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네 살, 동생은 두 살, 아버지는 스물넷 이셨지요”

6남매중 장남이던 부친, 효자로 소문
생활비라도 벌어 보겠다고 옹기배 탑승

 

칠량 봉황마을에 사는 박종채씨가 아버지 박순조씨의 초상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한장밖에 없는 부친의 군대사진으로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칠량 봉황마을에 사는 박종채씨가 아버지 박순조씨의 초상화를 들어 보이고 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한장밖에 없는 부친의 군대사진으로 초상화를 그렸다고 한다.

 

24세때 집을 나섰던 아버지는 침몰한 배가 70년만에 발견됐다는 소식으로 돌아왔다. 그때 4살이었던 아들은 이제 70대의 노구가 됐다.

칠량 봉황마을 박종채(73)씨는 며칠전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아버지가 탔던 것으로 추정되는 옹기선이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버지 박순조(당시 24세)씨가 바다에서 실종된 후 70여년만의 소식이었다.

박씨는 만감이 교차하며 옛 생각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부친의 시신은 물론 소집품 하나 전달받지 못했지만 배가 발견됐다는 것 만으로도 마음이 놓이는 일이었다.

할머니로부터 전해들은 내용에 따르면 아버지는 그해 처음 옹기배에 올랐다. 세 명이 1조가 되어 옹기배를 탔다. 군대를 막 제대하고 생활비라도 조금 벌어 볼 요량이었다. 6남매중 장남이었던 아버지는 효자였다. 옹기를 팔고 오면 모친과 동생들의 옷을 사주겠다고 기분이 들떠 있었다. 군대가기 전에 결혼을 해서 아이가 4살, 두 살 그랬다. 

때는 음력 10월 4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겨울이 몹씨 추울때였다. 비록 초겨울이었지만 바닷바람이 예사롭지가 않았다. 아침 일찍 떠나는 배를 마을 사람들이 배웅했다. 그중에는 이제 갓 스무살이던 부인도 끼어 있었다. 한 아이는 업고, 한 아이는 손을 잡은채 처음으로 옹기배를 타고 떠나는 남편을 배웅했다.

그날 오후 갑자기 바람이 많이 불었다. 처음에 가족들과 동네사람들은 설마 무슨일이 있을까 싶었다. 옹기배가 나가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세 달까지 돌아다던 시절이다. 그러나 시일이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자 불안해졌다. 평소 옹기배가 다니는 해안가 마을과 섬을 수소문 했지만 그 배를 봤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배 출항했던 음력 12월 3일에 제사
무당불러 마을뒷산에 가묘도 만들어


배가 태풍을 만나 다른 곳으로 표류돼 흘러갈수 있었다. 기다려 봤지만 허사였다. 배가 표류해 어느곳으로 갔다면 한사람이라도 살아왔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반년이 넘도록 한 사람도 돌아오지 않자 마을 사람들은 하나하나 포기하기 시작했다.

박종채씨의 집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갓 스무살이던 며느리를 두고 볼수 없었던 시부모님은 며느리를 친정으로 보내 재가하도록 해 주었다. 억지로 보낸 친정이었다. 어린 자식 둘은 시어머니가 맡았다. 그렇게 두 아이는 하루 아침에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 마저 떠나 보내 부모의 정을 모르고 살아야 했다. 대신 할머니 밑에서 누구보다 많은 정을 받으며 살았다고 박씨는 설명했다.

박종채씨는 20대 초반에 옹기배를 잠깐 탄 적이 있었다. 배가 고흥 주변을 지나던 때 사공을 맡은 어른이 갑자기 배를 멈추더니 바다를 향해 술을 부어 절을 하라고 했다. 무슨일인가 싶어하는데 사공은 “자네 부친이 이 근방에서 사고를 당하셨다네”하고 알려주었다. 그때 사고해역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에게 술을 따랐다.

부친의 제사는 배가 마을앞 부두를 떠난 음력 10월 4일에 매년 지내 오고 있다. 마을 뒷산에 무당을 불러 혼을 건저 올려 가무덤도 만들었다. 

명절때가 되면 부친의 묘소를 찾아 술을 따라 드렸고, 제삿날이 되면 여느 집안 처럼 제사를 지냈다. 부친의 묘에 성묘를 하면서 가묘라는 생각을 해본적이 별로 없었다. 아버지 얼굴은 기억나지 않지만 늘 가슴속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지낸 세월이었다.   

박종채씨는 “어려운 세월이었지만 모두들 열심히 살았기 때문에 후회는 없다”며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 위령제 비슷한 것을 지낸다고 하니까 그때나 한번 고흥에 가볼 생각이다”고 말했다.                    /주희춘 기자


70년전 실종된 박순조씨의 직계 후손들입니다
 

 

이 화려한 가족사진은 올해 73세가 된 박종채씨의 3년전 칠순 잔치 사진이다. 모두 햐얀셔츠와 청바지로 옷을 통일했다. 사진 앞쪽에 있는 사람들은 신발을 벗었다. 중간의 좌측이 당시 4살이던 박종채씨 부부이고, 우측이 당시 2살이던 동생 부부다.
 
그러니까 70년전 24세의 나이로 옹기배 침몰사고때 실종된 박순조씨의 직계 후손들이 한자리에 모인 사진이다. 뒤쪽의 손자 손녀, 증손까지 20여명에 가깝다. 박순조씨는 오래 전 떠났지만 그의 후손들은 쑥쑥 자라 이렇게 대가족의 꽃을 피웠다. 

사진을 곰곰히 보고 있노라면, 어떤 고난이나 아픔도 인간의 삶에 대한 의욕을 꺾을 수 없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한다. 아버지가 바다에서 실종돼 하루 아침에 고아가 됐던 4살, 2살 두 형제는 지나는 세월과 부대끼며 열심히 살다보니 어느덧 새로운 삶이 열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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