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저수지에 당도할 봄을 기다린다

 

강진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옴천에서 영암으로 넘어가는 돈받재 바로 오른쪽에 있다. 신월과 구곡을 합하여 월곡리라 부르는데 구곡은 신월마을 아래쪽, 월곡저수지를 접하고 있다.  

과거 이 저수지를 막기 전에는 마을 앞으로 광주나 나주로 다니는 길이였다고 전해오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마을의 북쪽이다.
마을의 북쪽이다.
회관옆에 돌담이 있다.
회관옆에 돌담이 있다.

 

6.25 전쟁 당시에는 구곡마을과 월곡마을이 완전 전소됐고 현재 집들은 이후 지은 집들이라고 한다.

전쟁 당시 저수지 아래 마을인 영산으로 피난와서 살다가 전쟁이 끝나고 마을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옴천 토하가 저수지 자리에서 많이 잡혔다는 이야기 등 사연이 많은 마을이다.

돈받재란 독특한 이름의 재가 있다. 그 사연이 깊다. 옛날 어떤 사람이 밤중에 영암장에서 소를 팔아 오다가 도둑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돈을 잿등에 묻어 두었다.
 

오래된 마을 표지판이다.
오래된 마을 표지판이다.
대나무밭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대나무밭이 마을을 감싸고 있다.

 

그러나 다음날 한가한 틈을 타 돈을 묻어 두었던 곳을 찾아가 땅을 파 보았으나 돈을 찾지 못했다. 밤중에 묻어둔 것이라 정확한 지점을 찾지 못했던 것이다. 이 곳 어디엔가 돈밭이 있어 돈받재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은 이 재에서 하도 도둑들이 돈을 자주 뜯어 내서, 도둑들이 돈을 받는 곳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말도 있다.

주변에 밭이 많다.
주변에 밭이 많다.

 

구곡과 신월마을은 80년대 초반 월곡제가 막아지면서 큰 환경의 변화를 겪었다. 마을앞에 ‘가쟁이들’이라는 큰 들판이 사라졌고, 광산터와 당산나무, 마을상점, 동굴등이 모두 저수지 속으로 수몰됐다. 

월곡저수지에 수몰된 곳은 과거에 토하가 가장 많이 잡힌 곳이기도 했다. 지금은 10여채의 집들이 저수지와 맞닿은 곳에 옹기종기 자리잡고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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