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충환/ 재광마량면향우회장

내 고향 강진에 들르는 일은 늘 애틋하고도 즐겁다.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 탓에 걱정이 앞서지만 고향이 주는 따뜻함은 언제나 나로 하여금 감사한 마음이 들게 한다.

요즘엔 기쁨이 하나 더 늘었다. 강진군이 다른 지자체는 생각도 못 하는 ‘반값 강진 관광의 해’를 선포하고 경제 위기 극복에 이은 지역경제 활성화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런 든든한 마음을 안고 지난 주말 공적인 일과 동시에 사적인 일로 고향 강진을 찾았다. 영암을 거쳐 풀치재 터널을 막 벗어난 순간, 늘 강진의 이미지를 알려주는 아치형 조형물에 새긴 문구가 나를 들뜨게 했다. 자긍심이라 해야 더 맞는 것 같다.

‘K-컬처의 원조 강진 비색 고려청자, 2024년 반값 가족여행 강진으로 오세요’라고 쓰여 있었다.

놀랐다. 왜 진작 저런 기가 막힌 내용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래 바로 저거야. 어렸을 적 대구면 고려청자 요지 발굴과 어슴푸레 기억나는 강진을 근거지로 한 여러 가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우리 강진은 고려청자의 발상지이자 본고장이지’하는 뿌듯함과 자신감.

반값 가족여행 강진으로 와 달라는 것도 좋았지만 나는 왠지 ‘K-컬처의 원조 강진 비색 고려청자’라는 구절이 더 좋았다.

강진이 세계적으로 유행하는 K-팝, K-뷰티, K-푸드, K-드라마 등 K-컬처의 원조라고 분명히 밝혔기 때문이다. 다른 어느 곳과도 ‘비교 불가’라는 절대 영역으로서 확실한 위치를 점했다는 것에, 언제 어디서나 으스댈 수 있게 됐다. 대 놓고 티는 못 내지만 저 심연의 한 가운데서 올라오는 뜨거움, 그것은 어쩔 수 없다.

고려 비색 청자는 내가 즐겨 보는, 강진군 홈페이지에 연재되는 ‘깨달음의 빛, 청자‘를 읽어보면 더 확연하다. 정찬주 작가의 투철한 역사의식과 글을 풀어내는 솜씨에 늘 감탄하고 있다.

작가는 소설이란 형식에 기댔지만 역사에 근거한 사실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송나라 휘종은 ‘궁중에서 사용하는 백자그릇들을 치우고 모두 청자그릇으로 바꾸라’고 지시했고 ‘청자는 고려를 뛰어넘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고 전한다. 송의 자기는 비밀스런 색, 비색이었으나 고려의 그것은 물총새의 빛깔을 닮았다하여 ‘비색’이었다. 달랐다.

여기에 더, 강진은 신라 때부터 토기를 만들어 온 고장이라 흙을 다루는 기술이 다른 곳 보다 뛰어났다. 강진에는 도기를 빚는 기술이 축적돼 있었고, 무엇보다 청자의 비색을 내는 태토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지방을 압도했다. 개경 왕실에서도 강진 가마들을 관요로 인식할 정도였다.

송나라 사신으로 고려에 왔던 서긍은 귀국해서 휘종에게 올린 보고서 ‘선화봉사고려도경’ 도기항아리 조에서 그림을 그리고 설명했다. ‘도기의 색이 푸른 것을 고려인들은 비색이라고 한다. 근년에 들어 제작이 공교해지고 광택이 더욱 아름다워졌다’라고 썼다.

‘선화봉사고려도경’은 송나라 장사꾼들이 구입해 간 강진 청자들이 황실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 중에 나라의 정식보고서로 인정받기도 했다. 당시 이 같은 인기를 반영해 고려청자는 유럽을 거쳐 이집트까지 흘러 들어가 위상을 드높였다.

뿐만 아니라 남송 학자 태평노인이 저술한 ‘수중금’이란 저서에는 이 세상에서 최고인 것만을 소개한 ‘천하제일’ 편이 있다. 청자는 고려비색 청자, 벼루는 단계의 벼루, 백자는 정요의 백자, 낙양의 모란꽃, 건주의 차, 촉의 비단 등을 꼽았다.

이런 역사의 맥락 속에서 고려청자는 한반도 K-컬처의 원조로서 당시 세계 최강이던 중국을 매료시켰다. 자신들의 도자기를 뒤로하고 강진 고려청자를 첫 손가락에 꼽고 매우 아꼈다. 이를 강진군이 적극 마케팅하고 있다.

강진은 K-컬처의 원조이다. 고려 비색청자의 혼을 되살리고 계승하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고 한다. 강진의 더 밝은 내일이 기대된다. 고향 강진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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