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와 강이 가까운 마을… 칡이 많이 있었지

 

바다와 강이 가까운 마을이다. 강진만이 지척이고, 조금만 나가면 탐진강 하류와 만난다. 주변의 들판이 넓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 살았으리라. 지금은 주변에 강진군농업기술센터가 우뚝 들어서 있다. 

도로의 남쪽에 본마을이 있고, 도로 북쪽에 새동네가 있다. 새동네의 집들이 인상적이다. 흔히들 양옥집이라 불리던 슬라브집들이다. 

1980년 농어촌취락구조 개선사업으로 조성된 새마을이다. 당시 농어촌취락구조 개선사업을 하면서 주로 대로변 마을을 우선 지구로 선정해 집을 짓곤 했다. 모델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다. 오늘날까지 집들이 옛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 나름대로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건물이 됐다.

마을의 동쪽이다.
마을의 동쪽이다.
마을 정자주변이다.
마을 정자주변이다.

 

갈전(葛田)마을은 칡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금의 새동네 근처에 야트막한 야산이 있었는데 그곳에 칡들이 많이 자생했다. 그래서 갈전이라 불리었다. 순 우리말로 칡골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갈전마을은 농악이 유명했다. 한때 80여호가 살 정도로 큰 동네였다. 마을의 안녕과 액운을 쫓기위해 농악놀이가 오랫동안 전승돼 왔다. 한때 강진군를 대표해서 농악놀이 대회를 나가기도 했다. 

새동네로 들어가는 길목.
새동네로 들어가는 길목.
마을 동쪽에 하천이 있다.
마을 동쪽에 하천이 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한시 중에 애절양(哀絶陽)이란 시가 있다. 다산이 관리들의 탐악과 민중들의 고통을 절절하게 폭로한 시가 애절양이다. 다산은 1803년 노전(蘆田)마을 어느 백성이 자신의 양근(陽根)을 끊은 것을 슬퍼하면서 애절양이란 시를 지었다.

 강진읍으로 들어가는 도로다. 마을을 본마을과 새동네로 나눈다.
 강진읍으로 들어가는 도로다. 마을을 본마을과 새동네로 나눈다.

 

노전마을은 어디일까. 비슷한 지명이여서 갈전마을이 애절양의 무대일 것이라는 추정들을 하곤 했다. 그러나 갈전마을의 갈은 칡갈자를 사용하고, 노전마을의 노는 갈대노자를 쓰고 있다. 애절양에 나오는 노전마을이 갈전은 아닌 것 같다. 혹자는 도암 용산마을이 애절양의 무대일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한다.          /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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