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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부터 1년간총 49화에 걸쳐 순차적 기록통일벼이야기부터 귀농인조례제정까지 강진농업사 정리 2020년 6월 18일 창간9주년 특집호부터 시작된 ‘남기고 싶은 이야기’의 두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인 김치형 전 강진군농업기술센터 소장의 ‘강진농업이야기’ 이야기가 49화를 끝으로 연재가 마무리됐다.김 소장은 지난해 6월부터 1년동안 49화에 걸쳐서 강진군의 전체적인 농업역사의 흐름과 그 속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일들을 재미있게 소개해주었다.김 소장은 주로 앞부분에서는 농업의 가장 기본이 되는 벼에 관한 이야기부터 서술했고 이어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6.10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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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기술센터의 주된 목적은 농업인 교육에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교육은 새해 농업인 실용교육이다.새해 농업인 실용교육은 농촌 빈곤 추방을 위한 정부시책의 일환으로 농한기 농업인들의 도박과 음주 등 페습을 바로잡기 위해서 가마니 생산, 새끼꼬기, 그 밖의 농가부업 지도와 야간에 문맹퇴치를 위한 공민교육으로 시작됐다. 이렇게 시작된 교육은 명칭도 시대에 따라 수없이 변경됐다.1972년에는 겨울 새마을영농교육으로 개칭 새마을정신과 영농기술교육을 실시했고 73년에는 겨울영농교육, 75년에는 동계 새마을 영농교육, 82년에는 다시 겨울영농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강진일보
2021.06.10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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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이야기 마지막 순서로 강진을 귀농1번지로 만들어준 귀농인 지원사업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귀농하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IMF 사태를 떠 올린다.IMF로 인해 도시에서 직장을 다녔던 사람들이 견디지 못하고 ‘고향에 내려가 농사나 짓자’하는 심경으로 고향을 찾는 이가 많았지만 결국 귀향후 2~3년만에 농사를 거둬치고 다시 대도시로 유턴하는 사람들이 많았었다. 그래서 농촌에서는 ‘귀농인’하면 달갑지 않게 생각했다.IMF로 잠시 늘었던 인구가 다시 줄어들기 시작했다. 강진군도 5만에 달했던 인구가 4만명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인구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6.0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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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식은 읍면 구분없이 4개대(지대, 덕대, 노대, 체대)로 나눠 참석했다. 각 대의 대장은 원시인의 복장으로 참석케 했는데 그 모습은 펜티 차림에 풀과 나뭇잎 등을 이용하여 하의를 만들고 나머지 몸과 얼굴에는 숯검덩 등으로 위장토록 했다.총대장과 각 지대장은 불을 받을 수 있도록 솜 등을 이용하여 횃불을 만들고 봉화식장 한가운데에는 통나무를 이용하여 약 3~4m 정도 높이의 봉화대를 만들고 참여 회원들에게는 초를 나누어 갖고 행사에 참석했다.봉화식 행사가 끝난 봉화대 주변에서는 삼삼오오 모여서 막걸리 파티를 하는가 하면 평소에 눈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5.27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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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H회의 야간 월례회는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괴로움도 있었다. 당시 읍면단위 지소에는 직원 3명 내외가 근무하고 있다보니 3일에 한 번씩 돌아오는 숙직 근무와 마을단위 야간 월례회에 참석해야만 했다.그러다보면 가정에는 소흘할 수 밖에 없었지만 필자를 비롯한 선후배 지도사들은 농촌부흥의 사명감과 농촌 청소년들이 곧게 자랄 수 있도록 애정을 가지고 어려움을 극복했었다.생각해 보면 야간 월례회 참석뿐만 아니라 또 하나의 어려움은 바로 읍면마다 2~3개소씩 설치되는 농번기 탁아소 운영이었다.이때는 농촌에 탁아소나 유치원이 없었기 때문에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5.20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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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서는 1954년 민간운동 조직체로 농촌청년구락부가 몇 개 마을에 조직되면서 4-H 운동이 시작됐다.1957년 농사교도법 공포된 이후 1959년 군단위 4-H 구락부가 결성됐다. 이때 농촌에 거주하는 10세∼24세의 청소년을 대상으로 구락부를 조직해 칠량 한림마을의 전병식 씨가 초대 회장으로 취임함으로써 4-H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 시작했다.4-H 명칭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하였는데 1972년부터 새마을 4-H구락부(회장 윤효식)로 개칭했고 1979년에는 새마을청소년회(회장 최향선)로 이름을 바꾸고 연령도 13세부터 26세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5.13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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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근무했던 농업기술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는 농업인 학습단체가 있다. 지금은 5개 단체이지만 1962년 농촌진흥법에 의해 관리하고 있던 단체로 성인 남자는 농사개량구락부, 농촌주부는 생활개선구락부, 농촌청소년 소녀는 4-H 구락부(구락부는 미국의 club을 우리말로 개칭한 것임) 등 3개의 학습단체를 만들어 이들을 중점적으로 교육하여 농촌, 농업, 농민을 선진화하려 노력했다.