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개막되는 전라병영성 축제는 역사축제다. 전라병영성이란 역사적 유물을 중심으로 다양한 문화가 전해진다. 병영성 축제가 풍성할 수 있는 이유다.

병영의 풍부한 문화유산이 전해지기까지 송은 김흥연(1918~2008)선생이 있었다. 그가 남긴 기록들이 전라병영성과 그 주변의 문화를 번창하게 했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선생은 1908년 병영면 백양마을에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전후사, 6. 25전쟁, 4.19혁명, 5ㆍ16쿠테타, 유신정권, 군부독재, 5.18, 6.29등 격변의 현대사를 겼었다.

45년 동안 교직에 몸담았다. 1942년에 초등학교 교사를 시작으로 18년을 봉직했다. 중학교 교사로 9년, 초등학교 교감 6년, 초등학교 교장 10년을 지냈다.

그는 일평생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은 것을 기록으로 남겼다. 특히 병영면 향토 역사를 심도있게 연구하고 정리했다. 그는 2008년 명저 ‘진실한 삶을 위하여’란 책을 발간한다.

개인사를 기본으로 병영의 잡다한 역사를 집대성한 책이다. 병영 주민들의 구전을 옮기거나 평생을 살면서 독자적으로 확보한 자료가 이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

우선 그는 전라병영이 병영으로 온 과정을 알기쉽게 설명했다. 병영성 건축공사에 엄청난 양의 각종 물자의 수요가 생겨나고 공급이 이뤄졌다.

여기서부터 병영에 상교역(商交易)이 활발하게 이뤄졌다. 병영성에 천명이 넘는 병사와 관리들이 생활해 나가면서 생필품 등을 주변 상인들이 조달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게 병영상인이다. 김흥연 선생은 책속에 ‘북송상(北松商), 남병상(南兵商)’이란 말을 소개하며 강진의 병영상인이 황해도의 개성상인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것도 공식화 했다. 이 말은 이후 다양한 자료에서 인용돼 사용됐다.

병영성에서 돈을 만들었다는 사료도 제시했다. 조선 숙종때 주전기관으로 전라병영이 포함됐다. 1950년 10월 전라병영성내에 있던 병영초교가 좌익세력에 의해 불탔다. 그때 엽전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주전의 증거였다.

이밖에도 수인산성의 유례라든가 병영상인들이 일찍이 어음을 사용했다는 것, 전라병영성 폐영후 진위대란 신식군대가 주둔했다는 것등 병영의 각종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기록했다. 역사는 기록으로 전해지고, 그 기록이 오늘을 깨운다. 그 속에 김흥연 선생 같은 고마운 사람들이 있다.  <주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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