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해남 원주이씨의 충절(忠節) 활동’ 학술발표회

1555년 을묘왜변 왜구 맞서 200여명 의병 일으켜 싸워
 

강진 해남 원주이씨 충절활동 학술발표회가 끝나고 원주이씨 문중 관계자들과 학술발표회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강진 해남 원주이씨 충절활동 학술발표회가 끝나고 원주이씨 문중 관계자들과 학술발표회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 8일 강진아트홀에서 200여명의 지역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최초의병 이남(李楠) 선양사업회’ 창립총회와 함께 ‘강진·해남 원주이씨의 충절(忠節) 활동’ 학술발표회가 개최되었다.

원주이씨 문중에서 개최한 이번 행사는 임진왜란 37년전 인 1555년 을묘왜변(乙卯倭變)에 참전한 한 무신을 조명하기 위해 열렸다.

이번 학술발표회의 주인공인 이남(李楠, 1501~1555)은 당시 무장현감을 지내고 강진에 거주하고 있던중 해남군 북평면 달량성에 6천여 명이 쳐들어온 을묘왜변에 왜구에 맞서 200여명의 의병을 일으켜 참전했다.

이같은 내용은 ‘명종실록’에 명확히 남아있지만, 지금까지 의병장으로 조명받지 못하고 학술적인 정리가 안 된 것을 아쉬워하는 문중원들의 의문점을 해결하고자 자체적으로 개최한 것이다.

‘명종실록’ 18권, 명종 10년 5월 21일 갑인 두 번째 기사에는 “해남현감 변협(邊協)이 보낸 충순위(忠順衛) 임현령(林玄齡)이 와서 변방 일을 신보(申報)하였다. 

변협이 달량(達梁)이 포위된 것을 듣고서 군사 3백 명을 거느리고 달려가 구원하는데, 전(前) 무장현감 이남과 힘을 합쳐 접전하다가 적에게 격파되어 이남은 죽고 변협은 패배하여 겨우 몸만 빠져나왔습니다.

우도수사(右道水使) 김빈(金贇)과 진도군수 최인(崔潾)은 변협이 패한 것을 알지 못하고 어란포(於蘭浦)에서 와 구원하다가 역시 패하였는데, 이날 달량이 함락됐습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을묘왜변은 종전에 볼 수 없는 규모의 왜구침탈로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여 달량성를 지키던 관군 및 이를 구원하귀 위해 달려간 의병들도 6천여 명의 왜구들에게 중과부적으로 패하게 되면서 격랑의 소용돌이에 빠지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지금까지 을묘왜변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하였는데, 당시 인근 지역에 살던 무관 출신들이 위급한 시기에 의병을 일으켜 참전하였고 크고 작은 성과들이 있었음에도 지금까지는 학계에서 주목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날 학술대회 발표자로 나선 광주교육대학교 김덕진 교수는, 강진에 거주하던 전직 무장현감 이남은 민간인 신분으로 을묘왜변 당시 가장 먼저 거의하여 전투에 참여하였고. 달량성에서 전사함으로써 나중에 조정에서 그를 전망인(전투 중 사망군인) 167명 가운데 제일 앞에 기록하였음을 주목했다.

또 이남이 전라도 제1의 전망인임에도 불구하고 『호남절의록』 ‘을묘의적’ 편에 입록된 영암의 양달사(梁達泗), 백세례(白世禮) 등은 후손의 선양이 잘 이루어진데 비해 이남은 사우·정려·시호 조차 없는 사실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남은 약 200여 명의 의병을 거느린 을묘왜변 최초의 의병이었다고 강조하였다.

전남연구원의 김만호 책임연구위원은, 임진왜란기 원주이씨 강릉공파 일문의 충절 활동에 대해 발표하였다. 『금릉창의록』에 수록된 인물 현황에서 해남윤씨 가문과 더불어 원주이씨가 가장 많게 수록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임란시기 전사한 충청수사(忠淸水使) 이계정(李繼鄭)과 정유재란 때 맹활약한 의주부윤 이준(李浚), 이외에도 임진왜란 호종공신 이황·이순·이숙형·이원해 등 적잖은 공신과 의병들을 배출한 충절 활동을 드러내 주었다. 

전남대 사학과 김창수 교수는, 이준이 명·청 교체기 춘신사(春信使)로 후금의 수도 심양을 다녀오며 작성한 『심행일기』에 주목하였다. 춘신사였던 이준의 정치적·외교적 역할에 주목하면서, 조선 사신의 대(對)후금 정세 인식과 정보수집 등을 비교 분석하였는데, 이준이 무관(武官)의 경험으로 후금군의 동향, 화약무기, 국력의 현황 등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수집하였으며 귀국 이후 의주부윤(종 2품)에 제수되어 조정에서 사행(使行)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고 보았다.

원주이씨 문중 대표는 “이번 학술대회를 통해 원주이씨 일가의 충절활동들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어 기쁘다”며 “지금까지 평가 받지 못했던 최초의병 이남이 의병장으로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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