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농고 진학하고 씨름부 스카웃 제의를 받았다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운동장에서 친구들과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다. 물론 학업성적도 크게 뒤떨어지지 않았지만 운동과 노는 것이 더 즐거웠다. 6.25전쟁중이었지만 전쟁중이라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정도로 학교를 다니는 데에 큰 지장이 없었다.

내가 정식적으로 운동부 활동을 하게 된 것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였다. 지난호에서 밝혔듯 중학교 입학하자마자 배구부에서 활동하던 선배가 스카웃 제의를 받고 배구부 활동을 했다. 중학교 내내 배구부로 활동하면서 중앙초등학교와 강진농고 운동장에서 연습을 하며 대회에 출전하곤 했다.

평소에는 강진에서 연습을 했고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서는 주변 지역 학교들과 교류전을 하기도 했다. 교류전은 주로 바로 이웃인 해남, 영암 등의 학교와 연습경기를 하곤 했는데 이때 연습경기 성적은 좋은 편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국적으로 배구팀이 많았지만 특히 광주와 전남지역에 배구부를 운영하는 학교들이 많았다. 광주와 전남지역에서 강진중학교 배구부는 성적이 좋았기 때문에 도대표로 뽑히기도 했다.

한번은 광주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전국대회가 열렸는데 이때 광주와 전남지역 대표로 강진중학교 배구부로 출전을 했다. 나름대로 그동안 해남과 영암 등 도내 여러 학교들과 연습경기를 하며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임했으나 전국대회 첫경기에서 대전의 한밭중학교를 만나 완패를 당했다. 이 대회로 전국대회의 벽이 높구나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경기였다.

이렇게 중학교 시절 내내 배구부 활동을 해왔던 나는 강진농업고등학교에 입학했다. 농고에 입학하자 또래에 비해 신체조건이 좋았던 탓인지 이번에도 강진농고 씨름부로 활동했던 선배들이 나를 찾아왔다.

선배들은 함께 씨름을 해보자고 권유했고 씨름부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씨름은 어려서부터 동네 모래사장에서 자주 하고 놀았기 때문에 자신도 있었던 종목이었다.

이때 강진농고에서도 배구부가 있었지만 배구보다는 씨름부의 성적이 더 좋아 학교의 주종목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씨름에 재능이 있었던 탓인지 1학년때부터 대회에 출전했다. 강진농고 씨름부는 전남권에서는 적수가 없을 정도로 잘했기 때문에 전남도 대표로 전국대회에 자주 출전하곤 했는데 나도 주전 선수로 1학년때부터 전국대회 경기에 출전했다.

이때 씨름 경기는 주로 단체전이었는데 5명이서 돌아가면서 경기를 해서 많이 이기는 학교가 이기는 방식이었다.

전국대회에 출전하면서 경상도권 학교들과 자주 경기를 하곤 했는데 이때 씨름의 방식이 전라도와 경상도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는 주로 학교에서 오른씨름이라고 해서 오른쪽 손으로 샅바를 강하게 부여잡고 얼굴을 맞대는 방식을 배웠다. 하지만 전국대회에서 경상도권 팀들은 왼씨름이라고 해서 우리와 정반대 방향으로 씨름을 주로 해왔던 것이다.

이 때문에 전국대회에서 전라도권 팀과 경상도권 팀들이 만나서 경기를 하게 되면 서로 자기방식이 맞다며 작은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결국 심판이 양 선수들을 불러 가위, 바위, 보를 시키고 이기는 쪽 팀이 원하는 방식으로 먼저 경기를 하는 것으로 매듭지어지곤 했다.

이때 씨름은 체급이 나눠져 있지 않았는데 어느 날은 경상도 지역의 영신고등학교와 씨름 경기를 하게 됐다. 씨름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타 도 선수와 경기를 하게 됐다.    <정리=오기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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