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일 좌측은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국보청자이고 나머지는 사당리서 나온 파편들이다.
고려시대 청자유물을 편리하게 분류하면 청자완성품과 청자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청자유물의 분포를 보면 청자를 생산했던 강진에서는 주로 청자편들이 발견됐고, 청자완성품들은 고려시대 수도였던 개경에서 발견된 것들이 다수다.

청자완성품은 개경에 많이 있었다. 일제강점기때 청자유통 경로를 보면 우선 개성의 상인들이 고려청자를 소장하는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일본인들이 고려청자를 미친듯이 수집했다. 또 국립박물관격이었던 개성박물관에 청자가 적지 않게 소장돼 있었고, 6.25 전쟁 직전 기차편으로 긴급 피란을 와서 오늘날 많은 국보급 청자들이 남쪽에 소장된 역사도 가지고 있다.

국보급 청자의 80% 이상이 강진에서 생산된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 말의 결정적 열쇠를 제공한 단서가 바로 1964년부터 강진에서 발굴된 청자파편들이었다. 사당리에서는 청자완성품은 나오지 않았지만 무수한 편들이 나왔다. 그 편들중에 국보급 청자의 한 귀퉁아리를 차지하는 것들이 무수히 출토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국보 94호인 청자과형병도 그중 한가지다.<사진>

경기도 장단군 장도면에 있는 고려 인종의 릉에서 출토됐는데 학계에서 강진 사당리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그 이유가 1964년 사당리 가마터에서 같은 모양, 같은 질의 파편들이 수습되었기 때문이다. 우측 사진은 사당리에서 출토된 청자과형병의 파편들의 모습으로 이번 발굴조사보고서에 나와 있다. 청자편의 국보청자의 족보가 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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