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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은 배를 띄웠고, 배를 뒤엎기도 했다 차경모의원에서 황주홍의원까지... 한국정치 파고 함께한 64년 세월유권자의 선택은 언제나 옳았을까 는 창간과 함께 우리 강진의 정치사를 조망해보고, 이를 통해 지역발전을 견인할 새로운 정치를 구현한다는 차원에서, 창간기획특집으로 를 18회에 걸쳐 연재했다. 마침 올해는 국회의원 선거와 대통령선거가 동시에 열린 해여서 총선의 역사를 통해 강진의 정치사를 되돌아 보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있는 기획이였다. 대선과 총선, 지방선거 등 여러 선거 중에서도 총선을 중심으로 한 강진정치사를 집중적으로 다루는 것은, 총선을 통해 근․현대 강진의 정치를 돌아볼 수 있고, 중앙정치와 연계된 지역정치의 큰 틀을 점검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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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6.05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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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완도 선거구 공중분해, 인접 지역 선거구에 흡수후보등록 한달전 선거구 획정, 유선호후보 3선 성공제18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8년 4월 9일 실시됐다. 18대 총선은 대선이 끝나고 4개월여 만에 실시돼서인지 전국적인 큰 쟁점이 없었다. 야권은 대선패배 여파로 ‘대운하사업’ 외엔 특별한 선거이슈를 만들지 못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서울 뉴타운ㆍ재개발 사업 추진’이란 장밋빛 개발공약을 발표, 시민들의 표심을 얻는데 성공했다. 18대 총선 당시 서울 48개 선거구 중 뉴타운 관련 공약이 나온 선거구가 28곳이나 됐다. 한나라당은 서울지역 48석 중 40석을 차지했다. 17대 ‘탄핵 총선’때 열린우리당이 서울에서 차지했던 32석을 훨씬 능가했다.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의 과반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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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5.29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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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탄핵 후폭풍, 강진·완도 선거에도 영향 끼쳐우리당 이영호 후보 ‘당선’, 민주당 황주홍 후보 ‘석패’ 제17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4년 4월 15일 실시됐다. 17대 총선은 국회를 장악한 야당이 대통령 탄핵을 배경으로 진행된 ‘탄핵 총선’이었다. 대통령 탄핵은 선거의 가장 핵심 쟁점이 되었으며, 선거 결과에도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이번 총선부터는 비례대표 의석수 배정방식이 달라졌다. 16대 총선까지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전국구) 의석을 배정했으나, 17대 총선부터는 지역구 투표와 비례대표 투표를 분리한 를 총선 사상 처음으로 도입했다. 의원 정수는 299명(지역구 243명, 비례대표 56명)으로 재조정됐다. 16대 때는 273명이었고, 15대 때는 299명이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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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5.22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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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대통령 만들기’ 일등 공신 천용택 후보 압승 역대 총선사상 처음으로 강진출신 후보 없이 선거 치러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는 2000년 4월 13일 실시됐다. 지역구 227명과 전국구 46명 등 모두 273명을 선출한 16대 총선에는 새천년민주당(민주당)과 한나라당, 자유민주연합(자민련), 민주국민당(민국당) 등 8개 정당과 무소속이 참여했다.선거결과, 야당인 한나라당이 133명(지역구 112, 비례대표 21)을 당선시켜 원내 제1당이 됐다. 집권당인 민주당은 115명(지역구 96, 비례대표 19)을 당선시켰다. 15대 총선 때 의석수(79석) 보다는 36석을 더 얻었다. 자민련은 17명(지역구 12, 비례대표 5)을, 민국당은 2명(지역구 1, 비례대표 1)을, 한국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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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5.15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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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지역 국민회의 후보 전원 당선 ‘싱거운 한판’ 농고 선·후배 세 번째 대결, 김영진 3승 김식 3패 기록 제15대 국회의원 선거는 1996년 4월 11일 치러졌다. 지역구 253명과 전국구 46명 등 모두 299명을 선출한 15대 총선에는 신한국당과 새정치국민회의(국민회의), 자유민주연합(자민련), 통합민주당(민주당) 등이 참여했다.선거결과, 신한국당이 139명(지역구 121, 전국구 18)을 당선시켜 원내 제1당이 됐다. 그러나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하지는 못했다.국민회의는 79명(지역구 66, 전국구 13)을, 자민련은 50명(지역구 41, 전국구 9)을, 민주당은 15명(지역구 9, 전국구 6)을 각각 당선시켰다. 무소속 당선자는 16명. 