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구수한 곰탕 친구들과 사먹으며 운동했다

제주도 수학여행 시절을 갔던 일도 기억에 많이 남지만 중학교 학창시절 강진읍내를 친구들과 돌아다녔던 추억도 떠오른다.

무더운 여름철이면 시장에 나가면 옛날모습을 보여주는 드라마의 모습처럼 “아이스께끼”를 외치며 파는 장사꾼이 있었다.

‘아이스께끼’는 아이스크림의 사투리였는데 나무로 만들어진 통안에 아이스크림을 넣고 두꺼운 담요같은 걸로 싸매고 녹지 않게 들고다니는 상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친구들과 무더운 여름철이면 하나를 사서 나눠먹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에 개당 10원에 사먹었던 것 같다.

내가 다녔던 강진중학교 근처에는 작은 상점이 하나 있었다. 지금도 중학교와 전남생명과학고 사이에 상점 하나가 있는데 당시에서 점수동마을 방면으로 작은 가게가 하나 있었고 우리들은 쉬는 시간이면 이 곳 상점을 찾아가 간식거리를 사먹기도 하곤 했다.

친구들과 돌아다니면서 먹었던 것들중 시장구경을 빼놓을 수 없다. 강진읍시장에는 당시에 풍미빵집이라는 빵집이 있었다. 이 곳은 북한이 고향인 사람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빵맛이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하나에 10원정도 하는 저렴하지 않은 가격이었지만 먹어도 돌아서면 배고프던 시절 빵을 사먹으며 친구들과 나눠먹었던 추억이 떠오른다.

아직도 그 맛이 떨어로는 음식이 하나 있다. 바로 시장에서 먹던 곰탕이다. 나는 중학교 시절부터 운동을 했기 때문에 운동을 함께 했던 친구들과 함께 자주 먹으러 다녔는데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곰탕은 위에는 누렇게 기름이 둥둥 떠있었는데 지방섭취가 어려웠던 그 시절 기름이 둥둥 떠있는 곰탕은 영양섭취를 위한 고단백 음식이었다. 곰탕을 사서 친구들과 함께 자주 사먹으며 영양보충을 했고 그 힘으로 다시 운동에 매진하곤 했다.

또 간단하게 간식거기로 사먹었던 것중에는 계란도 있었다. 시장에는 생계란을 짚으로 엮어서 팔곤 했는데 생계란을 사서 먹으면 구수한 맛이 일품이었다.

학창시절 읍내에서 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용돈을 받아서 생활을 햇는데 주로 어머니가 주셨다. 어머니는 이때 바느질을 아주 잘하셨는데 집에 ‘싱가’라는 좋은 미싱이 있었다.

이 장비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받고 바느질을 해서 옷을 만들어 팔기도 하셨고 옷을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나눠주기도 하셨다. 또 우리 집 일을 해주는 사람들에게 인건비 대신 옷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렇게 소일거리로 번 돈을 나에게 용돈으로 주셨다. 나는 이 용돈으로 여러 가지 음식들을 사먹으며 운동도 하고 공부를 하며 생활했다.

이때 칠량과 강진읍 남포 등이 고향이던 친구 2명과 자취를 했는데 가져다놓은 쌀이 몇 달이 지나도 많이 소모되지 않을 만큼 이 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시장에서 간식거리로 배를 채우며 지냈던 추억이 떠오른다.

이때 강진읍시장을 가면 여러 가지 먹을거리가 많고 사람들도 넘쳐났다. 지금처럼 도로가 발달되지도 않았기 때문에 주요 도로 몇곳을 중심으로 상점이 생겼을 뿐 강진읍내도 대부분 텅빈 허허벌판이었다. 

현재 강진경찰서에서 우리서점까지 내려오는 도로가 가장 컸고 현재 강진읍 중앙로 도로정도만 개설되어 있었다. 그외에는 도로라고 부르기도 힘든 골목길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허허벌판인 곳들이 많았다.

지금 강진읍 시가지 모습을 보면 강진읍도 많이 바뀌기도 했고 시가지가 많이 커졌다는 생각이 들며 발전한 모습에 흐뭇해진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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