이들 단체를 후원하고 지도하여 주는 사람을 선정하여 ‘자원지도자’라 칭하고 농촌지도사들이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까지 봉사토록 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왕성하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5.06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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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는 추어탕에 미꾸라지가 아닌 미꾸리를 넣어 먹었다. 최근에도 미꾸리를 넣어 전통식 추어탕을 판매하는 곳이 있지만 거의 찾아보기 힘들어졌다.추어탕에 미꾸라지를 쓰는 이유는 미꾸리보다 빨리 자라기 때문이다. 추어탕감으로 쓰려면 미꾸라지든 미꾸리든 15㎝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치어가 이정도 크기까지 성장하려면 미꾸라지는 1년, 미꾸리는 2년을 넘겨야 한다.이로 인해 양식업체는 미꾸라지는 선호하게 됐고 추어탕집에서도 미꾸라지로만으로 추어탕을 끓일 수밖에 없었다.미꾸리와 미꾸라지는 둘 다 잉어목 기름종개과로 분류된다. 생태적으로 비슷하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4.29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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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뱀 등 다른 동물들의 침범을 방지하기 위해 논둑에 파이프를 박고 비닐천에 모기장을 덧붙인 방지망을 설치했다.설치한 사육장 논 안에는 새우들의 도피처를 만들기 위하여 방사선으로 1m 깊이의 도랑을 설치하였으며 친환경 벼 재배를 하기로 했다.막상 직원들이 사육장은 설치했으나 어미 새우를 구할 수가 없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와 직원들이 직접 옴천 월곡제 아래의 개울에서 뜰망을 이용해 채집했다.이 시기 직원들은 사무실에 매일 출근하면 토하를 채집하러 나가는 것이 일과일 정도로 열성을 다했다.그러나 우리는 본래 토하 잡는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4.15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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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보성출신 김용혁 농촌지도소장이 부임하시면서 지역농업개발 시범사업으로 미꾸리 인공부화와 토하 양식이 시작됐다.새우는 세계적으로 약 2,500여종이 있다고 하나 우리나라 내수나 근해에 사는 종류는 140여 가지가 된다고 알려져 있다.주로 하천에서 잡히는 새우를 보면 맑은 물이 흐르는 계류에서 많이 잡히는 생이 새우와 저수지나 큰 강 이 인접한 하천의 중하류 및 기수역에서 잡히는 줄새우, 그리고 저수지에서 독립되어 살거나 하천의 상류에서 하류까지 넓게 분포하는 징거미류 3가지로 대별 되고 있다.그 중 강진에서 토하라고 통용되고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4.0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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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맥우를 처음 시작할 때 동참했던 필자로서는 ‘앞으로도 청정한 가축 사육 환경에서 자란 강진맥우가 도시의 소비자들로부터 더욱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는 장을재 대표의 뜻에 공감하며 더 큰 발전을 기원해 본다.2000년대 이후에도 수많은 한우 작목반이 생겼다. 그중에는 몇 년 만에 없어진 곳도 있었고 지금까지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브랜드도 있다.예를 들면 전남도에서 만든 ‘녹색한우’라든가 우리 강진에서 만든 ‘착한한우’ 등은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그 외에도 많은 브랜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4.01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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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우 사육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들을 차분히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 1992년에는 판매처를 7개소로 확대하고 603두를 출하했다.93년에는 26농가에서 600여두를, 1994년부터는 연간 사육두수 1,200두에 연간 출하두수 700두로 잡고 거래처도 8개소로 꾸준히 늘었다.‘강진맥우’가 서서히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자 전국에서 강진맥우 사육장을 방문하는 등 축산 관계기관 및 양축농가들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게 됐다. 농촌지도소의 자료에 의하면 96년말까지 4,500여명이 견학한 것으로 기록되었다.당시 농촌지도소 축산계에는 김길남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3.2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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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에서는 1980년대에는 한우 일관사육(암소를 사육하고 생산된 송아지는 집에서 비육후 판매하는 사육 방법)을 권장했었고 90년대 들어서면서 고급육 생산 시범사업을 전개했었는데 그 때 개발된 것이 ‘강진맥우’이다.‘강진맥우’는 농가와 농촌지도소의 협력으로 개발되었다. 농촌지도소에서는 한우 고급육 생산에 고심하던 중 전남농업기술원에서 발행하는 상업농기술 제2호에 게제된 ‘비육우 끝마무리에 알콜 급여(일본 축산학회 발표자료)’와 ‘두충잎 급여로 장어 육질개선’이라는 기사를 보았다.그 때부터 우리는 일본 농무성에 자료를 요청한 결과 다행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3.18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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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군은 우형기(소 체중계)를 지원하여 소의 체중에 따라 배합사료를 급여하게 하는 등으로 시범사업을 전개했다. 