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농단’ 사태로 기소돼 재판을 받던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2019년 2월 47개의 혐의로 기소된 뒤 꼬박 5년 동안 290번에 이르는 재판을 거친 결과라고 한다. 법원의 자체 조사가 2017년부터 시작됐기 때문에 무죄판결을 받기까지 7년이 걸렸다고 봐야 한다. 

판결 소식을 듣고 지난해 92세로 작고한 고광철 전 재부산강진군향우회장을 생각했다. 강진읍 보전마을 출신으로 고려대를 나와 부산에서 관광업에 뛰어 들었다. 50여년간 부산시관광협회 일을 하며 협회장을 두차례나 했다.

한일간 민간교류에 없어서는 안될 인물이 됐다. 일본 정부로부터 훈장도 받았다. 2010년 강진군과 일본 하사미정 자매결연에 큰 기여를 했다.  

이런 화려한 대일 이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가 주변에서 더 큰 관심을 받은 것은 양 전 대법원장과 인척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양 전 대법원장이 손아래 처남, 그러니까 고 회장의 부인 양순홍여사가 양 대법원장의 친누나다. 

양 전 대법원장이 부산지방법원장이 된게 2002년이다. 2005년부터 2011년 2월까지 대법관으로 일했고, 2011년~2017년까지 대법원장을 지냈다. 법조인과 관광업이라는 별개의 분야지만 두 사람 나름대로 각자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며 살았던 분명한 이력들이다. 

고 회장은 말년들어 강진에 자주 왔다. 2016년부터는 매년 고향 보전마을에 500만원씩을 내 놓았다. <강진일보> 열렬한 애독자여서 꼭 신문사 사무실에 들러 1년치 구독료를 내고 갔다. 

고향에 올 때마다 읍내 식당에서 지인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곤 했는데, 고향에 온 행복한 얼굴에서 어느 순간부터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옆에 앉은 양순홍 여사의 침울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가 본격적으로 진행된 때였던 것으로 보인다. 평생을 자부심으로 느꼈던 처남이 어려운 상황이 된게 안쓰러웠을 것이고, 노년에 그런 일을 겪는 고 회장 자신과 부인의 처지도 쓸쓸했을 것이다.

억울함도 여기저기 스며 있었을 것이다. 그런 부담은 지난해 7월 숨을 거두기 전까지 계속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번에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무죄선고를 가장 반가워할 사람이 아마 고 회장일 것 같다. 크게 화를 낼 상황일지도 모른다. 계절이 바뀌고 있다. 고인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빈다.  <주희춘>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