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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그때 그사건
[그때 그사건]1949년 8월 병영 출신 이용운씨의 김호익총경 암살사건<끝>사법부가 인권보호라는 역할을 다하지 못한 시대의 사건
주희춘 기자  |  ju@nsor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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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05.28  17:4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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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10월 2일자 경향신문 기사. 이용운씨의 총살형 선고사실을 알리고 있다. 제일 아래사진이 이용운씨다.
검찰, 재판기간 중 이렇다할 증거물 제출하지 못해
이용운씨 억울하고 부당하게 간첩누명 쓰지는 않았을까

지난해 10월 22일 서울중앙지법 502호 법정에서는 재판부가 간첩누명을 쓰고 51년 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심문규(당시 36세)씨의 유족에게 정중한 사과를 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 21부가 심씨의 재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하는 자리였다.

재판장은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에 이르는 현대사의 격동기, 우리 사법체계가 정착 및 성숙되기 전의 일이지만 인권보호의 책임을 가진 사법부가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데 대해 재심 재판부는 죄송함과 안타까움을 갖지 않을 수 없다”고 사과했다.

심씨는 한국정쟁 직후인 1955년 북파돼 임무를 수행하다가 북한군에 붙잡혀 1년7개월 동안 대남간첩 교육을 받고 1957년 남파됐다. 심씨는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자수했지만 민간인에 대한 수사권이 없는 육군첩보부대는 심씨를 563일 동안 구금하면서 북한 관련 정보를 캐는 데 이용했다.

그 뒤 심씨는 중앙고등군법회의에서 위장자수한 이중간첩이라는 혐의(국방경비법 위반)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선고받아 1961년 처형당했다. 중앙고등군법회의는 김호익총경을 총살한 이용운씨가 간첩혐의로 총살형을 선고받은 법정이다.

재판부는 이날 재심 재판에서 “군 검찰이 낸 증거서류 어디에도 심 씨가 위장 자수했다는 내용이 없는 점 등을 고려하면 증거의 신빙성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심씨의 경우 생사를 전혀 몰랐던 가족들이 처형된 지 45년 만인 2006년에야 심씨가 사망한 사실을 확인하고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요청해서 이뤄진 것이였다.

이용운씨의 경우 어떠한가. 당시 재판진행과정을 비교적 상세히 보도한 신문내용등에 따르면 그가 간첩활동을 했다는 증거는 경찰과 군인들의 증언뿐이다. 김호익총경의 직속부하였던 김윤쾌 경위는 “이용운은 군 비밀을 탐지하고 수사진을 파괴하려는 것이 목적이였다”고 증인진술을 했다.

검찰은 이같은 증언등을 근거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용운은 남로당의 9월 총공세작전의 전초작전을 유리케 하기 위해 김총경을 살해했으므로 총살로 처형해 주길 바란다”

이에대해 이용운의 반발은 완강했다. “조실부모하고 역경에서 자라나 일본과 중국을 유랑할 때 나라없는 백성의 설움을 절실히 체험했다. 해방직후 귀국하자 혼란한 정국에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김총경이 국회 프락치였다는 이유로 국회의원을 체포하는 것을 보고 격분해 살해한 것 뿐이다. 나는 이적 간첩행위를 한 사실이 없고 지령받은 일도 없다”

그는 김총경을 살해한 것은 인정했지만 간첩행위를 한적은 결코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1949년 9월 30일 다른 8명과 함께 총살형 선고를 받는다. 다른 8명은 지리산반도지구사건이란 간첩단 사건에 연류된 사람들이였다.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활동을 시인했다.

혐의를 완전히 부인한 사람은 이용운 뿐이였다. 6명은 며칠 후 이승만대통령에 의해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지만 이용운과 또 다른 한사람은 곧바로 총살형에 처해졌다. 그의 나이 36세때의 일이였다. 우연히도 심문규씨와 같은 나이였다.

그는 과연 당시 경찰과 군인들의 증언과 검찰의 주장대로 간첩행위를 했던 것일까. 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재판과정에서 이용운이 간첩행위를 했다는 어떤 증거물도 제시되지 않았다. 단지 경찰과 군인의 진술이 있을 뿐이였다.

이용운은 그후에도 오랫 동안 ‘국회프락치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남로당이 최후발악을 하는 과정에서 김호익 총경을 살해하도록 보낸 간첩중의 간첩’으로 묘사됐다. 그는 과연 간첩이였을까.

그가 경찰을 죽인 것은 분명히 민주주의 질서를 위협한 행위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간첩행위를 했는지 안했는지는 역사적으로 분명히 구분되어야 할 일이 분명하다. 심문규씨의 경우 그의 자녀들이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에 진실규명을 요청해서 재심이 이뤄졌다.

일제강점기 ‘조실부모하고 역경에서 자라나 일본과 중국을 유랑한’한 이용운에게는 진실에 접근할 가까운 피붙이 조차 찾을 수 없다. 그의 역사는 조용히 묻힐것인가,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다시 재론되고 재심되어질 것인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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