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희망찬 새 밀레니엄 시대 개막… 그때 강진인구는 5만1,238명

2000년 1월 1일 마량항쪽에서 역사적인 첫 해가 떠오르고 있다 <사진 = 2002 군정백서>
2001년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 찬반논쟁
70년대 이후 가장 첨예했던 주민대립
강진주민 1만6,000여명 유치찬성 서명
유치반대위 대대적 주민집회 개최
군정조정위원회 유치반대 결정으로 매듭

2000년이 왔다. 이제 해방된지가 벌써 55년이 됐다.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고 많은 분야에서 다양한 발전이 진행됐다. 정치적으로는 민선군수 시대가 열려 제도적으로 풀뿌리민주주의 시대 토대가 마련됐다. 그런 와중에 새로운 밀레니엄시대가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1900년도에서 2000년으로 넘어올 때 강진의 각종 지표를 살펴보자. 1999년말 그러니까 2000년으로 넘어갈 때 강진인구는 1만8,429가구에 5만1,238명을 기록하고 있었다. 강진의 인구는 2000년으로 접어든 그해에 5만명선이 무너져 4만9,313명으로 감소한다.

2000년 강진군의 예산은 1천377억8천만원이었다. 1995년 강진군 예산이 718억원이었으니까 5년만에 659억이 뛰어오른 규모였다. 역시 같은해 광공업 및 제조업체수는 65개였고, 여기에서 일하는 근로자수는 837명에 불과했다. 강진은 90년대 후반들어 광공업 및 제조업체 수가 급격히 줄어드는 양상이었다.

98년도 광공업및 제조업체수는 76개, 종업원수는 1,245명이었으며 99년도는 73개 835명이었다. 인구 5만의 도시에서 제조업체에 취업해 근무하는 사람이 835명에 불과한 것은 강진의 경제구조가 대단히 취약하다는 것을 말해주는 지표였다. 그렇게 강진은 2000년이라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고 있었다. 

희망과 기대속에 찾아온 2000년. 강진은 그해에 방사성폐기물 유치 찬반논란이라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다. 정부가 수년전부터 추진해 온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설치 문제가 본격적으로 수면위로 올라온 것이었다.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은 총 1조원의 예산이 투입되는 초대형 사업이었다. 한국전력 자회사인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영광 울진 월성원전 등지에서 나오는 작업복과 장갑, 각종 폐부품 등 중·저준위 폐기물이 2008년부터는 포화상태에 이를 것으로 보고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설을 추진해왔다.

한전은 처리장이 들어서는 자치단체에 특별지원사업비 1672억원, 소득증대 및 공공시설 지원사업비 914억원 등 총 2929억원을 지원할 계획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부지 공모를 통해 후보지가 결정되는 대로 건설에 착수, 2008년까지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짓고 2016년까지 사용후 연료 중간저장시설을 건설할 예정이었다. 정부는 핵폐기장이 건설되면 해당 지역에 35년간 2929억원의 정부자금이 인센티브로 지원돼 지역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길 수 있다고 방폐장 유치를 적극 유도하고 있었다.

전남북 지역 4곳서 신청했으나 모두 불발
방폐장 위치 2005년 경북 경주시로 최종결정
1조5436억원 투입 2014년 완공 현재 가동중

2000년 1월 1일 새벽 0시 강진읍 고성사에서 새천년 맞이 고암모종 타종식이 열리고 있는 모습이다. <사진 = 2002 군정백서>
전남북 지역에서 자치단체에 처리장 유치 청원서를 낸 곳은 강진을 비롯해 모두 4곳이었다. 강진군 주민 1만6300여명의 서명을 받아 군과 군의회에 청원서를 냈고 영광군 주민들이 2만5000여명, 전북 고창군 주민 1만2400여명이 청원을 했다. 또 진도군 주민 6100여명이 군과 군의회에 청원서를 냈다.

방폐장 후보지로 거론된 강진군, 영광군, 진도군, 고흥군, 전북 고창군에서 ‘호남지역 핵폐기물 반대대책위원회’ 가 출범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강진군과 영광군, 진도군 등 전남도내 3개 군지역 상가번영회 등은 핵폐기장유치위원회를 결성해 환경단체 회원들과 맞섰다.

강진에서도 논란이 본격화됐다. 핵폐기장유치추진위는 2001년 5월 4일 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출범식을 갖고 박병춘씨를 위원장으로 선출했다. 추진위는 당시 출범식에서 “침체된 지역경제를 회복시키고 지역에 보탬이되기위해서는 처리장의 허실을 충분이 알고 지역에 필요하다는 판단이 서면 주민의사를 결집할 필요가 있다”며 주민들을 상대로 설득작업을 계속하기로 했다.

