋다 이곳으로 와라’연쇄 귀농믿음영농조합법인과 연계 새로운 삶 꾸려 도시에서 살다가 귀농을 꿈꾸는 사람들은 오랫동안 전국의 농촌을 물색한다. 남은 인생을 뿌리 내릴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한 그들의 고민과 노력은 일반인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가 되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장소에 뿌리를 내리는 경우도 있다. 경치에 푹 빠져서 귀농지를 결정하는 경우도 있고, 그냥 그곳 사람들이 좋아서 귀농지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다. 자신이 희망하는 직종의 전문성을 찾아 귀농을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군동면 호계리에서 버섯을 키우는 귀농인 강홍철씨 부부는 자신이 희망하는 직종의 전문성을 찾아 강진으로 귀농을 한 경우다. 지난해 12월 자녀들을 데리고 훌쩍 강진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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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6.24 1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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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로 바다가 저주스러운 요즘이다. 배가 뒤집혀 침몰하면서 지금까지 확인된 사망자만 292명에 달하고, 아직까지 찾지 못한 실종자가 12명에 이른다. 바다는 그렇게 끔직한 장소였다. 세월호 슬픔이 온 나라를 휘감고 있는 요즘은 우연히도 호남사람들이 제주도에 본격적인 이주를 시작한지 50주년을 맞은 시기였다. 60년대 중반 큰 가뭄을 겪은 호남사람들이 먹고 살 곳을 찾아 작은 철선에 몸을 싣고 제주도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바다는 그들이 넘어야 할 큰 고난이였다. 제주도에 도착해서는 비참한 삶의 연속이였다. 그들은 어떻게 제주도에 뿌리를 내리고 정착했을까. 호남인들의 제주이주 50주년을 맞아 그들의 삶과 역사를 조명해 본다./편집자 주. 뱃길은 변함이 없다. 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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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6.24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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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쪽 입구는 데크계단 시설강진쪽도 편의시설 보강해야전국의 산악인들이 가장 난코스로 꼽는 곳중의 하나가 설악한 공룡능선이다. 마치 공룡의 등처럼 생긴 바위들이 절경을 자랑하는 공룡능선은 산세가 험하기 때문에 산악인들중에서도 상급 산악인들에게 추천되는 코스다.그런데 공룡능선을 다녀온 사람들도 혀를 차는 곳이 있다. 바로 도암과 신전에 걸쳐 있는 덕룡산이다. 도암 소석문~신전 난농원 자리, 다시 이곳에서 해남 오소재로 이어지는 10시간 코스는 전국의 산악인들에게 최고의 난코스로 통하고 있다. 해발 433m의 얕은 산이지만 용의 등처럼 날카로운 바위들이 오르락 내리락 곡선을 그리며 험한 등산로를 형성하고 있어 이곳을 다녀온 등반객들은 누구나 녹초가 되곤 한다.산악인들은 그러나 이런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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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6.2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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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광산구의회 김광란, 광명시의회 김익찬 당선자도 강진출신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전국적으로 강진출신 인사들이 여럿 당선의 영광을 안았다. 우선 서울에서 구청장이 한명 나왔고 시의원이 4명, 구의원이 4명, 경기도의원이 2명, 광명시의원이 1명, 광주광역시 광산구의원 1명등이 나왔다. 파악되지 않고 있는 사람들도 상당수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서울 동작구청장 이창우 당선인 성전면 출신우선 서울 동작구청장에 당선된 이창우(43)씨도 성전면 출신이다. 새정치민주연합 공천을 받은 이 당선인은 총 투표수 21만4249표 가운데 10만7179표(52.39%)를 얻어 8만7915표(42.97%)를 얻은 장성수 새누리당 후보를 제치고 당선됐다.이 당선인은 “구민 모두가 사회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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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4.06.17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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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벗고 올라가고 쓰레기 되가져가고 똥오줌 안싸야 깨끗”강진에는 도로변 곳곳에 정자가 많이 지어져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하라는 것이다. 여름철이면 정자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지역주민들은 물론 관광객들도 잠시 쉬어가기 좋은 곳이기 때문이다.그런데 누구나 편리하고 안락하게 이용해야 할 정자들이 이용객들의 무질서한 행위로 누구나 편안하게 사용하지 못하는 곳이 되고 있다. 정자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는 것은 예사이고 정자 주변에 음식물 쓰레기등을 버려 다음에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큰 불쾌감을 주고 있다.칠량에서 대구로 넘어가는 곳에 자리잡은 정자. 봉황앞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산 기슭에 한옥양식으로 멋스러운 정자가 지어져 있다. 대로변에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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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6.10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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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덕의 위행량씨 일본에서 가져다 처음 심어청자박물관 주변 녹나무가 6월로 들어서면서 푸르름을 더하고 있다. 