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병영성 객사터, 위용 자랑...

여수 진남관· 통영 세병관 보다 더 커

국보 304호인 여수 진남관은 이순신장군이 수군을 총지휘하던 건물로 그동안 조선시대 지방목조건물로는 최대규모를 자랑했다. 그러나 병영성지에서 발견된 객사건물은 이보다 큰 것으로 확인됐다.
여수 진남관(국보 304호) 이나 경남 통영의 세병관(국보 305호)을 떠올리면 될 것 같다. 진남관은 1599년(선조 32)년에 전라좌수영의 객사건물로 지어졌고, 세병관은 같은 성격으로 1603년(선조 36년)에 지어졌다.

모두 군부대에서 사령관이 집무를 보던 곳으로 부대의 핵심건물이다. 진남관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때 이순신 장군이 수군을 총 지위하던 곳이다. 지금도 사단본부 같은 곳을 가보면 부대내 가장 웅장하고 큰 건물은 사령관이 집무를 보는 건물이다.

이런 건물이 강진 병영의 병영성내에도 있었다는 사실이 이번 발굴조사에서 확인됐다. 그런데 건물의 규모가 인상적이다. 진남루에 가본 사람들은 기억하겠지만 누구나 건물의 웅장함에 위압된다.

당시 수군의 위용을 보이기 위해 그같은 규모의 건물을 지었을 것이다. 진남루의 규모는 정면 15칸, 측면 5칸, 건평 240평(약 780㎡)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거대하고 웅장한 건물이다.

지금까지 현존하는 지방 관아 건물로는 제일 큰 건물로 평가받아 왔다. 통영의 세병관은 크기가 정면 9칸 112자로 정면의 길이가 진남루보다 적지만 측면이 6칸 56자로 길이가 56m에 달해 진남루 보다 더 넓다.

그러나 병영성 내에 있었던 객사건물은 진남루나 세병관 보다 더 큰 건물이 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발굴을 통해 확인된 병영성의 객사 크기는 정면 11칸, 측면 4칸 규모다.

이는 칸수로는 진남루나 세병관보다 적지만 각 칸의 기둥거리가 320~570cm 내외여서 전체적으로 정면의 길이가 진남루나 세병관 보다 큰 것으로 확인됐다. 전라병영성에 전국에서 가장 큰 객사건물이 있었던 셈이다.

병영성지 서북쪽에서 발견된 객사 건물자리는 조선시대 지방에서 가장 큰 목조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지표조사결과가 나왔다.
문헌기록에 따르면 병영성의 객사는 태종17년(1417년) 초축된 중심건물이다. 동서로 마루방 있고 서헌(西軒)의 편액을 청심각(淸心閣)이라 했다.

이후 ‘영조43년(1767년)에 1차례 개축된 기록이 있으며 다음해인 영조44년(1768년)에는 청심각을 망미루(望美樓)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1차 축조 이후 2차례 중복양상이 확인돼 이같은 문헌기록을 뒷받침 했다.

객사 주변 건물의 이름이 망미루였다니 이름이 참 아름답다. 어찌보면 군부대의 건물이름으로는 어울리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객사가 있었던 곳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그 이름에 수긍이 갔다.

남쪽으로 펼쳐져 있는 군동쪽 비파산과 까치내재, 보은산 자락이 마치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당시에는 작천쪽에서 내려오는 금강천에 큰 배가 들어왔을 정도로 병영성 앞으로 큰 강이 흘렀다고 한다. 망미루는 적격의 이름이었을 것이다.   

현재까지 전체 면적의 약 20% 정도가 진행된 병영성 발굴에서는 건물지 15개와 연지 4개소, 담장지, 배수로, 우물 등의 유구들이 잘 남아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으로 병영성에 대한 발굴은 계속된다.

발굴을 하고 있는 한울문화재연구원 박호승 조사팀장은 “전라병영성지의 주요 관청시설이 위치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는 북서측 지역에서는 예상대로 다양한 건물지가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확인되었다”며 “아직 성내부에 대한 조사가 완료된 시점이 아니어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문헌 및 유구의 양상으로 볼 때 객사, 동헌·내아, 연희당 관련시설로 추정 할만하다“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