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인접한 강진, 크고 작은 해양사고 많아

1100년 청자운송중 태안앞바다서 배 침몰
1770년 12월 제주~남포 항로서 21명 사망
1828년 3월 강진주민 36명 일본으로 표류
1979년 제주도서 옹기팔고 오던 칠량 주민 2명 실종 1명 사망
2005년 5월 완도 청산앞바다서 낚시주민 4명 실종

세월호 침몰사고가 전 국민을 비통하게 하고 있다. 2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직도 바다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갇혀 있다. 평온한 바다가 때론 얼마나 잔인하고 사납게 인간을 무너뜨리는지 실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바다에 인접해 살아 온 강진사람들은 오랫동안 저 위험한 바다를 실감하며 살았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동력선이 도입된 게 1900년대 초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는 무조건 돛을 달고 바람에 의지해 배가 움직였다. 나침반도 없고 일기 예보도 없던 시절, 지금 보다 훨씬 많은 해난사고가 났을 것이고 인명피해도 많았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강진관련 대형 해난사고를 파악해 보자. 기록적으로 볼 때, 강진과 관련된 최초의 해난사고로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고려시대 청자선박의 침몰사고다.

900여년전 그러니까 1100년 경에 탐진에서 개경으로 가던 청자를 가득 실은 목선이 충남 태안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배의 규모는 6명 정도의 선원이 타고 있을 정도였고, 발굴과정에서 선원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골이 발견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들어서는 1770년 12월에 강진 남당포~제주도 뱃길사이에서 일어났던 대형 해난사고 기록이 있다. 1770년 12월 25일 제주의 장한철이란 사람이 서울에 과거를 보러가기 위해 제주항에서 29명의 일행과 함께 배를 타고 강진의 남당포(지금의 남포마을)마을로 항해를 시작했다.

그러다가 완도 소안도 인근에서 갑자기 폭풍우를 만나 서쪽으로 밀려 표류하기 시작해 일본을 거쳐 완도 청산도에 상륙하려다 많은 사람이 실종됐다 제주에서 출발한 29명중 단지 8명만이 살아 남았을 뿐이다.

1800년대 들어 보이는 해난사고는 일본으로 표류한 강진사람들에 대한 기록이다. 1828년 3월 강진주민 36명이 일본 나가사키로 표류해 귀환했다. 일본측 기록에 따르면 이밖에도 1408년부터 1888년까지 우리나라 동남부지역에서 일본쪽으로 표류한 사고 건수가 1천109건에 달한다.

1900년대 들어 강진과 관련된 해난사고를 꼽는다면 1979년 있었던 옹기배의 일본표류 사고를 꼽을 수 있다. 80년 초 제주로 옹기를 팔러갔던 칠량 봉황주민들이 돌아오는 길에 태풍을 만나 일본으로 표류했다. 3명의 선원중 2명은 실종되고 한명은 일본 섬에서 시신이 발견돼 고향으로 운구돼 왔다.

가장 최근의 강진관련 대형 해난 사고는 지난 2005년 2월 완도군 청산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낚시배 충돌사건을 꼽을 수 있다. 2월 12일 오전 7시경에 청산도 북서방 6.5㎞ 해상에서 마량선적 7.93t급 낚시어선 해마레져호와 중국선적 884t급 활어운반선 'FU YUAN YU'호가 충돌했는데 낚시배가 침몰하면서 배에 타고 있던 강진주민 4명이 실종됐다. 해경과 어선 등이 총 출동해 한달가까이 수색작업을 벌였으나 실종자는 한명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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