이곳의 녹나무는 150여그루에 달한다. 구경하기 어려운 녹나무 군락지다. 요즘에는 꽃 향기가 어느정도 떨어지고 나무에서 품어나오는 특유의 향이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청자박물관 주변 녹나무는 지금은 참 아름답고 쓸모 있는 나무가 됐지만 이 나무가 이곳에 심어져 자란 여정을 들어보면 오늘날이 있기까지 참으로 고난의 세월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청자박물관 녹나무 사연은 40여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때는 1975년경이였다. 산너머 장흥 대덕에 위행량(80년 초반 작고)씨라는 사람이 살았다. 과수원을 하고 있던 위씨는 평소에 나무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우연한 일로 일본을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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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6.0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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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박물관 만든다는 소문”산정초등학교는 1959년 4월 25일 도암북초등학교 산정분교로 인가받은 학교다. 지리적으로 오지여서 비교적 빨리 들어선 학교다. 도암면에서 가장 적은 규모의 학교였다. 이후 1970년 4월 산정초등학교로 승격되었으나 1997년 학생수가 줄어들면서 적은 규모의 학교 치고는 비교적 늦게 폐교됐다. 이 학교 역시 설립당시 지역주민들이 재산을 기부하고 울력을 해서 지어진 곳이였다. 이곳 역시 야트막한 야산위에 지어진 학교로 운동장으로 들어서면 시야가 넓게 트이는 곳이다. 학부모들이 자녀들이 좋은 곳에서 공부하길 바랬던 소망이 베여 있는 곳이다. 이 학교 주변 주민들 역시 구 신전남초등학교 주변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진도 세월호 관련 회사가 학교부지를 소유하고 있는지 몰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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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5.27 1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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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해진해운의 신전남초등에 이어 또 “왜 강진에 두 개씩이나”의문 확산진도에서 침몰한 세월호의 모 회사인 전 세모그룹의 계열사가 강진에 소유하고 있는 땅이 신전의 구 신전남초등학교 부지 외에 도암의 구 산정초등학교 부지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추가로 확인됐다. 이에따라 이 회사가 왜 강진의 폐교를 두 개나 소유했는지 그 이유에 대해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본지가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도암면 강정리 319-6에 있는 6,962㎡의 구 산정초등학교 부지를 유병헌(73) 전 세모그룹회장측이 운영하는 (주)온나라가 지난 2008년 8월 매입했다. 당시 매입가는 1억4천97만원이였으며 온나라의 주소지는 경기도 안양시 동안구이다.(주)온나라가 산정초등학교를 매입한 시기는 역시 세모그룹의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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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5.2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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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의회 제3대 군의원 선거는 1998년 6월 4일에 치러졌다. 강진군에서는 총 선거인수가 3만8,287명이였다. 당시 선거율은 73.1%로 2대때 보다 다소 떨어지는 경향을 보였다. 여기서 잠시 각 읍면에서 1명씩 군의원을 뽑았던 시대와 요즘 처럼 광역 선거구에서 4~3명을 뽑는 시대의 출마자 수를 비교해 보자. 1대 군의원 선거는 2.4대 1이였고, 2대 경쟁률은 2.7대 1이였다. 3대 의원 선거의 경쟁률은 이보다 조금 낮은 2.1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이번 7대 지방선거는 4명을 선출하는 가 선거구에서 11명이 출마했고, 3명을 뽑는 나 선거구에서는 7명이 출마해서 각각 2.7대1, 2.3대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그러니까 전체적인 경쟁률은 예나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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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5.20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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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학교가 어떻게… 참담한 심정이다”신전남초등학교 부지가 진도해역에서 침몰돼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소유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당초 이 학교를 세울 때 재산을 기부하고 울력을 했던 주민들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지난 1983년 개교한 신전남초등학교는 개교 16년만인 1999년 8월 폐교됐고, 이후 9년여 만인 2008년 세월호 선사인 (주)청해진해운이 매입해 실 소유주가 이 회사로 돼 있다. 주민들은 폐교의 주인이 그동안 교육청인 줄로만 알고 있다가 이번에 진도에서 사고가 나고 전국에 산재해 있는 청해진해운의 재산이 공개된 후에야 폐교의 소유주를 알게 됐다.