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경찰서 보안과장이던 김재옥 선생 주장, 칠량 동백리 한림마을 출신

철쇄를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오는 김억추장군의 후손들인 청주김씨 전국문중회원들이 세미나에 대거 참석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큰 관심을 끈 것은 실제로 철쇄 비슷한 것을 수거해 해남군청에 가져다 주었다는 1980년 당시 해남경찰서 보안과장으로 있던 김재옥(83)선생의 증언이였다. 김선생은 칠량면 동백리 한림마을 출신으로 당시 기억을 생생하게 가지고 있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980년 하반기 어느날이였다. 해남경찰서 보안과장 사무실에 있는데 우수영에서 왔다며 다섯명 정도의 주민들이 들어왔다. 그들이 내 보인 것은 길이 150㎝ 정도의 쇠사슬(철쇄)이였다. 녹이 많이 슨 것도 없이 색깔이 거무스름했다. 놀란 것은 쇠사슬의 두께였다. 고리를 이루는 철심 하나의 두께가 직경으로 3㎝가 넘게 보였다. 총 길이가 150㎝ 정도에 불과 했으나 한 사람의 힘으로는 들 수 없는 무게였다.

이것을 가지고 온 주민들은 진도연륙공사를 하면서 텃파기 공사를 하면서 바다 깊숙이에서 캐낸 것이라고 했다. 실제 진도대교는 1980년에 착공됐다. 주민들은 건설회사측이 이것을 파냈는데 그동안 구전으로만 전해오는 정유재란 당시 사용했던 철쇄같아서 경찰서로 가지고 왔다고 했다.

깜짝 놀란 김재옥 당시 보안과장은 직원들에게 철쇄를 해남군청 문화공보과로 가져다 주도록 했다. 그게 마지막이였다. 훗날 정년을 하고 울돌목에 있는 명랑해전 기념관에 가봤더니 있을 것으로 생각했던 철쇄는 보이지 않았다. 수십년이 지난 후였다. 당시 철쇄가 어떻게 됐는지 알아볼 도리도 없었다.

김재옥 선생은 “당시 주민들이 가지고 왔던 쇠사슬은 요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무거웠다”며 “누가 봐다 울돌목에서 사용했던 철쇄가 분명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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