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풀에 묻히고, 담벽은 무너지고...관리인 없는 곳 수두룩‘폐허심각’

“이제 불망비 같은 것은 나라에서 관리해야 할 때”
포기할 수 없는 우리의 자산들, 체계적인 관리 필요

불망비나 효도비, 정려각들은 주로 도로변에 있는게 특징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으로 삼으라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요즘에는 관리가 되지 않아 모양이 좋지 않다. 좌측은 강진읍 도원마을에 있는 불망비다.
아주 오래전, 사람들은 길 옆에 여러 가지 기념비를 세웠다. 공덕비도 있고, 효자비, 열녀비도 있다. 기념비를 도로옆에 세운 것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 비석을 보고 배우고 익히라는 의미였다. 교훈으로 여기라는 상징이었다. 실제로 그런 기념비들이 사람들에게 끼친 영향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그때 세운 비석들은 이제 도로망이 바뀌면서 사람들의 눈에 띠지 않는 존재가 됐다. 관리도 허술해서 잡풀에 우거진 곳이 많다. 예전에는 후손들이 지극정성으로 모시며 자긍심을 표시했으나 요즘에는 그런 마음도 많이 없어진듯 하다.

강진읍 학명리 도원마을 강진읍~도암간 2차선 도로옆 강진철망 바로 아래쪽에는 고풍스러운 기념각 건물이 있다. 처마를 받치고 있는 기둥과 대들보, 기와의 규모등이 왠만한 사대부집 정자를 보는듯 하다. 이 기념각은 작은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건물이다. 기념각 안에는 김윤배 첨사를 기리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에는 ‘가선대부병마진관행평해군수겸수군첨절제사김공윤배불망비’라는 글이 한자로 새겨져 있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조선시대 말엽 이장수란 사람이 마을앞 학명리 63번지 일대 바다를 막는 간척사업을 시작했으나 자금사정으로 완공하지 못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김윤배 첨사가 이를 매입해서 간척지를 완공한 후 마을 사람들에게 경작하게 했다.

기아에 허덕이던 마을 주민들이 간척지 혜택을 많이 봤다. 이를 감사하게 여긴 주민들이 훗날 불망비(不忘碑)를 세웠는데 그때가 1940년이었다. 그러니까 70년 전에 세워진 비석이다.

그러나 이 비석은 지금 흉물이 되어 버렸다. 예전에 있던 담은 완전히 무너졌고, 주변에는 잡풀이 무성해 비석을 가릴 정도가 됐다. 주변 도로는 포장공사를 하느라 높아져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모양세가 되어 버렸다. 김윤배 첨사의 선행을 잊지 말자는 불망비는 완전히 망비가 되어 버린 모습이다.

비석 바로옆에 오랫동안 살고 있는 도원마을 이재천(89)어르신은 “아주 오래전에는 마을의 큰 자랑거리이자 상징적인 비석이였으나 직계후손들이 죽고 친척들도 이사를 가면서 관리하는 사람이 없어졌다”며 “이제는 불망비 같은 것을 나라에서 관리해 줄 때가 됐다”고 말했다. 

강진읍 서산리 옥치마을 입구 국도 2호선 바로 옆에는 모 문중의 효자각이 세워져 있다. 이곳 역시 예전 위쪽으로 4차선이 뚫리기 전에는 차가 가장 많이 다니는 도로변이었다. 1932년에 세운 건물인데 솟을 대문과 본채를 갖추고 있는 품격이 대단히 높아 보인다.

마을 어귀이자 대로변에 이런 건물을 세워 효행을 기린 것은 이 효자의 선행을 널리 알려 사회의 모범이 되길 바랬기 때문일 것이다. 이 효자문 역시 주변 관리가 되지 않아 풀이 무성하다. 도로변에 차량도 줄어 효자문을 보며 옛 교훈을 떠올리는 사람도 거의 없는 상태다. 

강진마을사 강진읍편(534페이지)에 묘비의 사연이 들어 있는데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이 비석의 주인공은 부모님을 봉양하는게 남달랐다. 한가지 예로 그는 당시 소고기를 가까운 강진장에서 사지않고 꼭 한참 떨어져 있는 영암장으로 가서 샀다고 한다. 이유는 강진은 인구가 많기 때문에 큰 황소를 잡으니까 고기가 질기고, 영암은 인구가 적어 작은 소를 잡기 때문에 고기가 부드러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소를 키우는 방법이나 소고기를 평가하는 기준이 지금과 많이 다를 때이지만 교통이 좋지 않던 시절 멀리까지 가서 부모님께 드릴 음식을 사온 것이 당시 사람들에게는 큰 효행으로 평가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먼지와 풀에 휩쌓이고 있는 기념각들이 이곳들만이 아니다. 기와가 깨져 쓰러져 내리고, 처마가 기울고 있는 오래된 기념각들이 이곳저곳에 산재해 있는 실정이다.

주민들은 “한때 지역민들의 자랑거리였던 기념각들이 세월이 지나면서 관리할 사람이 없어 흉물이 되어 가고 있다”며 “해당지역 마을이나 각 지역 사회단체들이 한곳정도씩 책임을 지고 관리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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