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3년 일본인 나까시마 최초보고

1916년 조선총독 방문... 강진 한정식 역사되기도
지금까지 188기 확인

지금까지 칠량과 대구일대에서 파악된 청자요지는 모두 188기다. 물론 이중에는 용운리 10-1호기도 포함돼 있다. 1991년 8월부터 1992년 2월까지 강진군의 발주로 해강도자미술관이 주축이 되어 강진의 청자요지를 재삼 정밀조사해서 파악한 규모다.

최초로 청자요지를 발견한 사람은 1913년 강진군 대구면 주재소에 근무하던 나까시마(中島義軍)란 사람이였다. 최초로 청자요지를 발견 상부에 보고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914년에는 당시 이왕직 박물관의 스에마쓰(末松熊彦)가 현지를 조사하고 1916년 조선총독이 강진지역을 방문하여 경성일보에 보도되면서 일반에게 알려졌다고 한다. 당시 조선총독이 내려왔을 때 강진의 갑부들이 서울의 궁중요리사들을 대거 데리고 내려와 총독을 대접했는데, 이때부터 강진의 한정식이 유명해졌다는 설이 있다.

그러면서 최초로 본격적이고 정밀한 조사를 한 것은 1928년에 조선 총독부박물관의 노모리(野守建)와 오가와(小川敬吉)에 의해서 이루어졌다.

1939년 10월18일에는 노모리의 조사자료를 근거로 청자요지가 분포되어 있는 강진지역의 18만7천582평이 100여개소로 구획되어 「조선보물고적 명승천연기념물 보존령」에 의거 고적 107호로 지정돼 법적으로 보존되는 근거를 마련했다.

해방후 우리나라에서는 1959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현지조사를 한 일이있으며 1963년 1월 21일에는 우리나라 문교부 고시를 통해 강진 청자요지가 국가사적 68호로 재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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