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국/ 전 순천향대 교수(작천 이마마을 출신)

안식(安息)의 사전적 의미는 편안(便安)히 쉼(쉴식=息=숨쉴식;호흡)입니다. 창세기 2장 7절에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生氣;breath of life)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living being)이 되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여섯째 날에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창조하신 후, 일곱째 날에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시고 안식하셨습니다(rested from all his work). 여기서 편안히 쉼(안식)이 호흡(breath)과 밀접하게 연결됨을 알 수 있습니다.

십계명(十誡命, Ten Commandments)은 하나님사랑의 네 계명과 이웃사랑의 여섯 계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네 번째 계명이 안식일(the Sabbath)을 반드시 준수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삶 속에서 六일 동안의 할 일(misson)을 행(行)하기 전에 먼저 안식일을 준수하여 절대자와의 접속(존재 만남)을 위한 편안한 쉼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입니다.

쉼은 숨이고 목의 숨(목숨)이고 명(목숨命)이며, 명(命)에는 신명(身命)과 혜명(慧命)이 있습니다. 쉼을 통하여 몸(身)의 命(건강)과 마음(心)의 命(지혜)을 동시에 수련해야함을 의미합니다.

부처님께서도 호흡 경전인 출입식념경(出入息念經=안반수의경安般守意經=아나 빠나 사띠經)을 통하여 깨달음의 길을 열었습니다. 출식(出息;呼息;般빠나;내쉬는 숨)과 입식(入息;吸息;安아나;들이쉬는 숨)을 통하여 오온(五蘊)인 몸(色)과 마음(受想行識)을 성찰(守意=사띠=四念處;身受心法)하여, 선정(알아차림)과 지혜(無常,苦,無我)를 꿰뚫어 볼 수 있었습니다. 육년간 몸과 마음의 고행수련 후 칠일 동안 완전한 쉼(내려놓음)을 통하여 연기와 중도를 깨치셨습니다.

필자는 안식(쉼)을 세 가지(개인, 땅, 공동체)로 나누어 설명하고자 합니다. 인간 개개인의 안식(샤롬)은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기도와 말씀 묵상 및 명상 등을 통하여 자신만의 안식일을 준수하고, 바른 몸의 자세 유지를 통한 원활한 호흡으로 몸과 마음의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7초간 내쉬고(7초 呼息),들이쉬고(7초 吸息), 쉬는(7초 休息; 留氣, 蓄氣과정), 21초 호흡을 하셨으면 합니다. 처음에는 무리함 없이 호식과 흡식의 길이를 같게 시작하여 20초 호흡(호식10초,흡식10초)이 자연스럽게 되면, 유기호흡까지 하는 칠칠칠 호흡(21초 호흡)을 해보시면 좋겠습니다.

땅의 안식은 6년 동안 경작하고 7년째에는 휴경(休耕)하여 땅의 황폐화를 방지하였습니다(레위기 25장 2절-4절).

공동체의 안식은 희년(喜年, year of jublee, 레위기 25장 10절)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오십 년 째 해에 사람과 땅에 자유(自由)를 선포(proclaim liberty)하고, 종(從)된 신분과 땅의 경작권이 타인에게로 이전된 것을 원래대로 환원하는 평등(平等)의 희년입니다.

이러한 자유와 평등 개념은 주요 종교가 추구하는 궁극의 목표(ultimate goal) 입니다. 그 가르침은 재물과 권력과 명예 등의 감옥에 갇혀 그것들의 從살이 하는 삶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도록(自由 自在하도록) 하는 것 입니다.

기독교에서는 구약의 율법을 피상적으로 지키는 위선적 행위(行爲)를 지양(止揚)하고, 오직 예수님을 확실히 믿는 믿음으로써 그것에 의지하여 감옥으로부터 탈출(자유)하고, 모든 것에 거리낌 없는(하나여서 평등하고 자재한) 삶을 영위하도록 강조하고 있습니다(마태복음 11장 28절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성경의 맨 마지막 부분인 요한계시록 21장 1절-4절에서도 새 하늘(new heaven)과 새 땅(new earth)에 하나님 백성이 그의 장막(帳幕;God's dwelling place=오욕 칠정의 감옥에서 탈출하여 자유롭고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처)에 居하니, 그곳에는 눈물도, 사망도, 애통도, 아픔도 없는 자유롭고 하나 되어 평등한 낙원의 회복(復樂園)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세속적인 것들(은산철벽의 감옥)에 무관심하게 대처하여 내려놓으면(止, 殺) 무심(無心)한 상태가 되어 자유롭게 되고(쉼), 평소의 삶 속에서 逆 작용을 했던 그것들이 오히려 順 작용을 활발(活潑)히 하게 되어, 평상심(平常心)이 유지되는 殺活 自在의 중도(中道)의 삶을 살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 삶 속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스스로의 노력(自力)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여기에서 등장한 것이 소위 화두(話頭)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화두도 자신의 처지에 알맞은 것을 스승이 잘 제시해 주어야 하고, 본질에 대한 믿음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은산철벽의 막다른 골목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던 성경의 인물이 구약 욥기(Job)의 주인공 욥(Job) 입니다. 욥기 23장 8-9절에 사방(東西南北)이 막혀(은산철벽의 감옥), 어떻게 할 바를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서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장 10절)는 말씀을 믿고 의지하여, 결국은 그 곤경으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은 삶 속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 편하게 쉴 수 있는(안식할 수 있는) 인간  관계와 시간, 공간을 확보하고 계신지요? 우리의 삶 속에서 궁극적 목표로 설정하기 쉬운 우상들(돈 권력 명예 이름 등)을 내려놓고, 안식일을 지켜 하나님 나라의 장막에 居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십계명 1-4계명;하나님사랑).

이것은 반야심경의 색불이공(色不異空) 즉 현상계의 모든 것(色=우상+비우상)은 불변하는 독자적 실체가 아니므로 즉 항상 변화하고(無常) 다른 것에 의존하는(연기緣起하는) 허상(虛像)이므로, 절대적 自性(불변하는 독자적 실체)이 존재하지 않은 空(緣起공)과 다르지 않다(不異)는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사랑과 금강경의 핵심적 가르침대로, 현상의 일체의 것들에 집착하지 말고(應無所住) 즉 내려놓고, 時空도 自他도 因果도 없는 절대계인 하나님 나라의 장막에 편히 안식(쉼))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십계명 중 나머지 여섯 계명은 이웃사랑인데, 身(몸) 口(입) 意(마음)로 짓는 불교의 열 가지 惡業(十惡)을 금(禁)하는 것과 대동소이합니다.

즉 이웃사랑은 하나님 나라의 장막에서 편히 쉬고만 있지 말고(應無所住), 집착으로부터 자유로운 절대계로부터 發現되는 순수하고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서(而生起心) 이 세상을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자신, 가정, 사회, 국가, 세계 등)에서도 이루어지도록(주기도문)’ 하여야겠습니다. 

독자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하나님 나라(낙원,극락)로 변화시키는데 적극 동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그 시작이 바로 쉼(안식)입니다. 매일 日常 속에 쉼을 주는 삶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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