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거북 서구의 몸에서 이상한 혹이 발견됐다

그림 강화경
그림 강화경

 

결국 북한군들이 철교를 급히 수리해 한강을 건너면서 빠르게 남쪽 지방으로 밀고 내려왔으니 실패나 다름없었다.
“그러면 최창식 공병감의 죄는 뭐죠?”   
“글쎄요. 적전비행죄?”
‘적전비행죄’란 적들 앞에서 잘못된 행동이나 근무태만을 저질러 아군들에게 큰 피해를 입힌 죄였다.
“그건 폭파를 잘못해 적군을 막지 못했다는 죄목인가요?”
“아무리 그래도 국민들은 인도교 폭파 때문에 분노하는 건데 그 죄목하고는 상관 없지 않소?”
“어찌되었든 최 대령에게 한강 다리 폭파의 책임이 있는 건 맞지요.”
“시간이 없습니다. 서둘러야 합니다.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어떻게든 해결을 봅시다.”
결국 8월 28일에 최창식 공병대장은 죄인이 되어 붙잡혔다. 
“억울합니다. 저는 군인으로서 채병덕 장군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최창식 대령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9월 21일에 열린 군법 회의에서 그에게 총살형이 내려졌다. 이로써 최창식 대령은 한강 다리 폭파의 책임을 홀로 지고 세상을 떠났다.   


12. 이상한 혹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했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용자는 서둘러 보따리 짐을 챙겼다. 서울에 가서 남편을 찾아야 했다. 
학마을을 떠나면서 용자는 상원을 끌어안았다. 
“상원아, 이제 할아버지도 네 아빠도 돌아올 거야.”
“…….”
“고모 말 믿어. 그때까지 할머니랑, 엄마, 동생은 네가 보살펴야 한다.” 
“고모가 여기 더 있으면 안 돼요?”
“아니. 고모는 가야 해.”       
용자는 읍내까지 걸었다. 선선해진 날씨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용자는 읍내 교회 앞에서 서울로 올라가려는 사람들을 만났다. 함께 가게 되어 다행이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국군은 북한의 압록강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중공군이 끼어드는 바람에 다시 남쪽으로 밀려났다. 서울은 되찾았지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휴전 이야기가 서서히 흘러나왔다.
휴전.
휴전은 말 그대로 전쟁을 멈추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지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대통령은 휴전을 반대했다. 이 기회에 북으로 올라가 통일하기를 원했다. 만약 휴전을 하게 되면 통일이 늦어질 뿐 아니라 다시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것이 휴전을 반대하는 이유였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의 반대에도 휴전은 이루어졌다. 2년 1개월을 질질 끌다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을 맺게 됐다. 유엔군과 공산군 대표가 마주 앉아 휴전선을 그었다. 이번에는 38선이 아닌 휴전선이 생겨났다.
 
전쟁은 멈추었지만 대통령의 권력 욕심은 계속 늘어만 갔다. 나라의 법을 억지로 바꿔 여러 차례 대통령을 하고자 했다. 오래오래 대통령 자리에 있고 싶었다. 하지만 예전에 지지해 줬던 국민들은 차츰차츰 등을 돌렸다. 그런 것들을 모른 척하면서 대통령은 은근히 서구에게 의지했다. 
‘내 곁엔 서구가 있어.’
‘우리 서구가 내 영광과 권력을 도와줄 게야.’
대통령은 법을 바꾸어 다시 대한민국 3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 해 7월. 
부산의 수산시험장에서 서구를 보살피는 수의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서구가 이상하네.”
수의사는 서구를 자세히 살폈다.
“서구야, 네 목과 다리가 왜 이러니?”
수의사는 서구의 목과 다리에 생겨난 작은 혹(종기)들을 발견했다. 부스럼들이 곪아 있었다. 생각해 보니 요즘 서구가 먹는 것도 시원찮았다.   
“서구야, 조개가 싫어? 왜 안 먹었어?”
눈치 빠른 수의사는 더럭 겁이 났다.
“큰일 났네!”
서구가 밥맛을 잃었다. 조개를 하루에 12kg까지 먹었는데 이젠 입도 대지 않았다. 
수의사는 곧바로 윗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서구가요?”
“예.”
“그럼 어떻게 하지요?”
수산시험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표정이 어두워졌다. 대통령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거북이 아닌가. 6년 동안 극진한 대우를 받으면서 잘 지내 왔는데.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서구에게 문병을 간 수산시험장 직원들은 한마디씩 위로를 건넸다. 
“좀 먹어 봐.”
“서구야, 제발 먹어 주렴.”
“날마다 조개를 팔백 개씩 먹어 놓고선. 네가 이렇게 굶다니 믿을 수 없어.”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서구가 우리들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것 맞죠?”   
어떤 사람은 장난삼아 부드레하게 말하기도 했다.
수의사는 정문기 박사에게도 알렸다. 정문기 박사는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느라 부산에 자주 없었다.
서구의 소식을 들은 정문기 박사도 어안이 벙벙해졌다.
“서구가 갑자기 왜요?” 
정문기 박사는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서구에게 무슨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건 아닌지 걱정되었다. 수명이 아직은 한참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했는데, 판단이 틀렸던 걸까? 정문기 박사는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나저나 서구의 상태를 경무대에도 알려야 했다. 수산시험장 직원은 먼저 해무청에 이 사실을 보고했다. 해무청에서는 대통령이 있는 경무대로 곧 전달했다.
“각하, 수산시험장에 있는 거북의 상태가 이상하다 하옵니다.”
“뭐요?”
경무대 뜰을 거닐던 대통령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우리 서구가 아프면 안 되는데.’
“몸에 혹이 생긴 후로는 음식을 아예 입에 대지 않는다고 합니다.”
“서구가 갑자기 왜 그러지?”
대통령은 서구의 아픈 소식이 믿어지질 않았다. 편안한 곳에서 고생 없이 잘 지내고 있었을 터인데. 
그러나 대통령은 서구의 겉모습만 보았다. 몸에 생긴 혹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밤마다 서구는 수족관 안에서 헤엄을 치며, 태평양 한가운데를 향해 나아갔다. 먼바다를, 고향 바다를 그리워하며 제자리에서 헤엄을 쳤다. 물이 빠져나가면 와이키키 바닷가 모래 위에 온몸을 드러내고 햇볕을 쪼였다. 은근히 따뜻하고 편안한 기분을 즐겼다. 아, 그립다. 서구의 그리움들이 쌓이고 쌓여서 마침내 혹이 된 것이다. 
대통령은 그 혹들 속에 뭉쳐져 있는 서구의 마음, 그 깊은 상처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13. 경무대로 간 서구 
대통령은 마음이 급해졌다. 안절부절 못했다. 서구에게 어떤 불행이 찾아올까 봐 두려웠다.
당장 서구의 병을 고쳐 줄 의사가 필요했다. 병을 잘 고치는 실력 있는 의사를 찾는 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었다.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불러서 즉각 지시를 내렸다.
“서구 몸에 혹이 생겼다는데 걱정이오. 빨리 없애 줘야 될 것 같소.”
“예, 각하.”
“어서 국내외 누구든 실력 있는 의사를 알아보시오.”
“알겠습니다.”
여름 더위가 한창일 때였다. 서구가 있는 수산시험장으로 의사들이 찾아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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