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일어났다… 빨리 한강을 건너야죠 이러고 있을때가 아니야

그림 강화경
그림 강화경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렇게 사태가 심각하게 돌아가고 있는데도 대통령은 창덕궁 후원인 비원의 연못 반도지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오전 6시 30분쯤에 경무대 경찰서장 김장흥 총경이 허겁지겁 달려왔다. 그는 잔뜩 겁먹은 얼굴로 다급하게 대통령을 불렀다.  
“각하, 아무래도 북한이 심상치 않습니다. 전면적인 전쟁을 시작한 것 같습니다.”
대통령은 즉시 경무대로 돌아왔다. 잠시 후 신성모 국방부 장관이 달려와 상황을 보고했다. 
“지금 당장 국무회의를 소집하시오.”
주한 미국대사인 존 무초도 전화를 걸어왔다. 무초는 이미 북한의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38선의 위급한 상황을 미국에 먼저 보고했고 경무대에도 알려 주면서 대통령의 면담을 요청했다. 
대통령은 어찌 해야 할지 난감했다. 적을 물리칠 무기도 변변찮았고 병력도 부족한 지경이었다. 당장 전쟁을 치르기엔 역부족이었다.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에게 명령을 내렸다.
“어서 맥아더 장군에게 알리시오. 미국에 있는 한국대사에게도 연락해 백악관과 교섭하도록 하시오. 유엔에게도 우리를 도와 달라고 하시오.”
곧이어 주한 미국대사인 존 무초가 대통령을 찾아와 사태의 심각성을 알리고 대책을 상의했다. 
나라에 비상이 걸렸다. 군인을 가득 태운 트럭들이 서울 시내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북쪽을 향해 줄지어 달려갔다. 그때까지도 서울 시민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랐다. 용자 역시 아무것도 몰랐다. 
용자는 가게 안에 서서 군인들이 가득 탄 트럭을 바라보았다.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혼자 중얼댔다.
“뭐지? 38선에 뭔 일이 났나?”
시간이 지나자 라디오에서 전쟁 소식을 알리며 군인들의 복귀를 안내하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휴가를 나간 장병 여러분! 장병 여러분들은 빨리 부대로 돌아가십시오.”
휴가나 외출 나온 군인들이 서둘러 부대로 돌아갔다. 그런 모습을 지켜본 서울 시민들 얼굴엔 점점 불안한 그림자가 너울거렸다. 
오후에는 북한군의 전투기가 김포 비행장과 용산역을 폭격하자, 시민들은 전쟁의 공포를 느끼기 시작했고, 서울은 점점 심각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역에 아무도 모르게 기차를 준비시켜 놓고 무초 대사를 밤 10시에 경무대로 다시 불러들였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남쪽으로 피신하겠다는 뜻을 밝혔고 무초 대사는 서울을 지켜야 한다고 강력히 반대했다. 
다음 날인 6월 26일, 북한군 전차가 순식간에 의정부까지 들어왔다는 소식에 대통령은 기겁했다. 미국의 신속한 무기 지원이 절실했다. 
“내가 직접 맥아더와 통화하려 했는데 연결이 안 되더군요. 오늘의 한국 사태에 미국은 책임을 지고 한국을 구해 주시오.”
대통령은 새벽 4시에 무초 대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미국의 지원을 재차 촉구했다. 무초 대사는 곧바로 본국에 연락을 해서 한국의 급박한 상황을 전달하고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일본 동경에 있는 맥아더가 전투기 10대를 보내 오고 이어서 다른 무기도 신속히 지원하겠다고 했다. 

