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된 연못주변 새싹들의 향연 볼만

고목에서 솟아난 푸른잎들 세월잊게해
원래는 백련지로 유명, 여름이면 백련꽃 세상
문중후손들 관리 어려움 호소 

지난 19일 오후 성전 금당마을의 연못에 버드나무들의 그림자가 비추고 있다. 버드나무 그림자는 여름에는 백련이 빽빽히 들어차기 때문에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운 풍광이다.
성전면 금당마을 연못은 백련이 피는 곳으로 유명하다. 여름이되면 하얀 백련이 입추의 여지없이 연못에 들어찬다. 그러나 금당마을 연못은 봄이면 그 고고함을 더 깊게 느낄수 있는 곳이다. 400년이 넘은 고목에서 푸른 새싹이 솟아나고, 그 사이를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어대며 잔물결을 일으키는 모습은 만감을 잊게 한다.

한 여름이 오기전에 꼭 성전 금당마을 연못에 가볼 것을 권해 본다. 금당마을은 원주이씨가 460여년전 정착한 마을이다. 원래 천석꾼이였던 이씨 종가는 그 재산이 더 늘어나지도 더 줄어들지도 않아 그 정도의 재산만 대대로 유지해온 집안으로 유명하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는 의미다.

이 집안의 종손 이상욱(91)옹이 그동안 고택과 연못을 관리했으나 지금은 광주의 효요양병원에서 입원중이다. 대신 이상욱옹의 조카 이철주(67)씨가 마을의 문중재산을 관리하고 있다.

그럼 연못은 언제쯤 만들어 졌을까. 이런 구전이 있다. 400여년전 신축한 종갓집이 오래 가질 못했다. 귀틀이 어긋나고 기둥이 기울고 벽이 벌어졌다. 다시 지어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일이 반복 되자 주인은 속으로 불안했다. 마을에는 '종갓집은 또 무너진다. 비법을 써야한다’는 괴소문이 번졌다.

이 소문은 한 사내가 노모에게 비밀스럽게 한 말이 새나간 것이다. 주인은 그 모자를 불러들여서 집이 무너지는 이유와 비법이 무엇이냐고 다그쳤다.

그 사내가 입을 열었다. "이 마을은 신성스러운 거북이가 산에서 내려와 물을 찾는 형국입니다. 그런데 물이 없습니다. 집 앞에 연못을 크게 파면 다시는 무너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집터를 조금 옮겨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대대로 부를 누리겠습니다."

그의 말에 따라 연못을 팠고 집도 터를 옮겨 짓게 됐다. 지금도 그 연못이 남아있고, 그 고택도 일부 개축은 됐지만 400년이 흐른 지금까지 그 터를 지키고 있으며 대대로 천석꾼의 부를 누려왔다고 한다.

연못은 두 개의 섬과 하나의 정자로 이뤄졌다. 정자의 이름은 백련당이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그냥 초당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지금의 정자는 1930년에 지은 것이다. 그러니까 오래전 이곳에는 초가지붕으로 된 정자가 있었을지 모를 일이다.

동쪽 섬에는 수백년된 소나무가 고풍스럽게 서 있다. 작은섬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소나무의 모습이 조금은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서쪽 섬에는 작은 대나무가 자란다. 대나무는 작은 봄바람에서 사삭거리며 몸을 움직인다.

연못 주변은 역시 수백년된 버드나무가 금방이라도 물속으로 몸을 눕힐듯한 모습으로 촘촘히 자라고 있다. 백련당 앞 작은 소나무는 한쪽 가지가 물속에 닿는듯 하지만 자세히 보면 물에 달랑말랑하며 균형을 잡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연못 주변을 걸어 보았다. 인기척에 놀란 개구리들이 풍덩하며 물속으로 뛰어들어갔다. 연못안에는 수많은 수초들이 봄 햇볕을 받으려고 서로 경쟁하고 있다. 고목같은 버드나무에는 어느덧 푸른잎이 다 자라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원주이씨 문중도 고민이 있다. 어르신들이 모두 연로하시면서 고택과 연못을 관리할 사람도 부족하다. 고택은 400여년전 지은 원주이씨 종갓집이다. 그러나 지금은 텅 비어 있고 풍파에 여기저기가 부서지고 있다. 고택과 연못을 관리하고 있는 이철주씨는 “비어 있는 고택에 도둑이 들어오고 비바람에 사방데가 성한 곳이 없다”며 “잘 관리가 되어야 할 텐데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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