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가까워 늘 풍족했다

 

강진읍에서 칠량방면으로 10㎞ 정도를 달리다 보면 칠량면소재지로 향하는 분기점에서 우측으로 영풍마을을 알리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좁게 펼쳐진 포장도로를 따라 1㎞를 더 달리다보면 넓게 펼쳐진 들녘사이에 자리 잡은 영풍마을이 있다.
 

영호정이란 마을정자다.
영호정이란 마을정자다.
마을의 서쪽이다.
마을의 서쪽이다.

 

영풍마을은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본 마을과 샛돔마을 등 크게 두 개 마을로 나뉜다. 마을회관에서 칠량면소재지 방면에 위치한 칠량농협 창고부근에 위치한 곳을 샛돔이라 부른다.

영풍마을은 1500년대 청주김씨 김만추가 이곳으로 이거해 터를 잡고 자가일촌을 이루며 살아왔다고 한다. 이후 김해김씨, 해남윤씨, 밀양박씨 등이 이거해 오면서 현재 마을의 규모가 커졌다.

바다가 보인다.
바다가 보인다.
골목에 살구꽃이 피었다.
골목에 살구꽃이 피었다.

 

영풍마을은 모든 것이 영원히 풍부하다는 뜻에서 영풍이라 불리게 됐다. 주변에 논이 있고, 바닷가가 가까워 해산물도 풍부한 곳이다. 영풍이란 말이 전혀 낯설지 않은 마을이다.

영풍마을은 바다와 인접한 지역으로 예부터 굴·꼬막·맛 등 어패류가 많이 채취돼 대부분의 주민들이 반농반어 위주로 생활했다고 한다.
 

오래된 골목이다.
오래된 골목이다.

 

특히 1970년대에는 강진만 15㏊면적에 굴 양식장을 허가받아 마을 전주민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공동 작업을 통해 연간 약 3톤 정도의 굴을 수확해 3천만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기도 했다.

1980년대 후반 만덕호가 축조되면서 조류가 변하고 생활하수에 의한 환경오염 등의 영향으로 생산량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주민들의 생활도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을에 송은당 김동현 행적비가 있다. 청주 김씨 김동현은 1846년 태어나 1919년까지 생활했던 인물로 평소 재주가 뛰어났다고 한다.

고종 임금의 스승으로 알려진 송시열의 9대손인 송병선이 김동현의 행실을 보면서 강진땅에 사람다운 사람이 있다고 평가할 정도로 인정받은 인물로 알려졌다. 

영풍마을 우산각 주변은 165㎡(50여평) 면적에 연못을 조성하고 연못을 중심으로 10여그루의 소나무 등을 심었다.

또 연못주변을 잔디로 조성하고 분수대가 설치되어 있는 연못 바로 위에는 우산각을 지어 놓아 관광공원의 모습을 연상케 했다.

마을주민들은 옛 선조들의 경로효친 정신을 이어가면서 강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가꾸기 위해 모두가 한마음으로 마을발전에 나서고 있었다./주희춘 기자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