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서 12시간 배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강진은 지금과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모습이었다. 지금이야 강진읍내에 도로들이 생겨 많은 차들이 운행되고 있지만 60~70년대만 하더라도 자동차는 구경하기도 힘든 교통수단이었다.

학창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강진극장이다. 현재 강진읍 동성리 극장통 거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볼링장이 들어서있다. 그곳에 오래전 강진극장이 있었는데 아이들에게는 흥미로우면서도 가고싶은 곳이었다.

다양한 영화가 상영됐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기 때문에 구경거리도 많았다. 나와 친구들은 학교 수업이 없을때면 강진극장에 놀러가곤 했는데 이 곳은 원래 학교에서 학생들 출입을 금하는 곳이었다. 학교에서 단체로 영화를 관람하기도 했지만 그 외에는 학생들은 출입하면 안되는 장소중 한 곳이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출입하지 못하게 한다고 어디 말을 들을 아이들이던가. 나와 친구들은 선생님 몰래 강진극장에 놀러가곤 했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 외에도 당구장도 학생들이 가면 안되는 장소였다. 오늘날 당구가 스포츠로 인정받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당시에는 당구가 학생들은 접하면 안되는 것으로 인식했던 것 같다.

이 시절에는 강진읍에서도 자동차는 상당히 보기 드문 교통수단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걸어다니거나 자전거를 이용하곤 했다. 자전거도 가정형편이 넉넉한 사람들이나 타고다녔다. 나의 이숙이 강진읍 평동마을에 거주하고 계셨다.

이때 이숙은 어느 날 일본에서 만든 고급 자전거를 사왔는데 이 소문이 읍내 각 마을에 퍼지면서 남포마을과 목리 주민들도 이 자전거를 구경하기 위해 걸어오기도 했다. 그만큼 물건이 귀하던  시절이었던 것이다. 또 이 시절 최현석이라는 사람의 아버지는 검정색의 소련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녀 읍내에서 유명했다.

중학교 3학년 시절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다. 지금이야 제주도는 가족여행으로도 자주 가는 그런 장소지만 이 시절에는 여행이라는 단어조차 낯설었던 시절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이 시절 제주도 여행은 지금 해외여행처럼 경험하기 쉽지 않은 것이었다.

이때 나와 친구들은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를 갔는데 이때 목포에서 제주도를 오가는 배는 목선과 철선 2가지가 있었다. 이때 우리는 저녁무렵 선착장에 도착해 배를 탔는데 다음날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제주도에 도착했다.

무려 12시간 이상을 배를 타고 갔는데 배가 오늘날처럼 크기가 큰 것도 아니었기에 파도로 인해 멀미를 하는 친구들이 많았다. 나도 울렁거리는 배에 친구들과 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선실에서 죽은듯이 잠을 잤던 기억이 난다.

이때 제주도는 오늘날 관광도시가 아니었고 농촌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내가 머물렀던 여관의 화장실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은 역사속으로 사라진 똥돼지가 화장실에 있었던 것이다.

화장실은 옛날식 화장실이었고 아래에는 돼지가 한 마리 살고 있었다. 그야말로 제주도에서 말로만 들었덩 똥돼지 화장실이었던 것이다. 강진에서는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기에 더 놀랐던 기억이 난다.

또 제주도에서 만장굴을 가게 됐는데 전기시설도 갖춰져 있지 않아 나와 친구들은 저마다 횃불을 들고 동굴속을 구경해야만 했다. 친구들은 횃불을 들고 동굴을 걸어가다가 미끄러지기도 했다.

또 시내에서도 자동차는 거의 없고 소달구지도 볼 수 있었는데 여자가 소를 몰고 남자는 뒤에 앉은 모습에 웃었던 기억도 난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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