신한국당은 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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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5.08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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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대선 앞둔 ‘황색돌풍’ 위력 확산, 광주·전남 싹쓸이 13대 국회 광주청문회 등 맹활약한 김영진후보 재선 성공 14대 국회의원 선거는 1992년 3월 24일 실시됐다. 14대 총선은 14대 대선(92년 12월18일)을 9개월 앞두고 치러져 대선전초전 성격을 띠었다. 대통령 임기(5년)와 국회의원 임기(4년)를 조정하지 않는 한 20년마다 같은 해에 총선과 대선이 실시되는데, 올해가 바로 그 해이다. 지난 4월 11일 19대 총선이 실시됐고, 오는 12월 19일 18대 대선을 앞두고 있다.14대 총선은 13대 총선 때 내용과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의원 정수 역시 299명으로 13대 때와 같지만, 지역구가 224명에서 237명으로 늘어나고, 대신 전국구가 75명에서 62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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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5.01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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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진두지휘한 평민당, ‘황색돌풍’으로 제1야당 차지정치신인 김영진, 여당중진 김식 꺾고 첫 국회 진출제13대 국회의원 선거는 1988년 4월 26일 실시됐다. 이번 총선은 87년 12월 16일 13대 대선이 치러진지 불과 4개월 만에 실시하는 선거였고, ‘1노 3김’의 사실상 두 번째 대결이었다. 87년 10월 29일 공포된 개정헌법(9차)에 따라 임기 5년의 가 도입됐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는 선거구당 1인을 선출하는 로 17년 만에 바뀌었다. 의석수도 12대 국회보다 23명이 늘어난 299명(지역구 224명, 전국구 75명)으로 조정됐다.집권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은 13대 총선에서 원내 과반의석을 차지하는데 실패, 의정사상 처음으로 여소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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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4.2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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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총선 4일전 귀국 신당돌풍6월 항쟁, 6.29선언에도 영향미쳐‘2․12총선’으로 더 알려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는 1985년 2월 12일 실시됐다. 의원정수와 선거구는 11대 국회와 같았다. 지역구 184명과 전국구 92명 등 모두 276명을 뽑았다. 선거구제는 1구 2인을 선출하는 를 유지했다. 전국구는 지금처럼 정당득표율에 따른 배분이 아니라, 의석 비율에 따라 배분하되 5석 이상의 의석을 얻은 정당을 자격 요건으로 했다. 법정 임기는 4년. 그러나 여야합의에 의한 9차 개헌(88.2.15) 부칙(3조2항)에 따라 3년1개월18일 만에 임기 종료됐다.선거 결과, 민주정의당(민정당)이 148석(지역구 87, 전국구 61)을 차지했고, 신한민주당(신민당)이 67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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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7 1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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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군부 주도 5공 출범후 첫 총선김식 후보, 유재희 후보 동반 당선제11대 국회의원 선거는 12대 대선이 끝난 지 한 달 만인 1981년 3월 25일 실시됐다. 1979년 ‘10․26 사건’ 이후 11대 총선까지 1년 5개월은 짧은 기간이었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큰 정치적 격변기였다. 이 기간 동안 대통령 선거 세 번(79.12.6, 80.8.27, 81.2.25), 8차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 한 번(80.10.22) 등 모두 네 번이나 선거가 실시됐다. 또한 현직 대통령이 시해되고 군사반란이 일어나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는 등 크고 작은 사건과 정치적 조치 등이 연이어 일어났다.전두환 정권은 헌법 개정에 이어 초헌법적인 기능을 발휘했던 ‘국가보위입법회의’를 통해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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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4.1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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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전식 후보 여유 있게 1위 5선 성공9대때 타의에 의해 불출마했던 윤재명 후보 3선 안착제10대 국회의원 선거는 1978년 12월 12일 실시됐다. 10대 총선도 9대 총선처럼 선거구당 2명씩 선출하는 중선거구제를 선택했다. 77개 선거구에서 154명을 선출했다. 지역구 선거 결과, 민주공화당(이하 공화당)은 68명을, 신민당은 61명을, 민주통일당은 3명을 각각 당선시켰다. 무소속 당선자는 22명. 는 같은 해 12월 21일 회의를 열고 박정희 대통령이 일괄 추천한 의원후보 77명의 유신정우회(유정회) 의원을 확정지었다. 