6월 27일 밤 9시 라디오 방송에서 대통령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특별 담화였다.  
“국민 여러분. 미국과 UN이 우리를 도우러 오기로 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이지만 나는 반드시 공산군을 물리칠 것입니다.”
서울 시민들은 대통령의 말을 듣고 마음을 놓았다. 하루종일 방송에서 흘러나온 정부 발표를 더욱 믿게 되었다.
그날 방송에서는 ‘우리가 의정부에서 이기고 있다. 우리는 서울을 지킬 것이다. 국민들은 안심하고 생업에 전념하라.’고 온종일 떠들어댔다. 
“휴우, 다행이네. 대통령이 서울을 지키겠다고 하니 우리도 믿고 따라야지.” 
“그러게. 대통령도 서울에 있는데 별일 있겠나?”
하지만 서울을 지키고 있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6월 28일 대전을 임시 수도로 하고 벌써 정부도 옮겨 갔다는 사실이 발표되자, 시민들은 분노하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이미 6월 27일 새벽 3시 30분에 서울역에서 남행 열차를 탔다. 조용히 서울을 빠져 나간 거였다. 국회도 국방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서울에 있는 척 방송을 한 거였어?”
대통령이 서울에서 사라진 줄도 모르고 마음놓고 있던 서울 시민들은 뒤늦게 울분을 터뜨렸다. 
“어? 대통령이 서울을 지킨다고 했잖아요?”
“시민들은 동요하지 말고 안심하라고 하고선 어떻게…….”
약속을 안 지킨 정부! 서울 시민들은 대통령에 대한 믿음이 원망으로 바뀌었다. 

용자는 불안하기만 했다. 대통령과 정부의 말을 믿고 가만히 있어도 되는지 의심스러웠다. 북한군이 남쪽으로 밀고 내려온다는 소문은 의정부 쪽만 아니라 문산 쪽에서도 들려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거세게 퍼져나갔다.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불안에 떨며 앞날을 걱정했다.
이웃들의 수군거림이 용자의 귀에도 들려왔다. 
“사람들이 한강 다리를 건너 벌써 피난 간다고 난리구먼.” 
“대통령도 서울에 있다고 하던데, 왜 그런데요?”
“그 사람들이야 여차하면 달아날 방법이 많으니 걱정 없겠지. 우리야 무슨 다른 수가 있나? 미리미리 피해 놓는 게 좋으니까 그러는 거지.”
“그럼 우리도 빨리 한강을 건너야죠.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네요.”
용자도 서둘러 피난을 준비했다. 우선 가게 문부터 닫았다. 농 안에서 가방을 꺼내 옷 몇 가지를 챙겼다. 자전거 회사의 직원을 만나러 간 남편이 돌아오자 용자는 재촉을 했다.
“여보, 우리도 어서 피난 가요.”
“어디로?”  
용자는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남쪽 고향마을을 떠올렸다.
“학마을로요.” 
남편은 곤란하다는 듯이 망설였다. 
“거기가 제일 안전할 것 같아요.”
“내일 나는 만나야 할 사람이 있소. 당신 먼저 내려가시오.”
“중요한 일 아니면 같이 가요.”
“그 사람을 만나서 빌려 준 돈을 받아야 하오.”
그 말에 용자도 더 이상 말을 못 했다.
“그럼 먼저 갈게요. 학마을 우리집에서 만나요.”
“알겠소. 거기서 봅시다.”
6월 27일 밤, 용자는 혼자서 피난길에 올랐다. 서둘러 한강 다리를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야 했다.

바닷가 논에 모를 심느라 학마을은 한창 바쁜 철이었다. 모내기가 끝난 사람들은 바다에서 하루 종일 물고기를 잡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마을이 뒤숭숭해졌다. 전쟁 소식이 들려올 때마다 손에 잡힌 일들이 뭉그러졌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로 시집 간 용자가 나타났다. 
“고모!”
상원과 연초는 큰 소리로 용자를 불렀다. 보따리를 손에 든 용자의 옷차림은 후줄근했다. 치마와 저고리에 흙과 때가 꼬질꼬질하게 베어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딸 왔어요.”
정 사장은 귀에 익은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힘이 빠진 용자는 퉁퉁 부은 발로 마당에 서 있었다. 지쳐 쓰러질 듯했다.  
어머니가 놀라서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용자야, 네 꼴이 왜 이러냐?” 
“그래도 여긴 조용하네요. 서울은 난리인데.”                            
 <계속>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