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운/언론인

80년대 중반 소속 언론사에서 시군별 인물을 소개하는 특집 집필진으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때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출간후 독자들의 반향이 상상외로 뜨거웠던 탓이 크다. 취재와 집필의 고통보다 출간후에 쏟아진 비난을 감당해내기가 더 힘들었었다. 사회 고발과 비리 공무원들에 관한 기사를 다룬 뒤에 나타난 저항보다 훨씬 강도 높은 스트레스를 안겨주었다.

그 당시의 고장 인물 특집은 특정한 인사들을 골라 집중적으로 삶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었다. 시군별로 선정한 인물을 대상으로 간단한 약력을 곁들여 소개하는 형식이었다. 그런데도 신경질적으로 따져드는 전화가 1개월 가까이 이어졌다. 왜 자신은 명단에 빠졌느냐는 항의가 가장 많았다. 자신의 정보가 잘못됐다는 지적도 뒤를 이었다. 집단 항의 사태도 벌어졌다. 특정 직업군으로 분류되어 소개된 한 인사가 자신들의 소속이 아니라며 거칠게 항의하고 나선 것이다. 이 항의 사태가  30여년의 세월이 흘렀어도 그때의 긴장감을 그대로 되살려내는 힘의 원천이다.

어느 날 동향 후배기자가 심각한 표정으로 잠깐 뵙자고 접근해왔다. 특집에 실린 자신의 아버지에 관한 전문직 직업 내용이 거짓이라며 아버지와 자신에게 항의가 빗발치고 있다는 것이다. 그때는 아버지가 직장을 떠난 한참 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트 직업의식이 강한 전문직 단체는 그는 전문가가 아니라 기능 보조자였다며 시정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의 기록성을 잘 아는 지성인들의 이기주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후배의 고백을 듣고서야 전문직인 줄로 믿고 있었던 아버지가 보조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태 수습이 막막했다.

오보는 불편한 심기를 괴로움 단계로 몰아넣었다. 이런 상황을 보고 그 까짓것 정정 기사 내보내면 그만 아니냐고 반문할는지 모른다. 그런 보편적 상상과 달리 정정기사를 쓸 수 없는 현실 때문에 고민이 커졌다. 고향에서 또는 사회에서 나아가 동종 집단에서 반세기동안 그는 잘나가는 전문직으로 인식이 굳어져 있었다. 오랫토록 명성을 쌓았던 인사인데 전문직이 아닌 보조자였다는 사실을 까발리는 정정기사를 어떻게 쓸 수 있단 말인가.

그 후배는 실체가 드러나는 정정기사가 나갈까봐 두려워하고 있었다. 함께 밤낮으로 퍼마셨다. 낮12시면 신문이 나오는 석간 발행체제였으므로 생활을 제약하는 주야 구별 인식은 브레이크가 될 수 없었다. 가로등이 아지랑이처럼 비춰지는 밤의 한순간에는 되레 행복을 안겨주는 착한 고민거리가 되었다. “죽어도 정정기사는 쓰지 말자” 그 일로 죽지도 않았고 정정기사를 쓰지도 않았다. 1년을 넘기지못하고 그와 나는 시차를 두고 타사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 

그런 쓰디쓴 사건을 겪은 후  인물사 발간에 관한 기사를 접할 때면 존경심이 앞선다. 인물사를 담은 책 한 권을 펴낼 때까지의 과정이 지난하다는 사실을 체험한 때문이다. 어느 인물을 골라낼 것인가 하는 선별문제가 첫 난관이다. 어렵게 골라낸 인물에 대한 자료 수집과 현장 취재를 위해서는 정신과 육체적 에너지를 총 결집시켜야한다. 개인 역사는 사실이어야 한다는 명제가 심신을 무겁게 짓누른다. 자연스레 일상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사실 확인 작업에 몰입하게 된다.

전기 작가들은 출간후가 더 신경 쓰인다고 한다. 힘겨운 과정을 거쳐 인물사가 완성되었다고 해도 쾌재를 부를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출간후 독자와 이해관계자들은 겉으로는 사탕 맛같은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그 뒤안길에 반감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경우의 수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우려는 두려움으로 번져가고 때로는 현실로 나타나기도한다. 출간 증후군으로 번져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성공적인 인물사 출간은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받는 것이다. 집필과정에 수반되는 각고의 노력과 인내심, 불굴의 투지가 낳은 출산의 결과일진데 어찌 위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향토 발전은 고장의 인물들이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해 이끌어낸 위대한 산물이다. 그래서 향토사를 정리할 때면 빼어난 인물들의 삶을 조명하는 인물사가 한가운데 자리 하게 된다. 고장의 인물사는 향토사의 초석이라는 정의가 걸맞다.

주희춘 강진일보 편집국장이 강진 인물사를 펴냈다. 1.2권으로 이루어진 강진인물사는 정치.경제.사회.문화등 다양한 분야에서 혁혁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문장이론에 입각한 리드미컬한 글솜씨를 발휘하여 인물의 활약상을 소상히 다룬 점이 돋보인다. 강진인물사를 집대성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진 역작으로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후손들에게 꿈을 북돋우고 올바른 삶의 지혜를 제시한 위인전 성격의 인물사다. 한국 인물사를 정리하는데 필요한 귀중한 사료일 뿐 아니라 향토 브랜드가치를 드높이는 데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강진인물사에 대해 누가 어떤 평가를 내릴지 모르나 개인적으로는 위대한 업적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경험칙에 의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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