이로써 모두 231명의 의원을 선출한 10대 국회는, 다음해인 1979년 3월 15일 개원했다. 10대 국회 지역구 의원의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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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4.03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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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인 선출 중선거구제 도입... 강진.장흥.영암.완도 한 선거구제9대 국회의원선거는 유신체제하인 1973년 2월27일 실시됐다. 9대 총선은 대통령이 입법․사법․행정 3권을 완전 장악하도록 한 ‘유신헌법’에 따라 경직된 가운데 치러졌다. 8대 국회 만료부터 9대 국회 임기 개시까지 5개월여 동안 국회가 없었는데, 이때는 ‘비상국무회의’가 국회 기능을 대신했다.선거 방식은 를 채택했던 8대 총선 때와 달리, 선거구별로 다수득표자 2인을 당선인으로 선출하는 를 도입했다. 또 전국구 제도를 폐지하고, 국회의원 정수의 3분의 1을 대통령의 제청에 따라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전국구 성격의 유신정우회(약칭 유정회) 국회의원을 간접 선출했다. 같은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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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3.27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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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권유로 당직 맡아 '맹활약'정보부 끌려가 고초격은 후 '민주주의 중요성 절감'지난 1967년처럼 1971년에도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가 같은 해에 치러졌다. 제7대 대통령선거는 4월27일, 제8대 국회의원선거는 한 달여 뒤인 5월25일 각각 실시됐다. 장기집권을 꾀하던 박정희 대통령은 69년 10월, 6차 개헌을 통해 3선 연임을 가능하도록 했다. 그리고 71년 4월 대선에 출마, 김대중 후보를 95만여 표 차이로 힘겹게 누르고 3선에 성공했다. 모두 204명(지역구 153명, 전국구 51석)을 뽑는 8대 총선에서 민주공화당(이하 공화당)은 113석(지역구 86석, 전국구 27석)을 차지해 원내 제1당의 지위를 유지했다. 신민당은 7대 총선보다 두 배가 많은 89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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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3.20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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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세 무명의 정치신인 윤재명 정치거물 유수현 김준연 무너뜨렸다제6대 대통령선거와 제7대 국회의원 선거가 1967년에 치러졌다. 올해의 정치 일정과 비슷했다. 67년은 선 대선(5.3)-후 총선(6.8)이었지만, 올 해는 선 총선(4·11)-후 대선(12·19)으로 실시된다는 게 다른 점이다. 제7대 국회의원 선거는 1967년 6월 8일에 실시됐다. ‘6·8선거’라고도 한다. 선거 방식은 6대 국회 때와 마찬가지로 선거구를 지역구와 전국구로 나눠 실시했고, 정당추천제를 채택해 무소속 출마를 완전 차단했다. 7대 총선은 공화당과 신민당, 대중당 등 모두 11개 정당이 참여했으나, 선거전은 공화당과 신민당의 양당 대결이었다. 선거 결과는 집권여당인 공화당의 압승. 공화당은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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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3.13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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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ㆍ영암 첫 동일선거구김준연,윤재명,유수현 출마 제6대 국회의원 선거는 1963년 11월 26일에 실시됐다. 이에 앞서 61년 5․16 군사쿠데타를 일으킨 군부세력은 곧바로 군사혁명위원회를 설치, 입법․사법․행정 3권을 장악한 뒤 국회를 해산했다. 군사혁명위원회는 5월 19일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편하고 군정내각을 발족시켰다.국회 역할을 했던 국가재건최고회의는 62년 12월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개정안(5차)을 확정했다. 주요 내용은 내각책임제에서 대통령제로 환원, 양원제 국회에서 단원제 국회로 환원, 국회의원 입후보자의 정당추천제 실시 등이었다.개정 헌법에 따라 정당법, 선관위법, 국회의원 선거법도 제․개정됐다. 국회의원 선거구역의 확대와 의정사상 처음으로 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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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3.06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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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원제 첫 도입 국회의원 선거강진 경쟁률 8:1 역대 최고 이승만 하야 내각책임제로 권력구조 변경1960년 7월 29일 치러진 제5대 총선은 국회 사상 처음으로 상원격인 참의원과 하원격인 민의원으로 이원화된 ‘양원제’가 도입된 가운데 실시했다.5대 총선은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하고 자유당 정권이 무너진 뒤, 3차 헌법 개정으로 내각책임제로 권력구조가 변경돼 제2공화국을 담당할 정부를 선택하는 선거였다. 당초 1차 개헌(1952년 7월, 발췌개헌)때 양원제가 도입됐으나, 그간 입법조치 미비 등으로 참의원 선거를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가 5대 총선을 통해 처음으로 참의원과 민의원을 동시에 선출하게 됐다. 