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실크로드는 한반도 남부지방까지 연결

1973년 경주에서 발견된 일면 장식보검. 이 단검의 회형은 신라의 출토 예에서 전혀 찾아 볼 수 없는 것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카불이나 파키스탄 키질 지방에서 발견되는 것과 유사하다.
해양실크로드는 한반도 남부지방까지 연결
서역 문명이 강진에도 왔다

우리나라에 아라비아인들이 왔다는 공식적인 기록은 고려사에 나온다. 현종 15년(1024) 9월에 대식국(아라비아)인 100인이 내방해서 토산물을 바쳤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당시 고려에는 벽란도란 항구를 통해 국제무역을 하고 있었던 때다. 이들이 중국 산동성과 같은 북쪽지방에서 배를 타고 건너편 벽란도로 왔을 수도 있지만, 보다 더 유력한 방법은 지난호에 소개했듯이 송나라 서긍이 그랬듯이 중국 명주항에서 출발해 흑산도를 거쳐 한반도 서해안 연안을 타고 북상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때는 강진에서 개경간 뱃길도 활발했을 때다. 최고급 청자가 본격적으로 생산돼 개경으로 실어나를 때가 이때부터다.

여기서 또 한가지 관심을 끄는 것은 고려에 내방했다는 아라비아사람들의 숫자다. 이들은 상인세력이었을 것이다.

아라비아 상인 100명이 한꺼번에 고려를 찾았을 정도면 아라비아와 고려의 교역량이 상당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당시 양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는 서역인이 1만5천~2만여명 거주하며 활발한 무역을 하고 있을 때다.

다시 함평 ‘서역인의 얼굴이 새겨진 토기’로 돌아가면, 서역인의 얼굴이 새겨진 토기는 6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구분되고 있다.

이 토기는 다른 지역에서 흘러들어온 것이 아니고, 흔히 서남해안 지역에서 발견되는 토기류로 확인되고 있다.
 
그러니까 공식적인 고려시대 기록에서 보이는 아라비아상인 보다 400~500년 이전에 이미 한반도 남부지역에는 이미 아라비아 상인들의 내왕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러한 문제는 과연 해양실크로드가 어디까지 연결되느냐의 문제와 관련된다.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육상 실크로드가 있듯이 바다에서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해양실크로드가 있었다.

해양실크로드는 지난호에 설명했듯이 기원전 바빌론과 유프라테스강 하구에서 시작돼 동진을 계속해 오다 인도와 미얀마, 말라카해협을 거쳐 7세기 들어 남중국 지역까지 도착했다. 학자들은 해양실크로드의 종점을 지금의 상해를 중심으로 한 명주와 항주등으로 봤다.

그러다가 아라비아 상인들의 활동이 신라와 고려시대등에서 확인되면서 해양실크로드의 범위를 남중국에서 한반도까지 연결해야 한다는 주장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함평에서 발견된 ‘서역인의 얼굴이 새겨진 토기’는 이같은 주장을 보다 강하게 뒷받침해주는 유물이다. 바다를 통한 문명의 교류는 중국이 끝이 아니라 바다를 건너 한반도 서남해안 지역까지 이어졌던 것이다. 그 중심에 강진이란 지역이 있다. 다음호에는 강진의 해양교류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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