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박물관 윤성일관장 방에 아주 정갈한 글씨가 있다. ‘陶瓷中興’. 도자중흥이란 말이다. 옆의 작은 글씨는 무오년에 정채균 군수가 적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를 풀어쓰면 1978년에 강진군수 정채균이 강진청자의 중흥을 바라는 염원으로 적었다는 뜻이다.

정갈하면서도 깔끔하고, 단순하지만 함축적이다. 45년전 강진청자의 발전을 염원하는 모든 사람들의 바람이 이 네글자에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이 글씨는 아크릴에 크게 복제를 해서 사무실 현관에도 걸려 있다.

강진군이 고려청자재현사업을 특수시책사업으로 정하고 추진위원회를 구성한 것은 1977년 6월이다. 당시 군수가 정채균씨였다. 정 군수는 75년 12월에 부임해 강진 주민들의 청자재현 의지를 몸소 느낀 사람이였다. 스스로를 문화군수라가 자칭할 정도로 문화에 관심이 많았다. 

청자재현사업추진위원회 초대 위원장이 정채균 군수였다. 고문에는 길전식 당시 국회의원과 황호동 국회의원, 고건 전남도지사, 최순우 국립중앙박물관장, 정양모 수석학예관등이 이름을 올렸다.

추진위원은 조기정 전남문화재전문위원, 유수현 전 국회의원, 서예가 김현장씨, 김기삼 조선대교수가 맡았고, 실무책임자인 추진위원회 간사를 바로 이용희 청자장이 맡았다. 

이들은 1977년 6월 18일 대구 사당리에서 군비 5천만원을 들여 청자재현 가마솥(현 강진요 제1호)기공식을 가졌다. 이 사업은 국가적인 관심사업이여서 기공식에 김성진 문화공보부장관과 고건지사등이 대거 출동했다.

이날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작품제작에 들어가 11월 중순 드디어 화목가마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몇차례의 실패를 거듭하면서 1978년 2월 23일 첫 요출을 했다. 600년만에 강진에서 고려청자가 재현된 순간이였다. ‘도자중흥’이란 글씨는 아마도 이때 쯤 쓴 것으로 추정된다.

정채균 군수는 원래 서예가 수준급이였다. 주로 새벽 시간에 붓을 잡았다고 한다. 푸른빛의 고려청자가 재현된 것을 보며 감회에 젖었을 것이다. 어떻게하면 청자가 강진을 먹여 살릴 수 있게 할 것인지 고민도 했을 것이다.

그래서 어느날 새벽 잠에서 깨어 붓을 잡았다. 자세를 가다듬었다. 심호흡을 내쉬었다. 하얀 화선지 위에 조용히 써 내려갔다. ‘陶瓷中興’. 도자중흥은 오늘날도 계속되어야 한다. <주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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