인근 마을 주민들에 따르면 당시 신전면 송천, 사초, 용화, 벌정 마을의 주민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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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5.20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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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맹랑한 호남비하 발언으로 확인돼 승객 300여명을 버리고 침몰하는 배에서 가장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 이준석(68)씨의 고향은 경북 칠곡군인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그는 경북 칠곡이 고향이고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에 가족들이 살고 있다.이에따라 이씨가 강진의 지역신문에 인터뷰한 기사가 나왔으니 강진사람이고 ‘그가 전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배와 승객을 버리고 도망나왔다’고 인터넷에 루머를 퍼뜨린 사람들의 주장은 허무맹란한 것으로 최종 확인되고 있다.중앙선데이 보도등에 따르면 이 선장의 고향은 경북 칠곡군이다. 20대에 선원생활을 시작해 32세이던 1977년 외항선 선원이 됐다. 17년간 외항선을 탄 뒤 연안 여객선 선장으로 다시 20년을 일했다. 그는 알려진 대로 1985년 2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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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5.1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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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매입, 전남지역서 유일 오랫동안 관리 않고 흉물방치 진도해역에서 침몰돼 3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의 선사인 청해진해운이 강진에 소유하고 있는 땅은 신전면 송천리 401 구 신전 남초등학교 폐교 자리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땅은 청해진해운이 전국에 가지고 있는 토지중에 전남지역에서 유일하게 소유한 것이여서 토지구입 목적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과 강진군등에 따르면 청해진해운은 인천남구와 여수 국동, 인천 구월동, 제주 건입동, 인천 옹진군등에 토지를 보유하고 있는데 강진에서도 지난 2008년 토지를 매입했다. 청해진해운측은 당시 이 폐교를 전남도교육청으로부터 5천553만8천원에 매입했다. 매입당시 공시지가는 4천339만1천원이였으며 현재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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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5.1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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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 구명조끼 아쉬움을 다시 갖게하는 고 정상렬 선장의 제언고 정상렬 선장은 약 30여년 동안 배를 타면서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게 24세때 거문도로 가는 피난선을 몰고 갈 때였고, 그에 앞서 18세때 배를 타자마자 백금포에서 제주로 가는 상선을 탈때였다고 했다. 청산도를 지나 바다 한가운데서 태풍을 만났다. 배가 요동을 치고 배 안으로 바닷물이 철철 넘쳐 들어왔다. 몸은 이리저리 부딪히고, 배안의 살림살이가 날아 다녔다. 정선장은 어린 나이였지만 ‘이게 죽는 일인가 보구나’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함께 탔던 다섯명의 어른들도 얼굴이 하얗게 변해 있었다. 눈이 뒤짚혔다는 표현도 했다. 그렇게 서너시간을 헤매고 있을 때 제주쪽에서 경비선이 나와 견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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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4.2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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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죽는다’‘살려달라’ 아비규환 상황치를 자신의 몸에 묶어 끝까지 배 버리지 않고 버텨대구 미산마을 사람, 2012년 86세로 사망세월호 참사는 이준석 선장의 무책임한 배 포기와 탈출로 피해가 산더미처럼 커진 것으로 많은 정황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배에서 선장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선장의 중요성은 돛단배를 타고 다니던 옛날이나 배에 초현대식 디젤엔진을 장착한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진의 마지막 선장 정상렬(2012년 86세로 작고. 대구면 미산면) 선생에 따르면 긴박한 상황에서 선장이 자포자기를 하면 배와 사람들의 생명을 모두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선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것도 포기해서는 안되는 사람이였다.1950년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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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4.29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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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무투표 당선... 성전, 병영 전원 무혈입성해남윤씨, 해주오씨, 장흥마씨등 씨족 강세현상 직업별로는 면서기와 이장출신이 가장 많아 이번회 부터는 50년대 읍면의원들이 어떻게 당선됐고, 사회적 배경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자. 아쉽게도 읍면의회 역대 자료중 초대에 해당되는 1952년 자료는 없고 2대째인 1956년 자료가 남아 있다.당시자료(의회사: 전남판. 제1집. 의회사편찬위원회. 1958)를 보면 1956년 2대 읍면의원 선거에서 44.2%가 무투표 당선됐고 55.8%인 58명만 투표를 통해 당선된다. 이는 전남의 평균 무투표 당선율 32.6% 보다 훨씬 높은 수치였다.