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농민운동가의 길로 이끌어 준 인생의 스승님

꿈이 없었던 시절 농민운동 교육 권유, 80년대 강진에 농민운동 태동에도 도움
농민운동의 주제가‘호남농민가’작사, 현구시인 시집 출판에 주도적 역할 큰 족적

장영근 전 전국농민협회 회장이 농민운동가의 길로 이끌어준 임상호 전 신협이사장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지금까지 80년에 가까운 세월을 살아오면서 내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준 사람이 있다. 아직까지 그분에 대한 존경심과 감사한 마음을 갖고 살고 있다. 그 분은 바로 임상호 전 강진신협 이사장님이다. 임 이사장님은 내가 농민운동에 눈을 뜰 수 있도록 해준 인생의 스승님이다.

내가 임 선생님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0대 시절이었다. 젊은 시절에 나는 강진읍 도원마을에서 땅을 임대받아 당시 친구였던 정문석 시인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임대받은 땅에 비닐하우스를 세우고 오이, 가지 등 각종 채소류를 키웠다.

이 때 임 선생님은 나의 농장 바로 앞에 거주하고 계셨는데 그 때 선생님을 처음 만나게 됐다. 선생님의 첫 인상은 한마디로 선비같다라는 느낌이 들었다. 깔끔하고 말수도 적어 처음에는 어렵다는 느낌도 들었지만 농사를 지으면서 자주 마주치고 인사를 드리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누구보다 마음이 따뜻한 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시에 나는 고향은 강진읍 춘전마을이었지만 부산에서 3년가량 살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이때만 하더라도 나의 미래와 농민들에 대한 걱정과 고민 등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이렇게 하루하루 지내고 있는 나에게 임 선생님이 어느 날 농민교육을 받아보라는 권유를 해주셨다.

권유를 받은 나는 농민교육이라는 말에 최신 농사기술과 작물에 대한 교육인 줄 알았다. 교육장소가 당시에 수원에 있었는데 수원으로 교육받으러 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농민교육에 대해 정확히 인지조차 하지 못했었다.

수원교육장에 도착하고 나서 4박5일동안 교육을 받고나니 농민의식교육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교육을 계기로 나의 인생이 180도 달라졌다. 교육 전까지만 하더라도 별다른 생각없이 농사를 지어왔지만 이 날 교육을 계기로 농민운동이 무엇이고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절실히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큰 감동을 받았다.

임상호 전 강진신협 이사장
이후 나는 수차례에 걸친 2차교육과 1년간의 전문가과정을 거쳐 농민운동에 대해 체계적으로 배웠다. 당시 전문가 과정을 1년동안 대학교수들이 직접 교육장에서 강의를 진행했는데 사회, 경제, 정치학 등 다양한 분야의 내용들을 가르쳐주었다. 이 때 교육을 통해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사회모습을 깨달을 수 있었고 농민운동에 새롭게 눈을 뜨게 됐고 농민운동에 대한 신념도 생겼다.

교육을 받고 강진으로 돌아온 후 본격적으로 농민운동에 뛰어들었고 이 때에도 임 선생님은 나에게 정신적인 지주와 같은 역할을 해주셨다. 필요할 때 항상 조언을 아끼지 않으셨고 따끔한 충고도 해주셨다. 또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항상 달려와 도움을 주셨다.

임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나는 농민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었던 강진군농민회를 창설할 수 있었고 1980년대 초반에는 전국농민협회를 만들어 초대회장을 맡아 열심히 활동할 수 있었다. 전국농민협회를 창설할 때에도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시며 도움을 많이 주신 덕분에 1~2대 회장을 맡아 열심히 농민운동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후 전국농민협회와 전국농민운동연합이라는 단체와 통합을 추진해 보다 농민운동가들이 하나로 모여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고 나는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또 임 선생님은 각종 집회나 시위에서 빠지지 않고 흘러나오는 주제가와 같은 ‘호남농민가’를 작사하셨을 정도로 예술적인 감각과 농민운동에 조회가 깊으셨다. 이후 강진신협 이사장으로도 20여년동안 활동하셨고 젊은 시절에는 성요셉여고에서 17년동안 국어교사로 활동하시며 지역인재를 길러내는데 기여하셨다. 이뿐만 아니라 1970년대에는 현구선생의 시집을 발간하는데 주축이 돼 현구시집을 출판하는 데 기여하셨고 이후 현구시인을 전국에 널리 알리는 데 일조를 하셨다.

임 선생님이 나를 농민운동가의 길로 이끌어주지 않으셨다면 아마 나쁜 길로 빠져 올바른 인생을 살지 못했을 것이다. 임 선생님은 나에게 있어서 롤모델이자 스승님이며 아버지와 같은 분이셨다. 또 내가 남들보다 늦은 나이인 30살에 결혼할 당시에 주례를 봐주셨을 정도로 나를 좋아해주셔서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다.

최근에는 먹고 살아가는 일이 바빠서 같은 강진읍에 거주하면서도 자주 찾아뵙지 못했는데 우연히 광주에서 만나뵙게 된 일이 있었다. 검은색이었던 머리가 백발이 되어 만난 탓인지 한 눈에 알아보지는 못하셨지만 뒤늦게 나를 알아보시고 손을 잡고 반가워하신 모습에 자주 찾아뵙지 못한 일이 두고두고 죄송스러웠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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