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암으로 장가든 강진신랑 결혼식을 잘 치렀는데…

웃옷벗자 한쪽팔이 없었다…
 “내팔자야 ”신부 대성통곡
 ‘집에 가라’‘갈수 없다’옥신각신
결국 신부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와

1929년 이런 일이 있었다. 옴천면 황곡리에 살던 스물한살의 한 총각이 영암면(지금의 영암읍) 회문리 주민의 집으로 장가를 들었다.

1929년 12월 19일의 일이였다. 두 사람은 혼례식을 무사히 마치고 간단한 피로연을 벌인 다음 마음설레는 신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잠시후, 아기자기한 이야기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나와야 할 신방에서 난데없는 통곡소리가 울려퍼졌다.

밖에서 잔치를 정리하고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 신방으로 뛰어갔다. 방안의 신랑 모습을 본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신부의 부모들도 대성통곡을 했다. 신랑의 한쪽 팔이 없었던 것이다.

사연은 이랬다. 신랑은 몇 년전 먹고 살일을 찾아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곳에서 기계공장에 취직을 했다. 그런데 취직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오른팔이 기계에 빨려 들어가 큰 부상을 입었다.

총각은 주변의 도움으로 즉시 병원으로 옮겨져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팔을 잘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총각은 팔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고무팔을 엇대어 끼워 넣었다. 기계공장도 다닐 수 없게 됐다. 신랑은 몸만 상한채 가난한 고향 마을로 돌아왔다.

그래도 욕심이 있었다. 장가를 들어야 겠다고 마음 먹었다. 자신의 오른팔이 의수라는 것을 속이는 수 밖에 없었다. 영암 김모씨의 열아홉살 딸과 선을 보았다.

이런저런 선이 닿아 그곳 처자와 결혼을 하게 된 것이였다.  신랑측이 서둘러 급히 혼례를 올리기로 했다. 혼례시간을 해질녘으로 잡았다. 실제 혼례는 해가 저물기를 기다렸다가 불을 켜고 치러졌다.

영암 신부의 집에서 무사히 예식을 마쳤다. 해가 저물었기 때문에 신랑의 오른팔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는 사람은 없었다. 두 사람은 연회에 참석했다가 신방으로 들어갔다. 신랑이 옷을 벗자 한쪽 팔이 없는게 그대로 드러났다.

신부의 가족들이 신랑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난리가 났다. 속임으로 한 결혼인 만큼 첫날밤을 보내기 전에 끝내야 한다는 것이였다. 신랑도 물러나지 않았다. 예식을 마친 만큼 부부사이가 아니냐는 것이였다. 신부가족들과 신랑측 사이에 일대 소동이 벌어졌다.

그러나 상황은 신랑에게 불리했다. 처음에 자신의 팔이 그렇다는 것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였다. 신랑은 결국 신부를 옴천으로 데려오지 못하고 혼자서 고향마을로 넘어와야 했다. <동아일보 1930년 1월 16일자 참조> 안타까운 일이였다. 나중에 그 총각은 다른 여자와 결혼은 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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