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한강 다리 폭파 책임을 진다는 거요”

그림 강화경
그림 강화경

 

“별일 있겠냐? 지은 죄가 없는데.”
“…….” 
학마을 앞바다 너머로 해가 졌다. 붉은 노을이 한 폭의 치맛자락 같았다 
“오늘은 노을이 유난히 아름답구나.”
정 사장이 마루에 앉아 저녁노을을 바라보고 있을 때였다.
대문이 삐그덕거리며 열렸다. 어깨에 띠를 두른 한 패거리의 남자들이 들어섰다. 정 사장과 용식은 바싹 긴장했다. 그런데 그들 맨 앞에 검게 탄 얼굴의 순배가 서 있었다.
“학마을 부자를 찾아왔소.”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정 사장은 태연하게 그들을 맞았다.
“순배, 잘 지냈는가?”
“정 동무, 말부터 높이시오.”
동무? 정 사장은 온몸이 으스스해졌다. 하루아침에 사람이 변해도 너무 변했다.  
“난 어장 물고기들을 잡아다 바치는 어제의 순배가 아니오.”
“삼촌! 순배 삼촌! 이러지 말아요.”
상원은 순배의 바지자락을 붙들고 울면서 매달렸다. 순배 뒤에 서 있는 사람들 손엔 두꺼운 포승줄이 들려 있었다. 그들은 옆 마을 사람들 같았다.
“우리의 피와 땀을 빨아 돈을 모은 반동분자들을 묶어라!”
순배의 말에 남자 셋이 다가왔다. 정 사장과 용식을 포승줄로 꽁꽁 묶었다.  
“순배! 어이 이 사람아, 어장을 내놓으라면 내가 그리 하겠네.”
순배는 정 사장의 말을 한 귀로 흘렸다.
“애비와 아들을 분주소까지 끌고 갑시다.” 
“분주소보다 더 좋은 곳으로 가야지요.”
정 사장은 도무지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순배! 내게 어찌 이럴 수가 있나?” 
마침내 순배에게 호통을 쳤다. 순배는 아무 대꾸 없이 실실 웃기만 했다. 기가 막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 사장과 용식은 이유도 모르면서 끌려가야 했다.
상원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울부짖었다.  
“안 돼요. 할아버지! 아빠! 순배 삼촌!”
상원이 달려나가 순배의 허리를 와락 껴안았다.
“삼촌, 우리 아빠랑 할아버지, 살려 주세요.”
순배는 상원의 팔을 떼어낸 후 못 들은 척하며 걸어갔다. 
상원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소리 없는 눈물방울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금방 돌아올 줄 알았던 정 사장과 용식은 그 길로 소식이 끊겼다. 순배도 마찬가지였다. 세 사람 모두 도깨비처럼 마을에서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아무도 몰랐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완도 약산으로 갔다고 했다. 또 지리산으로 들어갔다고도 하고 북한군에게 잡혀 함께 북으로 갔을 거라는 말도 있었다.
이제 상원의 집엔 여자들만 남았다. 할머니, 용자 고모, 엄마, 연초.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잘 버티어야 한다고 상원은 마음을 굳게 다졌다. 
하지만 하늘에서 비행기 소리라도 들리면 겁이 나고 정신이 없었다. 모두들 방으로 달려 들어가 납작 엎드렸다. 그럴 때마다 용자 고모가 아이들을 챙겼다.
그날도 비행기 소리에 상원이 고모를 부르며 달려갔다.
“용자 고모!”
뒤이어 달려온 연초까지 고모 품에 안겼다. 
잠시 후 별일 없이 다시 조용해졌다. 모두들 휴우,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이고. 전쟁 중에도 우리 강아지들이 무럭무럭 크는구나.”
고모가 아이들을 다독이며 말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상원에게 물었다.
“참, 전에 거북이 잡혔다고 하지 않았니? 걘 어떻게 됐어?”  
뜬금없이 다 지난 일을 묻는 고모가 상원은 이상했다.
“서구? 진즉 부산으로 갔지.” 
“거북이 이름이 서구야?”
“응. 상서로운 거북이란 뜻이래. 거북은 왜?” 
“갑자기 생각이 나서.”
고모가 픽 웃었다.
“그 거북이 나 좀 도와줬으면 좋겠네.”
“고모부 때문이죠?”
상원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후우.”
고모는 한숨부터 푸욱 내쉬었다.
“모르겠다. 아직까지도 연락이 없으니.”
“내 생각으론 고모부가 서울에서 무사히 있을 것 같아요.”
상원은 잠시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 아버지, 제발 빨리 돌아오세요. 고모부는 서울에 잘 계시고요.’      

대통령은 부산 임시 수도에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미국 맥아더 장군은 인천상륙작전을 준비 중이었다. 대통령은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면 서울을 다시 찾을 거란 희망에 젖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잔뜩 뿔이 나 있을 서울 시민들을 어떻게 달랠지, 그게 고민이었다.
어쨌거나 밤중에 시민들 몰래 혼자 서울을 빠져 나온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한강 다리까지 너무 빨리 폭파시켜서 시민들의 피난길까지 막혀 버렸다. 돌아가서 그 원망을 어떻게 다 받는단 말인가. 무슨 대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얼마 뒤 부산에서 계엄 고등 군법 회의가 열렸다. 전쟁 중이라 회의는 빠르게 진행됐다.
“이번에 인천상륙작전이 시작되기 전에 우리 군법회의에서 해결할 일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한강 다리가 끊겨 분노하고 있을 서울 시민들을 누군가가 달래 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국회에서 국민들에게 잘못했다고 사과를 해 주면 좋겠지만. 그럴 생각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아니, 아무 상관 없는 국회가 왜 사과를 하겠습니까? 진상조사를 한다고 하면 모를까?”
“아무튼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소?” 
회의에 참석한 군인들은 각자의 생각을 술술 털어 놓았다.   
“다리를 폭파한 책임자를 직접 처벌하면 시민들의 마음이 누그러질까요?”
“책임자 누구를요?”
“…….”
“신성모 국방부 장관이 지시했다던데 그를 말이오?”  
“아니, 국방부 장관은 안 됩니다. 전쟁 중에 그럴 순 없소.” 
“그럼 폭파 명령을 직접 내린 채병덕 총장이군요.”
“그는 벌써 지난 7월에 적군과 싸우다 전사했지요.”   
“그럼 누가 한강 다리 폭파 책임을 진다는 거요?”
한강 인도교는 유일하게 사람들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다리였다. 폭파로 다리가 끊어질 때 그 인도교 위를 사천여 명의 피난민들이 걷고 있었다. 다리가 무너지는 순간 팔백여 명의 시민들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러므로 책임을 질 사람이 꼭 필요했다.
군법 회의장의 분위기가 깊은 강물처럼 가라앉았다. 잠시 말들이 없었다. 조금 후에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최창식 공병감이 어떻소?”
단박에 반대 의견이 쏟아졌다.
“그건 아니 되오. 공병감은 부하로서 상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오. 그리고 그 큰 일을 대령 혼자서 결정했다고 하면 누가 믿겠소? 솔직히 장관도 혼자 결정 못 할 일 아니오?” 
“그래도 누군가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지만…….”
장교들은 눈만 끔벅였다. 괴로움에 잠겨 눈을 감았다 떴다 했다.  
“한강 다리 폭파는 사실 성공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인도교 폭파로 많은 피난민들이 희생되었지만 철교는 완전히 폭파되지 않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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