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초반 청자가마 발굴이 본격화 될 때 지금의 청자박물관 주변은 흙먼지만 날리는 삭막한 들판이었다. 지금은 상록수인 녹나무가 박물관 주변을 애워싸고 있다. 겨울 청자축제가되면서 푸르른 녹나무들이 어느때 보다 빛난다.

이곳에 처음 녹나무가 심어진 게 1975년이다. 그 사연이 깊다. 장흥 대덕읍에 위행량(80년 초반 작고)선생이살았다. 우연한 일로 일본을 가게 됐다. 녹나무는 일본에서 아주 중요한 나무로 취급 받고 있었다.

천왕이 사는 황궁 주변에 녹나무가 둘러 쌓여져 있고, 주요 관광지에는 예외없이 거대한 녹나무들이 자라고 있었다. 녹나무로 만든 상품도 많았다.

위행량씨는 녹나무가 틀림없이 우리나라 남부지방에서도 잘 자랄 것이라확신했다. 귀국한 위씨는 돈을 몽땅 끌어모아 일본으로 다시 건너갔다. 어린 묘목을 수만그루 구입해 부산항을 통해 가져왔다.

대덕 자신의 땅에 녹나무를 많이 심은 위씨는 홍보를 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찾아온게 대구 당전마을에 사는 친척 이용희 선생이었다. 당시 이용희 선생집 주변(지금의 청자박물관 인근)은 고려 청자가마가 발견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져 있었다. 

이용희 선생은 위씨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 일대에 묘목 500여 그루를 심었다. 속성수인 녹나무는 빠른 속도로 자랐다. 1978년 들어서는 강진군에서 나무를 매입해 주변에 심었다.

위행량씨는 그때 돈으로 130만원을 벌었다. 적지 않은 돈이었다. 그러나 대덕 자신의 땅에 심었던 나무는 대부분 죽어 버렸다. 팔리지도 않았다, 결국 위씨는 홧병에 걸려 80년대 초반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그렇게 위행량씨는 떠났지만, 청자박물관 주변 녹나무는 독야청청을 자랑하고 있다. 녹나무를 심는 사람들은 이곳에서 씨를 받아서 묘목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녹나무는 어릴때 냉해피해를 쉽게 받는다.

겨울철이면 몇날 며칠 따뜻하다가도 영하의 날씨가 3일 정도만 계속되도 얼어 죽는다. 강진지역에 녹나무를 많이 퍼트리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으나 번번히 실패했다.

그러나 일정부분 자라면 냉해에 강해지기 때문에 청자박물관 주변 녹나무들은 냉해를 입지 않고 아주 잘 자라고 있다. 지금도 계속 커가는 중이다. 녹나무가 겨울 청자축제를 빛내고 있다.           <주희춘>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