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전 순천향대 교수 (작천 이마마을 출신)

자유(liberty), 평등(equality), 박애(fraternity)는 역사상 가장 중요한 사건 중의 하나인 프랑스 대혁명(1789)의 정신이며 현대 사회의 기초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부르봉왕조의 절대군주제(앙샹레짐:구체제)에 대한 반발로 야기된 프랑스혁명의 정신은 민주주의의 토대가 되었으며 공산주의와 전체주의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인간(human) 존재(being)의 근저(根底)에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이 기독교와 불교에 어떻게 구현되어 있으며, 평상의 삶 속에서 그 정신을 잘 표현하며 살려낼 수 있는 방법을 독자 여러분들과 함께 모색해 보았으면 합니다.

기독교의 구약과 신약성경 총 66권의 핵심 정신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사랑(박애)이 핵심입니다.

인간이 에고(ego)중심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하나님中心의 삶으로 살 때, 오욕 칠정의 감옥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어려운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치우침 없는 평등한 사회를 구현할 수 있음을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특히 자유와 평등은 제한이 없는 넓은 사랑인 박애(universal love)를 기초로 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로부터 탈출(출애굽)하도록 하여 자유인으로 해방(구원)하신 하나님은 십계명 중에서 제 4계명인 안식일을 준수하도록 계율로 명령 하셨습니다.

현상의 고통과 불만족이라는 감옥으로부터 해방되어 自由롭고 평안한 안식(安息)을 경험하도록 하셨습니다. 레위기 25장 10절에는 희년(喜年,year of jublee)을 준수하도록 하였습니다.

오십 년마다 사람과 땅에 자유를 선포하고(proclaim liberty) 從된 신분의 해방(liberty)과 타인에게 이전된 땅의 경작권을 원래 주인에게 환원시킴으로써 경제적인 부의 치우침을 방지하여, 평등한 사회가 되도록 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을 확실히 믿고 의지함으로써 현실의 고통과 고난으로부터 탈출하여 자유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피조물은 유일한 절대자 하나님 형상의 표현이며 서로 연합(unity in variety;多中一,一中多)하여 하나이므로, 현실에서 평등하고 화평하게 생활하도록 강조합니다.

성경의 맨 마지막 부분인 요한계시록 21장 1절-4절에, 새 하늘(new heaven)과 새 땅(new earth)인 하나님의 장막(帳幕)에 거함으로써 자유롭고 平等한 낙원의 회복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불교의 깃발(번幡)과 바람(풍風) 논쟁을 통하여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을 고찰해 봅니다. 唐나라 시대에 중국 광동성 광주 법성사에서 스님들 간에 깃발이 움직이는 것이냐(번동幡動), 바람이 움직이는 것이냐(풍동風動)의 논쟁이 있었습니다.

당시 구족계(具足戒)를 받지 못했던 六祖 혜능(638-713)이 번동도 풍동도 아니고 심동(心動) 즉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라고 한 유명한 논쟁입니다. 현상계에서 관찰해 보면 깃발이 움직이는 것과 같은 거친 현상(욕심)과 바람의 움직임 같은 미세한 현상(욕심)으로 구분할 수 있겠습니다.

절대계 관점에서는 현상계의 깃발과 바람의 움직임 배후에 그것들을 가능케 한 본질(실체,순수의식,사랑,절대자,하나님)이 있습니다. 이것은 대승불교의 핵심 사상을 담고 있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2세기 馬鳴 著)에 잘 기술되어 있습니다. 즉 하나인 마음(一心)은 二門 즉 진여문(眞如門)과 생멸문(生滅門)의 두 개로 나누어 설명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풀어서 설명하면 우리의 마음(心)은 대상이 끊어진 절대적이고 본질적인 순수 의식 세계(진여문)와 대상이 있는 상대적인 현상계(생멸문)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진여문인 절대 세계는 공(空)의 세계이며 비어 있다는 의미보다는 매우 고요하고(空寂) 신령하게 알아차리고 있는(靈知), 적적(寂寂) 성성(惺惺)한 순수 의식의 세계입니다.

그것에 비하여 생멸문의 현상계는 고요함보다는 산란(散亂)하고, 깨어서 알아차리기보다는 혼침(昏沈)과 무기(無記)의 흐리멍텅한 무의식의 세계입니다. 본질계의 특성을 말과 글로써 온전히 서술할 수 없지만, 자유 평등 박애 等 우리가 개념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수많은 순수한 善한 것들(절대 선)이 존재하고 있는 세계로 인식될 수 있습니다. 

현상계는 절대계의 특성을 본받아(바탕으로) 인과(因果) 및 연기(緣起)의 법칙에 따라 자유 평등 박애 등의 현상이 생겼다가 사라지는(生滅하는) 상대적 선(善)과 악(惡)이 혼재(混在)하는 세계입니다.

따라서 항상 변화하는 제행무상의 현실세계에서는 영원하고 절대적인 자유 평등 박애의 현상이 구현된, 가정과 사회 및 국가는 존재하기가 어려움을 이해하여야 하겠습니다.

깃발과 바람의 움직임은 현상계에서 인연(因果와 緣起)의 법칙에 따라 움직인 것(動)이며 본질계에 내재된 것들이 반영된 것으로 그것을 心動, 즉 마음이 움직인 것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오욕(탐貪) 칠정(진瞋)과 어리석음(치痴)으로 점철된 현실 세계에서 자기(ego) 중심의 통제받지 않는 자유로움을 추구하는 거친 욕망(깃발의 움직임)과 차별 없는 평등한 대우를 요구하는 미세한 욕구(바람의 움직임)의 지속적이고 완전한 성취는 현실 세계에서 달성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한 이상과 현실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음으로써 야기되는 고통과 불만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현상계(色)의 양변을 부정함으로써(諸相 非相=쌍차雙遮;양변을 막음), 본질의 세계(空)를 볼 수 있는 관점으로의 전환(卽見如來)이 우선 되어야 합니다. 즉 색즉시공의 깨우침을 자각하여 견성(見性)하게 되면 반야지(般若智)의 혜안(慧眼)이 열리게 됩니다.

두 번째 단계는 본질의 세계(空)에서 현상계(色)를 긍정으로 보는 관점으로 변경(空卽是色=쌍조雙照;양변을 비춤)함으로써 현상계의 깃발과 바람의 움직임은 진여세계의 본질이 인연따라 생멸하는 작용(心動)임을 깨닫게 되겠지요. 즉 공즉시색(一卽多)의 법안으로 현상세계를 볼 수 있어서, 현실의 부자유와 불평등으로부터 야기된 고통과 불만족이 해소될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최종적으로 현상계와 절대계를 자유자재로 여실(如實)하게 관(觀)할 수 있는 차조동시(遮照同時;치우침 없는막고 비춤)의 불안(佛眼)을 갖추게 되면, 연기와 중도를 깨달아서 正覺에 이르게 되며, 평상의 마음(平常心)의 움직임에 따라서(心動)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진정한 보살행(博愛行)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현실의 삶 속에서 자기 중심의 통제받지 않는 자유로움과 차별 없는 평등의 추구는 한계가 있음을 자각하시고, 서로를 넓게 사랑하는 박애정신을 함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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