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춘/편집국장

기가 막히는 일이다. 경주에 지진이 일어났는데 강진이라고 한다. 며칠뒤에는 경주에 또 강진이 왔다고 했다. ‘강진발생’ ‘강진흔들’ ‘강진피해’까지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강진, 또 온다’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일본처럼 다른나라에서 일어난 지진을 강진이라고 하면 화라도 냈지만 국내 일이니 뭐라 항의하기도 그렇다. 강진의 아파트도 흔들렸는데, 경주의 강진을 강진이라고 하겠다는데 뭐라 할 것인가. 이제 강진은 전 국민들 사이에 고유명사로 자리잡아가는 분위기다.

큰 지진을 강진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강진사람들에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변변한 공장하나 없는 강진에서 어떻게 해서든 친자연적이고 문화적인 이미지로 먹고 살아 보려고 발버둥치는데, 건물이 초토화된 살벌한 TV화면 위에 ‘강진’이라고 나온다.

예전에는 ‘强震’이라고 한문이라도 사용했지만 이제는 떳떳하게 ‘강진’이다. 이미지를 먹고사는 요즘 SNS 세대들에게 이런 중독거리가 없다. ‘남도답사1번지 강진은 건물이 무너지고 초토화된 곳이다’라는 이미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빠르게 흡수되고 있다.

이런 우려 때문에 우리 강진에서는 그동안 TV나 신문들에게 강진이란 표현을 자제해 달라는 요청을 많이 했다. 지난 6월에는 강진군의회 의원들이 임시회에서 지진관련 언론보도 개선을 위한 성명서를 채택해서 각 언론사에 보냈다. 지금으로부터 17년전인 1999년에는 강진청년회의소가 각 방송사와 신문사에 공문을 보내 강진이란 표현을 자제해 주도록 요청했다. 그러나 그들은 요지부동이다. 가장 강렬하고 가장 간결한 강진이란 표현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이면에는 우리 강진사람들의 다소 소극적인 대처도 있었다. 큰 항의를 하지 않았다. 요즘 방송이나 신문에 ‘충청도 핫바지’나 ‘삼천포로 빠져버렸다’는 표현은 거의 나오지 않는다. 현지 주민들에게 큰 봉변을 당한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강진사람들은 ‘강진’ 사용를 그럭저럭 넘어가다 오늘까지 왔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70년대 초반 전국을 강타했던 법창야화 ‘강진 갈갈이 사건’도 비슷한 면이 있다. 지금도 여수하면 밀수꾼들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법창야화 덕분이다. 법창야화는 ‘강진갈갈이사건’이 끝난 얼마후 ‘안개낀 여수항’이란 소재를 방송했다. 여수가 밀수와 치정, 음모의 도시로 묘사됐다.

방송국에 항의가 들어오고 난리가 났다. 여수사람들은 그때 “여수 이미지가 ×되야 부렀다”며 죽기살기 식으로 달려 들었다.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자 MBC측은 당초 60회 분량이던 문제의 드라마를 40회로 종방했다. ‘강진갈갈이사건’이야 말로 ‘안개낀 여수항’ 보다 치정과 음모가 훨씬 악랄하게 묘사된 픽션에 가까운 드라마였다. 그러나 강진사람들은 강력한 항의를 하지 않았다. 강진갈갈이사건은 예정대로 모두 방송됐다.

아무튼 큰 지진을 강진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대세가 되어 버렸다. 어떻게 막을 도리가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우리는 역발상 해야 한다. 경주에서 5.8의 지진이 발생한 이상 앞으로 지진의 부가가치는 매우 높아질 것이다. 우선 전국에서 강진을 큰 지진이나 각종 자연재해로부터 가장 안전한 지역으로 만들어 가면 어떨까. 다른 지역보다 먼저 말이다.

건물의 내진설계 자체기준을 높이고 아직 내진설계가 되어 있지 않은 건물을 철저하게 점검하고, 보강해서 강진의 건물은 규모 7.0까지는 100% 안전하다는 것을 전국에 선포하는 것이다. 지진과 각종 자연재해에 대비한 완벽한 대응 매뉴얼과 능력도 준비해야 한다. 

전국적인 지진체험 및 대비 훈련장을 강진에 유치해서 ‘강진이 발생하면 어떻게 대처해야하는지는 강진에 가야 배울 수 있다’는 공식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한국지진연구소를 크게 개편해서 강진으로 옮기게 하는 것도 해야할 일이다. 모든 지진관련 기관은 강진으로 통하게 하자는 것이다. 자연재해로부터 가장 안전하게 살고 싶다면 강진으로 이사 오라는 전국 마케팅도 가능하다.

지진관련 산업도 강진에서 본격 육성해 보자.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지진관련 산업이 걸음마 단계라고 한다. 이번에 경주에서 지진이 나자 일본에서 개인용 구급품을 구입한 사람들이 급증했다. 지진구급품 만드는 공장을 성전산단에 유치하면 어떨까. 더 크게는 내진설계 및 자재 생산 업체라든가 그런것도 많다. 강진으로 훼손된 강진의 이미지를 강진으로 살려서 강진의 먹거리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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