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성운/언론인

3.11전국동시 조합장 선거가 끝난 뒷날 오전 8시, 숨죽이며 인터넷을 검색했다.   조합장 선거에 출마한  고교동기생의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선거당일 초저녁이면 당락이 판가름날것이라는 예측 보도가 낙선을 확신시켰지만 바보 같은 짓을한것이다. 

당선자는 군청 서기관출신이었다. 군청서기관이면 군단위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최고위직이다. 그정도의 자리에 오르려면 군수 못지않은 신망과 영향력을 갖추는 게 일반적이다. 타향을 돌며 공직을 마친 동기생과는 지역 인지도면에서 게임이 안 됀다.

이번 전국동시 조합장선거는 어떤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얼마만큼 알려졌느냐 하는 인지 기준이 결과를 좌우했다는 평가가 대세다. 인지도는 평소의 활동, 선거운동을통한 접근 전략, 부정한 방법을 통해 형성된다. 이 가운데 일상속에 심어진 인지도가  당락을 가르는데 중추적 역할을 한다는 건선거 상식에 속한다. 텃주대감격인 대표성 있는 지역 유지가 선출직 기관장 진출 확률이 높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한 영향력을 갖춘 지역유지가 한두명이 아니라는 게 문제를 발생시킨다. 막상막하의 경쟁상황에서는 금품 살포와 향응 유혹이 강렬해지기 마련이다. 선거 막판에 이르면 이성을 잃고 배팅을 감행하고 만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이기고보자는 경쟁심리가 이성을 마비시킨 결과다. 동시선거 규정에 의해 접근전략을 폈던 순진한 출마자들의 고배는 자초하는 거나 다름없다.

“고배를 자초했다”는 지적에 발끈할는지 모른다. 화가 끌어 오를지라도 헛눈팔지않고 동시선거제도를 따른 선의의 결과이므로 화를 다스리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다. 선거전에서는 변칙이 반드시 끼어든다. 역대 선거를 통해 굳어진 그런 선거 철칙은 원칙을 고수하면 승리는 멀어진다는 진리를 낳았다. 올해부터 중앙선관위의 관리 아래 동시에 진행된 조합장 선거에서 다시 한번 더 못된 철칙을 확인하게 되었다. 고질적인 불·탈법을 막기 위해 2011년 개정된 농협법이 부른 재앙이다.

조합장 전국동시 선거 도입 명분은 부정선거를 방지하고 선거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었다. 선거 결과는 선관위 기대와는 멀었다. 부정선거가 판을 치고 알권리를 철저히 차단당했다. 3.11 조합장 선거 양상은 ‘깜깜히 선거’ ‘타락선거’ 로 일반화되었다. 

고질적 선거 폐단인 금품과 향응 제공은 이번에도 예외 없이 나타났다.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었던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금품과 향응 제공 고발이 이어졌고 경찰과 선관위의 자체 조사에서 한도 끝도 없이 줄지어 불거지고 있다. 충청도에선 100명에게 6천만원을 건넸다가 들통 나기도했다. 이에 빗대 언론들은 2010년 2월에 벌어진 ‘임자도 돈 선거’와 같다고 힐난했다.

임자 농협조합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자 5명이 1천여 명에게 9천5백만원을 뿌렸다가 전원 구속된 사건이다. 이번 타락선거에 대해 어느 신문은 ‘3당2락선거’ ‘5당4락선거’라는 표현을 썼다. 3억쓰면 당선, 2억쓰면낙선 상황이, 어느새 4억뿌리면 낙선, 5억 뿌려야 당선으로 바뀌었다. “부정선거를 방지한다” 는 선관위 취지가 낯을 들 수 없게돼 버렸다.

부정선거 방지 취지는 애초부터 연목구어적 발상이었다. 선거운동방식은 후보자들의 손과 발을 묶어놓고 선거운동을 하라는 지침과 다를 바가 없었다. 다른 공직선거와 달리 이번 동시선거에서는 예비후보의 자격으로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길이 없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도 합동연설회, 정책토론회 등은 열 수도 없다. 후보자 본인만이 명함이나 전화·문자메시지를 통해서만 선거운동을 할 수 있었다. 

도전자들이 자신을 알릴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근거다. 일반공직선거에서 예비후보 자격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선거운동원을 동원할 수 있게 한 것과는 천지간의 차별이다. 본인 아니면 어떤 누구도 후보 명함을 돌릴 수 없게 한 것은 헌법상의 평등 원칙에도 위반된 폭거라 할 수 있다. 3.11부정선거는 선거제도가 낳은 필연적 악폐라는 주장의 타당성을 부정할 수 없다.

부정선거 방지에 실패한 선거제도가 선거의 효율성 목적은 달성했는지도 의문이다. 국가가 부담한 선거 비용이나 홍보 효과, 선거 운동의 투명성, 투표율 제고면에서 다소 효과와 능률을 올렸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전국동시에 치룬 선거치고 산발적인 조합장 선거때보다 얼마만큼 차별화된 효율성을 높혔는지에 대해서는 긍정적일수만은 없다.  공개적인 선거운동을 극도로 제한함으로써 음성적인 개별 선거 비용이 전보다 더 많았으리라는 주장에 주목해야한다.

정부와 선관위는 선거제도의 실패를 시인하고 소 잃었지만 외양간이라도 고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제1회 전국 동시조합장 선거과정에서 나타난 ‘돈선거’ ‘깜깜이 선거’ ‘조합장의 과도한 권한’ 등 각종 문제점에 대한 개선책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5당4락 선거’를 치른 당국이 무슨수를 내놓겠다는 것인지, 기대는 커녕 불신이 앞선다. 정권은 바뀌어도 끄떡없는 망국적 주먹구구식 탁상행정이 지속되는 한 ‘3당2락선거’이상의 묘책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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