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이전복원 사업 ‘역사적 의미’ 준비없이 진행, 박스에서 6년간 지내기도

용운리 10호기는 국립중앙박물관이 1980년부터 1982년까지 용운리 저수지 공사를 하기위해 발굴 조사를 할 때 나왔다. 용운리 저수지 부지에서 모두 4기의 가마유구가 확인되었다.

그 중 2기는 조사 후 경화처리해서 10-1호 가마는 국립광주박물관에, 나머지 10-4호가마는 당전마을 강진 청자박물관 옆에 전시돼 있다.

관심을 끄는 것은 용운리 10호기 이전이 우리나라 청자요지조사 역사상 최초의 이전 복원사업이었다는 것이다.

청자가마를 보존과학 처리를 한 다음 이를 경화시켜 다시 복원 전시하는 최초의 사업이었다. 당시 문화재계에서는 이 ‘최초의 사업’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었다.

그러나 용운리 10-1호 가마는 국립광주박물관으로 가지고 오던 순간부터 수난을 겪어왔다. 국립광주박물관 측은 당시 가마를 예정대로 경화처리해서 6조각으로 분리한 다음 광주박물관으로 가져 갔으나 전시시설이 없어 박스에 넣어 6년 동안이나 이를 야적해 두었다.

그러다가 1988년 조선내화 이훈동회장이 보호각 시설비로 1억5천만원을 기증해서 현재의 비가림 시설을 마련했다. 국립박물관이란 국가기관이 중요한 발굴 문화재를 옮겨가면서 보호계획 조차 마련하지 않았던 것이다.

더욱이 ‘청자요지조사 역사상’ 첫 이전 복원사업이였다면 상당한 준비가 필요했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 이후 관리도 문제였다.

땅속에 있던 가마가 공기와 빛에 노출되면서 속절없이 파괴되고 있지만 댐질식 수리에만 급급할 뿐 더 이상의 어떤 대책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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