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애(仁愛)가 민사(民事)에 미쳐서 일마다 회보(懷保)하는 마음이 있다’

1854년 전라병사 정기세의 인사고과 매기기

조선시대 인사고과는 어떤 식으로 매겨졌을까. ‘강재 박기현 후손가의 소장문서를 통해본 조선말기 강진지역사회’ 학술대회에서는 전라병사가 각 진영 장수들의 인사고과를 매긴 기록이 나왔다.

충남대학교 송양섭 교수의 ‘강진 병영의 구조와 재정운영’이란 논문에 따르면 전라병사의 중요한 임무중의 하나가 병영과 각 진영의 영장 및 산성별장에 대한 인사고과를 매기는 것이였다.

철종 5년(1854) 전라병사 정기세(鄭基世)는 가을과 겨울 분기 다음과 같이 평정서를 작성해서 조정에 올리고 있는데 표의 내용이 그것이다. 한자가 있어서 다소 어렵게 느껴지지만 송양섭 교수는 이를 쉽게 풀이하고 있다.

전라병영에서 작성한 각 지역 군령들의 인사평가 고과서.
전라병사 정기세는 2명의 겸영장을 포함한 5명의 영장과 입암산성⋅금성산성 별장, 그리고 심약에 대한 인사평가를 하고 있다.

심약은 약재 채취를 감시 감독하던 벼슬아치다. <표>에 나타나듯이 그 형식은 우선 간략하고 함축적인 문장으로 평가를 내리고 등급을 매겼으며 ‘별구(別具)’의 방식으로 부연하는 형태였다. 순천 전영장 신석희의 경우 ‘일천(日淺)’으로 기재하고 평가를 유보한 것으로 보아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듯하다.

나머지 평가대상인 4명의 영장과 2명의 별장, 심약에 대해서는 대단히 우호적인 평가에 모두 ‘상(上)’ 등급을 부여하고 있다. 가령 전주 중영장 이교승에 대해 ‘공정하고 엄격하며 명석하고 신실해서 한 도(道)의 명성과 칭찬이 되었다’고 하면서 별구(別具)에 ‘위엄과 은혜를 군정(軍政)보다 우선해서 모두 뛰어가고자 하는 바램이 있고 인애(仁愛)가 민사(民事)에 미쳐서 일마다 회보(懷保)하는 마음이 있다’고 한 것이 그 예이다.

이듬해인 철종 6년(1855) 봄⋅여름 분기 고과에서도 동일한 형식으로 이들 전원이 후한 평가와 함께 上 평가를 받고 있다. 앞서 평가가 유보되었던 전영장 신석희에 대해 ‘연해지역이 크게 다스려지고 힘든 업무를 겸하여 장악했다(沿海巨治 兼鎭劇務)’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여기에는 전해에 누락되었던 병영(兵營) 우후(虞侯) 박영희(朴永喜)에 대한 평가도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병사의 평가방식은 다소 틀에 박힌, 형식적인 것으로 볼 수도 있는데 가령 심약 최석영에 대한 ‘가혹한 평가를 해서는 안 된다(不須苛評)’는 코멘트에서 엿볼 수 있다.<‘강진 병영의 구조와 재정운영’. 송양섭 충남대학교 교수 논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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