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가 우릴 부른 것만 같소 이젠 우릴 지켜줄 것이요

그림 강화경
그림 강화경

 

“우리도 알고 있다. 들어와서 몸부터 씻어라.”
저녁을 먹은 후 식구들이 둘러앉았다. 상원과 연초는 쪼르르 고모 옆으로 갔다. 
“왜 너 혼자 왔어?”
용식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오빠, 그 사람도 곧 따라온다고 했어.”  
“그래?”  
“무사히 왔으니 됐다. 애썼다.”
정 사장도 한마디했다. 
“아버지. 나처럼 한강 다리를 건넌 피난민들은 운이 좋은 거예요. 고생은 했지만 살아 있잖아요.”
용자는 내려오면서 한강 다리가 끊겼다는 소식을 들었다. 걸어오는 내내 용자는 가슴을 졸였다. 남편이 걱정이었다.
‘무사히 한강을 건넜을까? 못 건넜으면 어쩌지?’ 

6월 28일 자정에 북한군이 청량리까지 밀고 들어왔다. 이 소식을 들은 채병덕 국방부 참모총장은 새벽 한 시경에 최창식 대령에게 명령을 내렸다. 최창식 대령은 공병부대를 이끌고 있는 책임자였다.    
“최창식 대령.” 
“예, 총장님!”
“방금 북한군 전차가 청량리에 나타났다. 저들이 한강 다리를 건너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 다리를 끊어라.” 
한강 다리는 사람이 건너다니는 인도교 1개와 철도 및 화물 운송용 철교 3개까지를 모두 가리키는 거였다. 북한군을 막기 위해 27일 오후에 미리 폭약을 설치하고 대기중이었다. 하지만 당장 폭파시키기에는 너무 일렀다.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최 대령은 사람들을 더 대피시키고 폭파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럼 피난민은 어떻게 합니까? 아직 건너지 못한 사람이 많습니다.”
“어쩔 수 없다. 북한군부터 막아야 한다. 위에서 내려온 명령이니 따를 수밖에 없다.”
한 시간 이십 분 정도 지났을 때 채병덕 총장이 다시 전화를 했다. 
“최창식 대령! 빨리 한강 인도교를 폭파하라!”
“예,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대답은 했지만 자꾸 망설여졌다. 십 분 후 채병덕 총장은 또다시 전화로 명령을 내렸다. 
“왜 폭파 안 하나? 당장 폭파하라!”
최창식 대령은 자꾸만 망설였다.
피난민들은 어쩌라는 건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직 피난을 가지 못한 아내와 갓 태어난 아이도 걱정이었다. 그들도 아직 다리를 건너지 못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어야 하니까.
“예, 알겠습니다!”
스물아홉의 최창식 대령은 채병덕 장군이 시킨 대로 한강 다리를 폭파했다. 6월 28일 새벽 2시 30분경이었다. 당시 다리를 건너고 있던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미처 후퇴하지 못한 군 병력도 북한군에게 포위되어 전멸하고 말았다.
 
고모가 갑자기 눈물을 흘렸다. 
“혹시 그 사람이 사고를 당했으면 어쩌죠?”
“그러니까 같이 오지 그랬냐? 자전거고 돈이고 뭐가 중요하냐? 가게 문 닫고 네가 고집을 부렸어야지.”
정 사장은 딸이 혼자서 피난 온 게 영 마땅치 않았다. 
“아버지, 아무 일 없겠죠?”
“없어야지. 그저 빌어라.”    

