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초기부터 건너온 듯... 1429년에는 마량이란 지명 첫 등장

제주의 말이 언제부터 마량을 통해 육지로 건너왔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미 고려문종 27년(1073)에 제주마를 공물로 바친기록이 있으며  태조 7년 1398년에 ‘제주(濟州)에 명하여 세공마(歲貢馬) 1백 필과 소 1백 두(頭)를 바치게 하였다’는 실록이 있다.

공출마는 강진의 마량과 해남을 동시에 도착지로 이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강진에서 마량(馬梁)이란 지명이 역사기록에 처음 보이는 것도 세종 6년 때인 1429년이다. 지명의 의미만을 두고 볼 때 비슷한 시기에 마량에 이미 제주마가 도착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저런 기록들을 종합해 볼 때 조선초기부터 제주에서 강진의 마량이나 해남의 어란진등으로 실려오는 공마가 있었으며, 초기에는 송출작업이 질서없이 진행되다가 1400년대를 전후해서 한라산에 목장도 축조되고, 육지에는 말이 쉬어갈 목장도 만드는등 체계적인 공출마 수송시스템이 정립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5마지간(五馬之間)이라 불리는 마량의 원마(元馬), 숙마(宿馬), 원마(垣馬), 백마(白馬), 음마(飮馬)등의 마을과 지명도 이때를 전후해서 생겨 났다고 보면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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