재미있는 것은 12명을 뽑은 성전면과 11명을 뽑은 병영면은 모든 면의원이 무투표 당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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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4.22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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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년 청자운송중 태안앞바다서 배 침몰1770년 12월 제주~남포 항로서 21명 사망1828년 3월 강진주민 36명 일본으로 표류1979년 제주도서 옹기팔고 오던 칠량 주민 2명 실종 1명 사망2005년 5월 완도 청산앞바다서 낚시주민 4명 실종세월호 침몰사고가 전 국민을 비통하게 하고 있다. 2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직도 바다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다. 평온한 바다가 때론 얼마나 잔인하고 사납게 인간을 무너뜨리는지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바다에 인접해 살아 온 강진사람들은 오랫동안 저 위험한 바다를 실감하며 살았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동력선이 도입된 게 1900년대 초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는 무조건 돛을 달고 바람에 의지해 배가 움직였다. 나침반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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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4.22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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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호남사이트 일베등에 전라도 비하 도배세월호 침몰사고 후 이준석 선장이 2007년 8월 강진의 지역신문에 소개된 인터뷰 기사내용이 인터넷 상에서 퍼지면서 그의 고향이 강진이라는 악성루머가 급속히 확산됐다. 이준석 선장이 강진사람이기 때문에 강진의 지역신문에 소개되지 않았느냐는 것이였고, 결국 이준석 선장이 전라도 사람이기 때문에 배에서 도망나오지 않았느냐는게 악성루머의 내용이었다. 그러나 주희춘 기자는 당시 이준석 선장을 인터뷰하면서 고향을 물어 본 적도 없고, 세월호 사고이후 나온 자료에 따르면 그의 주소는 부산으로 되어 있다.이같은 사실이 공개됐는데도, 대표적인 반호남사이트인 ‘일베’와 ‘디시인사이드’등에서는 당시 기사를 악용해서 호남을 비하한 글이 줄을 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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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4.22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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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남해안 항로 잘 아는 사람”“곳곳 위험, 잠시도 긴장의 끈 놓지 못해” 서남해 연안항로 해박한 지식 자랑세월호 항해 당시 3등 항해사에 조타실 맡겨배 침몰되자 승객 300여명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대참사로 기록될 세월호 침몰사건의 중심에는 이준석(69. 부산시 동래구) 선장이 있다. 그는 배와 300여명의 승객을 버리고 가장 먼저 탈출했다. 그는 업무상 과실치사와 선박 매몰, 유기치사, 특가법상 도주선박 혐의가 적용돼 구속됐다. 세계 언론은 ‘이준석 선장이 선장의 명예를 더럽혔다(뉴욕타임스)’라고 했고, ‘왜 그가 그렇게 배를 버렸는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은 일(로이터통신)’이라고 의아해 했다. 그는 모든 이들의 가슴에 역사의 죄인으로 영원히 남을 선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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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4.22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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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파간 갈등 치열, 강진읍의회‘난형금속편’사용초대 칠량면의회, 면장 불신임 의결의회 해산돼 재선거 치르기도 1952년 4월 25일 개원한 강진읍 초대 의회는 선거구가 4개였다. 이곳에서 15명의 의원이 선출됐다. 당시 여당인 자유당이 5석을 차지했고 한청이 3석, 국민회 2명, 무소속이 5명이 당선됐다. 당시에도 무수속 바람이 있었는지 무소속 규모가 여당인 자유당과 똑같은 것을 볼수 있다. 이 때문에 각 계파간의 갈등이 심각해서 의안을 처리할 때마다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재미있는 것은 난형금속편(卵形金屬片)에 관한 것이 있다. 계파가 4개파가 옹립하면서 의원간의 마찰이 심각했다. 자유당 의원들은 여당의 막강한 힘을 이용해 반대파 의원들을 내사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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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4.15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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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이 기초선거(군수, 군의원)에서 공천을 하지 않기로 함에 따라 유례없는 후보자들이 본선에서 선거전을 치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기초의원 후보자들이 많은 만큼 주민들의 관심도 이에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지방의회 선거의 역사를 차례로 살펴보고 올바른 지방의회상을 역대 선거를 치른 주민들을 통해 파악해 보도록 한다./편집자 주. 읍면의회 의원 선거1952년 첫 읍·면의원 선거… 115명 뽑아 읍장 면장도 직선으로 뽑아1960년 12월까지 세차례 선거 오는 6월 4일 치러질 지방선거는 기초의원 대수로 치면 제7대 째다. 지난 1991년 3월 26일 실시된 지방의회 의원선거를 첫 대수로 보고 1995년 6월 27일 선거가 제2대, 1998년 6월 4일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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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춘 기자
2014.04.08 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