유치위는 주민을 대상으로 한 선진지견학을 계속하겠다며 1회에 40여명정도가 출발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당시 박위원장은 “무조건찬성도 무조건 반대도 아니라 우리가 핵에대해 충분히 알아서 최종 결정을 하자는 것”이라며 “지역을 생각하는 마음은 찬성쪽이나 반대쪽이나 모두 같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치추진위는 각 읍면에 시설을 유치하자는 프랑카드를 게시한데이어 주민들을 상대로 찬성서명을 받았다.

한편에서는 방사성폐기물 강진설치를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방사성폐기물유치추진위원회는 공식출범식을 갖고 유치운동에 들어갔다. 강진핵폐기장반대대책위는 2001년 5월 14일강진읍 영랑로 일대에서 800여명의 군민들이 운집한 가운데 핵폐기장 강진건설반대 제1차 군민총궐기대회를 열었다.

궐기대회는 김동식, 김병완 공동의장의 개회사와 경과보고에 이어 이기태공동의장의 대회사로 이어졌다. 이 공동의장은 대회사에서 “강진에 핵폐기장을 건설하려는 어떠한 음모도 분쇄할 것”이라며 “핵폐기장을 위해 내려온 한전사람들은 당장 강진을 떠나주고 이를 추진하는 몇몇 지역주민들은 하루빨리 그 일을 그만두라”고 촉구했다.

궐기대회에 참석한 주민들은 이날 결의문에서 “강진군민은 생명과 미래를 위협하는 죽음의 핵정책·핵폐기장을 거부한다”며 “정부와 한전은 세계 추세에 따라 원전정책 포기하고 핵폐기장 계획을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반대위측은 최근 지역내 각 기관장들이 보내 온 핵폐기장에 대한 입장을 공개하고 답변을 보내오지 않은 군의회 의원들을 강력히 비난하기도 했다.
 
궐기대회를 마친 주민들은 터미널과 시장통∼강진군청으로 이어지는 가두행진을 벌였다.  이 문제는 법적분쟁으로도 번졌다. 유치추진위소속주민들이 반대대책위의 활동과 관련된 비판 광고를 지역신문에 싣자 반대대책위 공동의장 3명을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혐의로 경찰에 고발, 유치찬반 논란이 법적분쟁으로 번졌다. 

당시에 방사성폐기물처리장 유치논란에 대한 유홍준교수(영남대)와 정양모 전중앙국립박물관장(경기대 석좌교수)의 입장에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유교수는 강진을 ‘남도답사 1번지’로 만든 주인공이고 정교수은 강진의 청자를 발굴하고 집대성해 이 지역이 고려청자의 메카라는 것을 증명한 석학이었다.
 
두사람은 ‘강진을 강진사람보다 더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로 통할 정도로 강진과 친근하고 명예군민자격도 가지고 있다. 당시 영남대에 적을 두고 주로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유교수는 “매우 난처한 사안이다. 주민들이 찬반논란을 진행하고 있는 시점에서 강진에서 살지 않은 내 입장을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교수는 “원전이 있으니 폐기물처리장은 있어야 하고 어딘가에 장소를 찾아야겠지만 어디지역에 무슨 문화재가 있으니 안된다는 말을 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어디지역은 문화재가 있어도 폐기장이 들어서도 괜찮다는 말을 할 수 없다”고 밝혔다. 유교수는 “나를 아끼는 차원에서 이 문제에 대해 더 이상의 입장표명을 요청하지 말아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반면에 정관장은 적극적으로 의사표시를 했다. 정관장은 “핵폐기물처리장은 청자도요지와 정서적으로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지적했다. 정관장은 “모든 문화유산이 중요하겠지만 고려청자도요지는 세계적으로 가치가 있는 정말 중요한 문화재다”며 “청자자체만으로 엄청난 관광자산이 될것인데 정서적으로 동떨어진 시설물이 들어서면 많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관장은 “처리장의 안전은 과학자들이 보장하겠지만 관광지의 이미지적인 정서는 현대과학이 보장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만약 강진의 어디에라도 후보지가 된다면 문화유산에 대한 철저한 지표조사가 전제되어야 할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했다.

그러나 강진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이 비교적 빨리 내려졌다. 강진군은 같은 달 18일 군수와 실·과장으로 구성된 군정조정위원회를 열고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유치위가 1만6387명의 서명을 받아 제출한 건의에 반대 입장을 결정했다.

그 이후 방폐장 후보지는 공전을 거듭하다가 2005년에 경북 경주시로 최종 후보부지가 선정됐다. 사업은 2007년 7월에 시작돼 7년 만인 2014년 12월 1단계 처분시설 공사를 끝냈으며, 총사업비가 1조5436억원이 소요됐다. 경주 방폐장은 수면에서 30m 높이에 처분시설 입구가 위치해 있어 쓰나미에 안전하고, 폐기물이 저장되는 6기의 사일로는 진도 6.5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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