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 유수분리선 개발했던 김영환 사장

기름과 바닷물 빨아들여 분리수거하는 방식
“가장 효과적인 기름 수거 기술” 아직도 확신

강진읍 서산마을 김영환 사장이 공업사 마당 한켠에 15년째 방치돼 있는 유수분리선을 가리키고 있다. 김사장은 언젠가는 이 배가 바다로 나가길 바라고 있다.
강진읍에서 4차선 도로를 타고 성전으로 가다보면 서산마을 입구 건너편에 작은 공업사 건물이 보인다. 눈여겨 본 사람들은 보았겠지만 이곳 공업사 마당에 수북히 쌓인 철물들 틈에 배 모양을 한 작은 철선이 늘 자리를 지키고 있는게 보인다.

이 배의 사연이 깊고 슬프다. 무슨 사연이냐면, 때는 1999년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금으로부터 15년전 이야기다. 장소는 여수 앞바다 LG정유 유조선 정박장. 이곳에서 아주 작은배 한척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LG 정유 임원들이 멀리서 이 배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필자도 현장에서 긴장된 마음으로 배를 보고 있었다.

이 배가 바로 강진읍 서산리 삼영공업이란 작은 철공소에서 제작된 유수(油水)분리선이였다. LG 정유는 4년전인 1995년 7월 씨프린스호 기름 유출사고로 엄청난 고초를 격은 회사였다. 바다에 기름이 유출될 경우 이를 효과적으로 수거하는 기술을 찾는게 꿈이였다.

그러던중 강진의 한 작은 업체에서 유수분리선이란 초유의 기술을 개발했다는 소식을 접했고, 이날 임원들과 전문가들이 참가한 가운데 시연회를 개최한 것이였다. 유수분리선은 기름이 바다에 유출될 경우 바닷물과 기름을 흡수해서 기계장치로 이를 분리한 다음 물은 밖으로 배출하고 기름은 수거하는 방식이였다.

유수분리선이 이날 성공적인 시연만 하면 LG정유는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입해서라도 이 배를 몇척은 구입해야 할 상황이였고, 반대로 강진의 작은 공업사는 돈방석에 앉을 수 있는 순간이였다. 바다 시연장에는 원유 대신 색소를 섞은 식용유가 대량으로 뿌려졌다. 그날 비가 내렸다. 바람도 불었다. 파도도 다소 높았다. 드디어 유수분리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식용유와 바닷물이 배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니 식용유는 걸러지며 배위에 남고 물만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파도가 치며 배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렸고, 식용유를 빨아들이는 기능도 뚝 떨어졌다. 바다에는 식용유가 그대로 많이 남아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LG정유 임원들의 고개가 좌우로 왔다갔다 했다. 한숨 소리도 나왔다.

바로 그 현장에서 LG정유 임원들이나 필자보다 수십배, 아니 수백배는 더 긴장된 심정으로 유수분리선을 지켜본 사람들이 있었다. 이 배를 발명한 강진의 김영환사장, 김모 사장, 또 다른 김모사장등 3인이였다. 이들은 씨프린스호 기름 유출사고가 터진후 유수분리선 발명에 명운을 건 사람들이었다. 강진에 고려환경이란 법인회사를 차려 연구를 진행하고, 기계제작은 김영환 사장의 삼영공업이 맡았다.
 
모든 재산을 쏟아 붇고 그것도 모자라 은행권에서 상당액수의 대출도 받아 썼다. LG정유와 거래만 트면 이 기술이 전국적으로 소문날 것이고, 중요한 실적이 되어 정부기관을 상대로 납품할 기회가 올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날 시연회는 실패로 끝났다. 그들의 꿈도 물거품 처럼 사라져 버렸다. 세 사람은 여수까지 왔던대로 배를 다시 큰 트럭에 싣고 강진으로 돌아왔다. LG정유측은 그 후로 이 배에 대해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세 사람은 꿈을 접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다시 돈을 끌어 모아 연구와 발명을 계속했다. 특허가 7개 까지 늘어났다. 2000년에는 기술혁신대전에 나갔고, 정부의 기술혁신개발사업으로 지정돼 기술신보에서 4천여만원을 지원받기도 했다. 한편으로 국회의원들을 수없이 만났고, 해양수산부와 수자원공사등을 방문해 정부기관이 이 배를 구입해 줄 것을 요청했다.

2002년에는 수자원공사의 요청으로 춘천댐까지 올라가 물위에 떠있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모든게 돈으로 시작돼 돈으로 끝나는 일이였다. 그러나 세 사람은 단 한 대의 유수분리선도 팔지 못했다. 정부기관도 냉담했고, 국회의원들도 마찬가지였다. 각 기관들은 판매실적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러나 실적없는 회사가 실적을 만들어 낼수가 없었다. 배 한척 팔리지 않은 세월에 버텨낼 장사가 없었다. 2004년에 결국 부도가 났다. 세 사람은 뿔뿔이 흩어졌다. 이 일에 가장 열심이였던 김모사장은 몇 년 후 세상을 떠났다. 지난 28일 오후 서산마을 옛 삼영공업. 회사 부도로 삼영공업이란 이름은 없어졌다. 당시 50세의 젊은 나이던 김영환 사장은 이제 64세가 됐다. 김사장은 올 1월 여수에서 발생한 기름유출사고는 물론 2007년 태안기름유출사고가 일어났을 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유수분리 기술을 잘 이용하면 기름유출 피해를 막을 수 있는데 우리 기술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더란 말입니다. 지금 정부가 하는 기술이 원유에 유화제를 뿌려서 응고를 시켜 바다에 가라앉게 하는 방법인데 그게 언젠가는 다시 떠 올라요. 근본적인 제거기술이 아니란 말입니다” 김영환 사장은 지금도 자신들이 개발한 유수분리선 보다 효과적으로 원유를 제거할 장비가 나오지 않았다고 단언했다. 지금이라도 이 기술이 햇볕을 보면 바다 오염을 크게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배가 스테인레스로 만들어서 녹이 슬지 않았요. 100년이 지나도 이러고 있을 겁니다. 언젠가는 바다에 떠 다닐 날이 올까요” 

김영환사장은 땅위에서 10년 이상 꿈쩍하지 않고 있는 유수분리선을 한 없이 쓰다 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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