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8월 피난민 태우고 거문도 가다가 태풍

‘모두 죽는다’‘살려달라’ 아비규환 상황
치를 자신의 몸에 묶어 끝까지 배 버리지 않고 버텨
대구 미산마을 사람, 2012년 86세로 사망

지난 2007년 故정상렬 선장이 대구 미산마을 자택에서 인터뷰를 할 때 찍은 사진이다. 정선장은 배에서 선장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다. <강진일보 자료사진>
세월호 참사는 이준석 선장의 무책임한 배 포기와 탈출로 피해가 산더미처럼 커진 것으로 많은 정황들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 배에서 선장의 역할은 그만큼 중요한 것이다.

선장의 중요성은 돛단배를 타고 다니던 옛날이나 배에 초현대식 디젤엔진을 장착한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강진의 마지막 선장 정상렬(2012년 86세로 작고. 대구면 미산면) 선생에 따르면 긴박한 상황에서 선장이 자포자기를 하면 배와 사람들의 생명을 모두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선장은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떤 것도 포기해서는 안되는 사람이였다.

1950년 8월 말의 일이였다. 인민군이 영암을 지나 강진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강진사람들은 피난길에 올랐다. 강진 주민 54명이 섬으로 피난길에 나섰다. 배는 30톤급 돛단배를 탔다. 선장은 당시 23세의 정상렬씨였다. 정씨는 14살때부터 고기배를 타다가 10대 후반부터 군동 백금포에서 상전을 타고 제주도를 비롯한 전국으로 쌀을 팔러다닌 베테랑 선장이였다. 

배에는 성인 남자가 30여명, 성인여자가 10여명, 어린이 아이들이 10명 이상 탔다. 대부분 가족단위의 사람들이였다. 백금포에서 출발한 피난선은 마량을 거쳐 금일도로 들어가 다시 청산도에 도착했다. 며칠 후 청산도에도 인민군이 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강진의 피난민들은 거문도로 가기로 했다. 거문도는 청산도에서 동남쪽으로 35㎞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다음날 아침, 다행히 하늘이 맑았다. 바람도 좋았다. 피난선은 아침 일찍 청산도를 떠나 동쪽의 거문도로 뱃머리를 잡았다. 서너시간을 항해하다가 청산도와 거문도 중간지점정도를 지날 때 쯤이었다. 망망대해였다. 갑자기 구름이 끼면서 태풍이 불기 시작했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배위로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배안은 50여명이 질러대는 비명과 파도소리가 뒤섞여 아비규환이 됐다. 돛 3개가 모두 찢겨져 개가 짖어대는 소리를 냈다. 가족을 데려온 사람은 눈이 뒤짚혀 있었다. 가족끼리 서로 몸을 껴안았으나 배가 요동치면서 이리저리 나뒹 굴었다. 쓴물까지 꾸역꾸역 토한 사람들이 배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워버렸다.

모든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여자들의 통곡소리가 들려오고, 울부짖는 사람들의 목소리도 들렸다. 부녀자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아이를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리저리 나뒹군것은 마찬가지였다. 파도소리와 바람소리에 갈갈이 찢어진 울부짖음이 처참했다.

속장(束裝)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속장은 풍랑에 배가 뒤짚혀 죽은 뒤에 시신이 배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고 머리와 얼굴에 심한 상처를 입지 않도록 몸을 배에 묶고 얼굴을 천으로 덮어싸는 것을 말한다.
이 상황에서 가장 두려움을 가진 사람은 사공을 맡고 있는 정상렬옹이었다. 배를 오래 타본 사람은 당시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하는 법이었다. 정옹이 볼 때 50여명의 사람들이 이제 죽을 수 밖에 없는 판이었다.

사람들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사공으로서 기가 막혔다. 정선장은 돛줄을 끌어다가 치를 동여매고 한쪽을 자신의 허리에 묶었다. 선장이 두손으로 꽉 쥐고 있는 치는 파도위에서 배를 지탱하는 마지막 힘이었다. 그것을 놓치면 배와 피난민들의 운명은 끝장이였다. 허리와 치를 동여 멨으니 배가 침몰하면 당연히 선장도 같이 따라 들어가는 것이였다. 배와 운명을 같이하겠다는 각오였다.

2006년 이후 수차례 필자와 인터뷰 했던 정상렬 선장은 “그런 상황에서는 표정하나 몸짓하나 흐트러져서는 안된다. 선장이 당황하거나 자포자기 하는 행동을 하면 배에 탄 사람들은 수십배의 공포를 느끼게 되고 혼란에 휩쌓인다”고 말했다.

파도가 날라오면 치를 잡아 배를 정면으로 댔다. 파도가 배의 허리쪽을 치면 배는 꼼짝없이 넘어갈 상황이였다. 배속으로 바닷물이 사정없이 넘쳐 들어왔다. 쓰러져 있는 사람들이 반쯤 물에 잠겼으나 물을 퍼내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모두 탈진상태였다.

두시간여 동안 그렇게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바람이 조금 잠잠해졌다. 승객들도 정신을 모두 잃었고, 선장인 정상렬씨도 기진맥진했다.

얼마후 정상렬씨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먼 바다를 보았을 때 경비선 한척이 다가왔다. 청산도를 지키는 경비선이 배에 태극기가 펄럭이는 것을 보고 구하러 왔던 것이다. ‘강진의 피난민’들은 거문도에서 3개월 동안 피난생활을 한 후 강진으로 안전하게 돌아왔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