6월 27일 새벽 3시 30분에 열차를 타고 서울을 빠져 나간 대통령은 12시 정오가 되자 대구에 도착했다. 하지만 다시 기차를 돌려 대전으로 갔다. 아마도 너무 멀리까지 도망 갔다는 비난이 두려웠는지 모른다. 오후 4시 30분에 대전역에 도착해 충남 도지사가 머무는 곳에 숙소를 정했다.
6월 30일 북한군 탱크가 수원을 지나 빠르게 남쪽으로 내려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래서 대전으로 피신한 지 5일 만인 7월 1일 새벽 3시에 대통령은 다시 열차를 타고 이리를 들렀다가 목포로 갔다. 목포에서는 조용히 함정으로 갈아탔다. 이번에는 부산으로 잠시 몸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후 대통령은 다시 대전으로 돌아갔다가 북한군이 금강을 넘어오기 직전인 7월 16일 대구로 임시 수도를 옮겼다. 이곳에서는 경북 도지사가 살던 집에 임시로 경무대의 살림이 꾸려졌다.
7월 27일 새벽. 
북한군의 비행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대통령이 있는 집 위를 바짝 지나갔다. 가까운 대구 운동장에 폭탄이 떨어졌다. 화들짝 놀란 대통령은 잠에서 깨어 우두커니 앉았다.
‘적들이 여기까지 왔단 말인가?’
오후에 신성모 국방부 장관이 달려왔다.
“각하. 북한군에게 하동을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오늘 채병덕 육군 참모총장이 적들에게 목숨을 잃었다고 합니다.”  
“뭐, 뭐요? 나의 채병덕 장군이 죽었다고요?”  
그는 최창식 대령에게 한강 다리를 폭파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장군이다. 뚱뚱하고 둔해 보였지만 전쟁 무기를 잘 관리했다. 뒤뚱거리며 걷던 채 장군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대통령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대구의 북쪽을 둘러싸고 있는 낙동강. 그 낙동강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북한군들과 치열하게 싸우는 중이었다. 이제 대구도 어찌될지 알 수 없었다. 아슬아슬한 나날이 이어졌다.
결국 대통령은 낙동강 전투를 피해 8월 18일 헬리콥터에 올랐다. 진해비행장에서 내린 후 그들은 부산 시내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냈다.
대통령은 부인을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신기하기도 하지요.”
“므어가(뭐가요)?”
“우리가 또다시 부산으로 왔어요.”
“…….”
“서구가 우릴 부른 것만 같소. 이젠 우릴 지켜줄 것이오.”
대통령은 복을 가져다 준다는 서구를 다시금 떠올렸다. 
 
남쪽 바닷가 학마을에도 전쟁 바람이 불었다. 
8월 한더위에 북한군들이 남쪽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경찰들은 북한군을 막으러 풀치로 갔다. 그러나 엄청나게 밀려온 북한군을 막아낼 수 없었다. 경찰들의 숫자가 너무 적었다.   
“우선 몸을 피합시다.”
경찰들은 피난 갈 사람들과 함께 새벽에 마량항으로 모였다. 부둣가에 미리 준비해 둔 배를 타고 고금도로 들어가 숨었다.
풀치재를 넘어온 북한군들은 유유히 남쪽으로 내려왔다. 강진에 들이닥친 북한군들은 먼저 군청부터 차지했다. 군청에 정치보위부 직원들을 두고 면마다 ‘분주소’라는 조직부터 만들었다.
‘분주소’는 파출소와 비슷했다. 북한군에게 넘어가 그들을 돕는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롭게 분주소를 드나들었다.
학마을 정 사장 식구들은 불안에 떨었다. 정 사장은 사람들에게서 들은 분주소 소식을 가족에게 전했다.
“용식아, 읍내 시장 입구에서 며칠 전 인민재판이 열렸다는구나.”
그 말을 들은 용자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와 오라버니는 몸을 피하는 게 좋겠어요.”
정 사장은 물고기 어장을 가지고 있는 동네 부자였다. 아들 용식은 면사무소에서 나랏일을 한 공무원이었다.
“조금만 지켜보자.”
“아버지, 어쩐지 무서워요.” 
정 사장과 용자는 우울해졌다.
용자는 어머니를 도우러 부엌으로 나갔다.    
드디어 학마을에도 팔뚝에 완장을 찬 사람들이 나타났다. 집 앞에서 상원은 그런 사람들을 보았다. 머리끝이 쭈뼛해졌다.
“할아버지, 이상한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해요.”
상원은 숨소리를 헐떡이며 달려 들어왔다. 용식은 아버지의 얼굴을 쳐다봤다.  
“우리 괜찮겠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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