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희춘/편집국장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차례상을 차려 제를 올리고 온 가족이 산소를 찾아 조상님들께 극진한 예를 갖출 것이다. 유교문화가 뿌리내린 우리나라에서 돌아가신 조상들에게 예를 올리는 것은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예의로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편으로 죽은 사람들을 멀리 한다.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먼 산속에 묻는게 우리의 풍습이다. 행여 공원묘지가 마을 가까운 곳에 설치되는 것은 절대 있어서는 안될 일이고, 나의 고향에 화장장이라도 설치되는 것은 목숨을 걸고 반대해야 하는 일로 생각되고 있다. 

죽은 사람을 멀리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그렇게 흔한 전통은 아니다. 가까운 일본에서는 마을에 공동묘지가 있다. 집 화단에 조상들의 납골당을 설치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이고, 집안에 조상님을 화장한 뼈가루를 모시고 있는 사례도 많다. 강진에서 올들어 일본 가정으로 농박체험을 간 사람들 중에 안방에 조상의 납골함을 모시고 있는 것을 보며 질겁한 사람들이 꽤 있다. 그게 일본의 전통이다.

미국은 공원묘지 주변이 주택지로 각광받고 있는지 오래다. 공원묘지를 곧 공원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공원주변의 주택부지 가격이 자연스럽게 높다.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벤쿠버 시내와 가까운 곳에 있는 공원묘지들은 젊은 연인들의 단골 데이트 코스이고 공원묘지 주변에는 주택단지가 들어서는게 일반적인 현상이라고 한다. 산사람과 죽은 사람이 한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모습이다.

그들은 우리 처럼 명절에 극진한 제사를 올리는 것이나 매년 제삿날에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 제사를 드리는 일은 덜 하지만 대신 생존자와 망자가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문화를 터득함으로서 조상들을 오히려 더 존경하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문화는 젊은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돼 ‘생존자와 망자’의 공존뿐 아니라 현실에서 ‘젊은이와 늙은이’의 공존 또한 엮어 냄으로서 세대간 공존을 이루는 큰 힘을 만들고 있다.

강진군이 세계모란공원 개장에 맞춰 지역 대표 시인인 영랑 김윤식 선생의 묘를 이전하기 위해 준비해왔던 일이 성사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이다. 우리는 영랑의 시는 눈부시도록 좋아하면서 영랑의 주검은 죽도록 싫은 것이다. 그가 죽어 뼈 한조각 조차 남아 있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서 묘를 만든다고 해도 한줌흙을 묻고 간단한 기념석 하나 정도를 세울 요량이었겠지만 우리는 그것 마저도 싫은 것이다.

그러고 보니 강진뿐 아니라 전국 관광지에서 돌아가신 유명 인사들의 묘를 관광자원으로 하는 곳은 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어떤 문화계 인사는 서울 망우리 공동묘지에 있는 화가 김중섭이나 소파 방정환, 작곡가 채동선, 만해 한용운 선생등의 묘에 사람들이 찾지 않는 것을 ‘통탄할 일’로 꼽은 적이 있다. 그렇게 틀린말이 아니다.

다른 나라와 또 비교해서 그렇지만, 1804년 지어진 프랑스 파리의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에는 콩트, 쇼팽, 이브 몽땅등 이름만 들어도 경외로운 프랑스의 지식인, 예술가, 정치인들이 한곳에 잠들어 있다. 이곳은 오래전부터 프랑스 시민들 뿐만 아니라 파리를 여행하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찾아오는 중요한 관광명소다.

프랑스 파리 근교에 있는 오베르 쉬르와즈라는 마을은 화가 반고흐가 죽기직전까지 살았고 반고흐의 무덤이 있는 마을로 유명하다. 강진사람들도 많이 가본 곳이다. 마을 바로 뒤편에 있는 이 묘지에 연중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다. 망자가 곧관광자원인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조상님들을 극진하게 경배하는 우리나라에서 왜 한편으로 망자 푸대접 문화가 뿌리깊게 흐르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역사적으로 전염병을 많이 겪은 과정에서 형성된 문화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해방직후 강진에서도 호열자(콜레라)가 발생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은 산사람들과 철저하게 격리해야 했기 때문에 되도록 집에서 먼 곳에 매장해야 했고, 전염병으로 죽은 사람들에게 가지 못하도록 귀신이나 악령이라는 가공물을 만들어 유포함으로서 산 사람을 보호하려고 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서 죽은 사람은 늘 그렇게 대접해야 할 대상으로 뿌리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나라도 전염병을 겪기는 매 한가지였다. 이제 전염병은 국가에서 관리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망자에게 이토록 가혹한 문화를 유지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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