이 사업으로 강진군은 농촌진흥청에서 실시한 시범사업 추진 결과 심사에서 전국 2등을 차지하기도 했다.이 때부터 소죽을 끓여 먹이는 방법인 화식 위주의 사육 방법에서 생식으로 바뀌었고 사육 규모가 1~2두에서 3~5두로 다두 사육이 가능케 되어 농가 소득증대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소 사육방법이 화식에서 생식으로 바뀜에 따라 야생초와 이탈리안라이그라스 등의 답리작 사료작물만으로는 부족해졌다. 이 때 보급했던 풀이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3.0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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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사육현황 조사와 관리는 일제시대에 들어서 체계적으로 실시됐다. 이를 바탕으로 총독부는 초창기부터 축우개량사업을 전개해갔다.권업모범장 주도로 한우 종 현황과 개량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져 북부지방의 우량 수소를 선택하여 남부지방에 보급하고, 암소를 농민에 빌려 주어 번식하게끔 하는 등 사육두수 증가 정책을 폈다.그 밖에도 소에게 사료를 지급하는 것과 지역별 축산조합설립을 유도하였다. 그리하여 소의 사육두수는 1910년전까지 60만 마리였던 것이 1920년에는 150만 마리로 증가하였다.1941년까지 완만히 150~160만 마리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2.25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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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韓牛)는 대한민국에서 사육하고 있는 토종 소를 말한다. 원래 농경용으로 사용됐으나 경운기나 트랙터 같은 농기계가 등장한 지금은 소고기를 얻기 위해 사육한다.물론 지금도 대형 농기구를 쓰기 힘든 비탈진 곳이나 작은 논밭에는 소가 더 좋기에 아예 안 쓰는 건 아니며 때론 스포츠 목적으로 소싸움에 사용되기도 한다.한우는 오랫동안 사람들과 함께 하며 농경과 운반을 담당했고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 소뼈 등을 남긴다. 가죽과 뼈는 북 재료나 모피, 다른 공예품 재료로 사용되고, 설렁탕이나 곰탕 등 한국의 국물 요리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2.10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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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서 애플망고가 재배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필자는 이를 강진에 도입해보기 위해 제주도의 애플망고 농장을 찾게 됐다. 당시 제주도에는 애플망고 재배 기술을 타 지역으로 유출을 금하고 있었다.운이 좋았던 탓인지 다행히 직원의 친척이 그곳에서 애플망고를 재배하고 있어 우리는 그 사람의 농장을 견학할 수 있었다.2013년 강진에서 시범재배를 위해 1억원의 사업비(70% 보조 사업)를 요구했다. 다행히 군수까지 설득시켜 예산이 통과됐는데 군의회에서 제동이 걸렸다. 이유는 성공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한 개인에게 많은 돈을 투자할 필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2.04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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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 2000년대 밀레니엄 시대에 들어서면서 IT업계에서는 컴퓨터에 버그가 발생하여 마치 세상이 뒤집어 갈 것 같이 얘기하고 있었지만 우리 농업계에선 ‘기후 온난화’ 문제가 가장 큰 화두였다.연일 매스컴에서는 제주도 감귤이 육상하고 사과 재배지역이 크게 바뀐다는 등 기후 온난화에 따른 농업 생태계 변화에 대해서 대서특필 중이었다.이때 강진군에서도 농업분야에 있어서 날씨로 인해 변화가 올 것이라는 것을 예측하고 대비를 시작했다.그 당시 필자의 생각에도 ‘제주에서 재배되는 감귤과 부지화가 머지않아 우리 강진에서도 재배할 수 있겠구나‘라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1.28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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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감은 과육에 들어 있는 타닌이 응고·침전되어 단맛을 내는데, 타닌이 당으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고 불용성이 되어 떫은맛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다.떫은감에 비해 내한성이 약하기 때문에 9월 평균기온이 21~23℃, 10월 평균기온이 15℃ 이상이어야 좋은 품질의 것이 생산된다.이 말은 남쪽의 따뜻한 지방에서만 자랄 수 있다는 말로 앞으로 단감의 전망은 있다고 보며 더 좋은 품종과 재배기술로 강진의 단감이 더 발전되기를 기원한다.단감과 함께 강진의 남부지역 4개면에 권장했던 과일이 바로 유자다. 유자는 한쪽으로 치우친 공 모양이며 지름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1.21 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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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의 과수 재배실태를 살펴보면 1960년 이전까지는 경제작물로서 과수가 아닌 집 주변에 몇 그루씩 심어져 있거나 병충해 방제나 정지 전정 등 나무 관리에 신경을 쓰지 못하고 그저 열리는 데로 수확해 간식용 등으로 사용됐다.1962년에 농촌지도소에서 과수 유실수 집단부락 전시사업을 전개했는데 살구, 밤, 떫은감, 은행 등을 농사개량구락부(현재 농촌지도자회)와 4H 구락부가 각 1㏊씩 심도록 하여 비배관리, 병충해 방제, 정지전정 등을 지도했다.이후 본격적인 사업이 전개된 것은 1968년 ‘농어촌 소득증대 특별사업’이 지원되면서 부터
김치형의 강진농업이야기
오기안 기자
2021.01.14 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