의원정수의 경우 5대 민의원은 233명,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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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2.28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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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선거구 김성호, 김향수, 양병일, 차종채 입후보49.1%인 1만9천279표를 득표 김향수 당선양병일 두 번째 낙선, 김성호 재선실패 제4대 총선은 1958년 5월 2일 실시됐다. 그러나 이승만 정권의 3·15 부정선거에 반발해 4·19혁명이 일어나 1960년 6월15일 헌법이 개정(3차 개헌)되고 부칙에 따라 임기가 단축되는 바람에 4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실제 임기는 2년1개월28일. 선거구제는 3대 국회와 마찬가지로 1선거구에서 1인씩 선출하는 소선거구제가 유지됐다. 선거구는 3대 때의 203개 보다 30개 선거구가 늘어나 모두 233개 선거구에서 의원을 선출했다. 전남지역도 3대 총선 때보다 2개 선거구가 늘어나 32개 선거구가 됐다. 선거결과, 의석수는 모두 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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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2.20 2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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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이선웅, 양병일, 조덕훈, 차종채후보등 출마‘남도의 호랑이’ 차종채 후보 중도 사퇴 김성호 양병일 치열한 접전... 김성호 압승김성호 의원 이승만 대통령 ‘4사5입 개헌’ 적극 협조지금도 ‘헌법파괴 의원’으로 회자전남에서 자유당 15석 무소속 12석 민국당 3석1954년 5월 20일 제3대 국회의원(민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3대 국회는 지난 52년 7월 ‘발췌개헌’(1차 개헌)으로 ‘양원제’가 도입됨에 따라 민의원(소선거구제)과 참의원(중선거구제)을 구성하도록 되어 있었으나, 참의원 구성에 필요한 입법조치 미비로 민의원만을 선출했다.의원정수는 2대 국회 때의 210명에서 7명이 줄어 203명. 이는 휴전협정 결과, 7개의 선거구가 휴전선 이북에 속해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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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2.15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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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만․ 차경모․ 양병일․ 김갑자남, 이희철, 정종실, 김용선, 김승식 후보 출마 8:1 경쟁률양병일 후보 3만6천6백32표 당선현역 차경모 9백50표로 7위 오명양병일 의원 민주주의 신념, 정치적 소신 대단 이승만 대통령 1차개헌 반대 ‘기권’ 소신제2대 국회의원 총선거(이하 2대 총선)는 제헌국회 선거가 미군정하에서 실시되었던 것과 달리, 의정사상 처음으로 우리가 만든 국회의원선거법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실시됐다.그러나, 2대 국회는 임기동안 6․25 전쟁이 일어나고 ‘부산정치파동’을 비롯한 여러 정치적 사건들이 발생하는 등 격랑에 휩싸인 국회였다. 1950년 5월 30일 치러진 2대 총선으로 선출된 의원들은, 6월 19일 개원식을 가졌으나 며칠 후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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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2.07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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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경모 1만 5천1백4표 득표 ‘초대 국회의원’당선우익 계열 김윤식 좌익계열 차경모 경쟁 치열차경모, 김정식 읍 동성리 같은 마을... 두 후보 집 불과 1백여 미터 지근거리 ‘혈투’1948년 5월 10일 총선을 통해 구성된 대한민국 제헌국회는 같은 달 31일 오후 3시, 지금은 헐리고 없는 구 중앙청 중앙 홀에서 한국 의회정치의 시작을 알리는 역사적인 개원식을 가졌다.당시 국회의원 정수는 200명이었지만, 그 직전 4․3사건이 일어나 제주 지역 2곳이 선거가 연기됨에 따라 198명으로 출발했다. 두 선거구는 이듬해 5월10일 선거가 실시됐다. 북한에도 의석 100석이 배정되었으나, 소련의 반대로 유엔 한국임시위원단이 활동할 수 없었고, 결국 남한에서만 총선이 실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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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일보
2012.01.29 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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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경모 의원은 1948년 5월 31일 초대국회 제1회 본회의가 개회된 이후, 한 달여 만인 6월 29일 오전 10시에 열린 20차 회의에서 마침내 첫 발언을 했다. 그 당시는 지금처럼 상임위 활동 중심이 아니라 본회의 중심이었는데, 상임위활동처럼 본회의에서 찬반토론을 벌였다. 헌법 초안에 대한 1독회 대체토론 때였다. 의원들 간 토론시간 제한으로 논란을 벌이다가 결국 의원 당 10분으로 발언시간을 조정했다. 의장석에 앉은 신익희 부의장이 “다음은 차경모 의원을 소개합니다”고 하자, 차 의원은 발언을 시작했다. 차의원은 “저는 법률에 대한 전문지식도 없고 풍부하지 못하므로 여러 가지 항목에 대해서 준비한 바가 없습니다. 잠깐 대통령선거에 대한 말씀만 드리겠습니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강진정치사
강진일보
2012.01.29 2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