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석/시인

시인/김재석
표해시말(漂海始末)-천초 문순득에게

먼 바다에 표류했다 가까스로 돌아온
그대의 구술을 그대로 옮겼으니
이것은 내 것이 아닌
그대의 것이지

밀리고 밀리어 현상까지 밀린 나는
돌아가지 못하고 둥지를 틀었건만
그대는 천운을 타고나 먼곳에서 돌아왔지

먼 나라의 풍속은 두말하면 잔소리고
굴실에 의복까지 해박에 토산까지
두 눈에 담아 오다니
하나도 빠짐없이

하루가 멀다하고 술에 젖은 내가
구사일생 살아난 그대와 만나다니
그대를 만나기 위해
내게는 슬픈 일이

깊이 잠든 조선을 흔들어 깨워야지
굳게 잠긴 조선의 빗장을 열어야지
천초여, 표해시말이
우연인가, 운명인가

 

△표해시말: 신안 우이도 사람 홍아장수 문순득(1777~1847)이 바다에 표류하여 일본, 필리핀, 중국을 거쳐 돌아온 이야기를 손암 정약전이 그의 구술을 받아 적은 것이다.

△천초(天初): 손암선생이 문순득에게 지어준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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