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운/언론인

사람을 만날 때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역민의 감정 수위를 확인하고 놀라곤한다. 객관적 사실과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는 그러한 바람을 기대할 수 없다. 형제들과의 만남에서 조차 현 정권의 잘잘못을 이야기하다 자주 충돌한다. 아무리 대통령이 잘못해도 비교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역설하다보면 어느새 동생들로부터 공격을 당한다. 친구들과 만나서 러브 삿을 한 후에도 정권을 질타하는 목소리에 기가 질려 반론의 말문을 닫아버리기 일쑤다. 잘한것과 잘못한 것이 객관적이고 비교적으로 확연한 차이가 난데도 그렇다. 그 기세에 대응의지를 꺾을 수밖에 없다. 그렇듯이 전라도 땅에서는 특이한 부류에 속한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국회법 거부권 파동후 부터는 반론의지가 사라져 버렸다. 

국회법 거부권 파동과정에서 박대통령의 잘못은 거부권외의 사적 사안을 무게 있게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행정입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으므로 재의해주십시오하면 재의해서 부결시켰을 것이다. 그런데도 누구나 알 수 있는 특정인을 겨냥해서 배신자이며 개인을 위한 정치를 한다고 질타했다. 이런 선에서 끝냈어도 파장이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분노를 참지 못한 듯 한 박대통령은 국민이 심판해주시라고 낙선 부탁까지 했다. 그게 레임덕을 방지하기위한 방편이었다 할지라도 까발려 성토한다해서 약발이 닿는 성격의 건이 아니다. 새누리당 속성상 대통령 개인 감정문제는 물밑에서 당과 조율하면 모두 해결될 수 있다.

그런데도 공적업무영역에 정면으로 배치된 분야에 방점을 두고 문제 삼아 파장이 커졌다. 그렇기때문에 사욕을 채우기 위한 권력 남용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역병과 가뭄, 경기침체등의 국난을 고려하면 지극히 비정상적 발언이다. 비정화의 정상화를 외친 대통령으로서는 자가당착적 발언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이런 비정상적 언행이 국민의 신뢰를 까먹는 요인이다.

박대통령이 원했던 유승민 의원의 사퇴에 대해 국민 중에서 반대하는 쪽이 많았다. 새누리당 지지층에서는 사퇴 여론이 더 높았지만 국민의 마음은 대통령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박대통령과 유 의원의 텃밭인 대구에서도 박대통령을 나무라는 여론이 만만치 않았다. 박대통령의 발언은 대구는 물론 국민을 양쪽으로 갈라놓았다. 대통령의 취약분야인 소통과 통합을 바라는 국민들에게 허탈감을 안겨주고 말았다. 대통령이 바랐던 유승민 퇴출은 엉뚱한 결과를 몰고 왔다.

새누리당 대선주자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유승민 후보가 파동 10여일만에 일약 1위로 올라섰다. 광주 전라, 대구 경북, 대전 충청권에서 1위를 차지했다. 자신을 도운 사람을 국회의원이 되도록 힘을 써주었으면 그걸로 만족해야한다. 그렇지만 무슨 대가를 바란 듯이 배신 운운하는 태도에 국민의 상당수가 반감을 갖게 된 결과일 것이다. 신사는 도움을 주고 생색을 내지 않는 법이다. 하물며 자신을 대통령 만드는데 사력을 받친 후배 정치인에게 퇴출시켜주라고 공언한 것은 너무 심했다. 품격에도 맞지 않다.

대통령이 도끼 같은 언어로 찍어 내린 유승민에 대해 전라도 사람들은 박수를 보냈다. 새누리당 대선 경쟁자들만으로 벌인 여론조사 결과 광주·전라도 사람들의 지지도가 가장 높았다. 광주·전라가 27%,대구경북이 26%, 대전충청권 23%였다. 광주·전라가 높은 것은 박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의 발로로 분석된다. 국회법거부 파동 행동대장들이 속한 충청권에서도 유승민의원을 김무성 대표보다 높게 평가했다. 대구 경북을 제외한 여론조사 결과는 박근혜 대통령의 조기 레임덕을 예고하는  시그널로 보기도 한다.

박대통령은 국회법 거부권발언 파동 과정에서 광주시민들의 감정을 잇달아 자극했다. 왜 또 광주아시아전당관련 법안을 걸고 넘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 적극지원하겠다고 했던 공약이 아닌가. 그런 후 광주유대회 오픈닝행사에 나타나 김무성 대표와의 불화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광주가 박대통령 의지를 확인하는 퍼포먼스 장소인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다. 개막식장이 광주시민들의 감정을 자극한 불편한현장이 되고 말았다.

자연스레 순천, 곡성 지역구에서 당선된 새누리당 이정현의원이 떠올랐다. 이어서 내년 총선에서 당선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겨난다. 박근혜 대통령의 심복이며 전라도 땅에서 새누리당 국회 진출이라는 신화를 만들어낸 인물이 아닌가. 그럴진데 박대통령의 발언을 보면서  원망의 심리가 발동하지 않았을지 궁금해진다.

일련의 사태로 인해 앞으로 있을 총선과 대선에서 전라도 민심은 쏠림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의원의 예산 폭탄투하에 찬사를 보냈던 지역민들의 심사가 편치 못할 것이다. 배신자를 치려다 심복을 희생시킨다면 그보다 더한 손실이 있을까. 전라도에서 너무 많은걸 잃어버렸다. 분노는 이성을 잃게 한다. 새겨두어야할 보편적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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