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바닷가에서 잡힌 거북이 세계에서 어느 정도 인지…

그림 강화경
그림 강화경

 

“많은 사람들이 절대 안 된다고 신탁통치를 반대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 힘이 약하니까 그렇게 된 거야. 결국 북위 38도선을 따라 우리나라가 둘로 갈라져 버렸어.”
순간 교실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듯했다. 아이들은 그냥 고개만 끄덕끄덕했다.   
“우리가 사는 남쪽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이승만 대통령이 대한민국 정부를 세웠어. 그렇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 거지. 북쪽은 소련의 지원을 받아 김일성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세웠고…….”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더했다.
“사람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서로 욕심을 부리면 전쟁이 나기 마련인 게야. 전쟁에선 힘이 있는 쪽이 이기겠지? 힘이 비슷하면 절대 전쟁이 일어나질 않아! 그러니까 너희들도 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 힘 있는 나라도 만들어야 되고. 하지만 아무리 힘이 세다고 해도 힘자랑을 해선 안 돼. 그러다 보면 싸움이 날 테니까. 힘보다는 서로 대화하면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해. 알겠지?”
아이들이 한목소리로 “예!” 하고 대답했다. 선생님은 나라와 대통령과 전쟁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수업을 마친 상원은 아이들과 늦게까지 뛰어놀았다. 담임 선생님이 안 온 날이라서 그런지 운동장도 비어 있는 것처럼 썰렁하게 느껴졌다.
해질 무렵 집으로 가던 상원은 기눅굴 앞에 서 있는 남자 아이를 보았다. 상원과 키가 비슷했다. 낯이 설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아니다. 누굴까? 그 아이는 학교 공부를 마치고 곧바로 이리로 온 모양이었다. 땀에 젖은 얼굴이 반들반들했다. 어깨에 책보자기를 둘러맨 채였다.
상원이 다가가 먼저 말을 걸었다.
“야, 너도 거북이 보러 왔냐?” 
“응.”
“어디서 왔어?”
“내동마을. 이름은 김재용이고.”
재용의 왼쪽 눈썹 위에 까만 콩알 같은 점이 눈에 띄었다. 상원은 그 점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러고는 픽 웃었다.
“나는 정상원. 그런데 너는 점용이라 불러야 맞겠다.”
재용의 손이 얼른 눈썹 위로 올라갔다.
“이 점 때문에? 그럼 점용이라 불러라.”   
둘은 마주보며 웃었다. 한바탕 같이 웃고 나니 친해진 기분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이 얘기하는 걸 들었어. 바다에서 온 거북이 여기 있다고.” 
재용은 훗날 배를 타고 싶었다. 멀리 바다로 나가 고기를 잡는 일이 꿈이다. 그래서인지 먼바다에서 왔다는 붉은바다거북이 몹시 궁금했다.
“공부 끝나고 곧바로 20리 길을 걸어왔다니까.”
“갈 때는 어쩌려고? 곧 어두워질 텐데.”
검정고무신을 신은 재용의 발등에 흙이 뿌옇게 묻어 있었다. 어둠이 짙어지자 상원은 재용이가 20리 길을 또 어떻게 걸어갈지 걱정이 되었다.
“상원아, 부탁이 있어.”
“뭔데?”
“너희 집에서 자고 내일 아침에 가면 안 돼? 발도 아프고, 캄캄한 밤중에 더는 못 걸을 것 같아.”
“집에서 널 기다릴 텐데.”
재용은 옆집 사는 같은 반 친구에게 기눅굴에 간다고 일러두었다고 했다. 그래도 부모님께 혼쭐 날 각오는 단단히 하고 있었다.
“그래, 가자.”
상원은 재용의 손을 잡아끌었다.
“고마워.” 
재용은 처음 만난 상원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둘이 나란히 누워 금세 잠에 떨어졌다.


6. 대통령의 명령 
집무실에 들어오자마자 대통령은 비서실장을 찾았다. 
“각하, 부르셨습니까?”
대통령은 며칠 전 해수가 나온 신문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명령하듯 말했다.  
“당장 주미 대사에게 이 거북에 대해 알아보라고 하시오.” 
“각하, 거북의 어떤 점을 알고 싶으십니까?”
“길이가 6척(2m 정도)인 이 거북이 세계에서는 몇 번째로 큰 거북인지 궁금하오.”
대통령은 거북의 크기와 몸무게가 세계 일등이기를 바랬다. 이 거북이 일등이라면 자기가 받을 복과 행운도 그만큼 클 것 같았다.
“지난밤에 거북 생각만 했소. 내 기대가 큽니다.”
“알겠습니다, 각하.”
비서실장은 받아든 신문을 조심스럽게 접었다.
“잘 알아보고 결과를 빨리 알려 주시오.”
“예, 각하.”
비서실장은 자신만만했다. 
‘기눅굴에 갇혀 있는 그 거북이 평상만 한 크기라는데, 그보다 더 큰 녀석이 세계에 또 있을까?’
그는 곧바로 미국에 있는 한국 대사관으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주미 한국 대사관이지요?”
“예, 그렇습니다.” 
대사관은 나라를 대표해서 다른 나라에 나가 일을 하는 곳이다. 
“경무대 비서실입니다. 대사님을 부탁합니다.”
잠시 후 주미 대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 바꿨습니다.”
“대사님, 서울이에요. 경무대 비서실장입니다.”
“아, 예, 실장님. 주미 대사입니다. 무슨 일인지 어서 말씀하십시오.”
“우리 각하의 지시가 내려졌습니다.”     
“예, 말씀해 주십시오.”    
대사의 목소리가 차렷 자세라도 하듯이 굳어졌다.  
“이번에 우리나라 남쪽 바닷가에서 평상만 한 거북이 잡혔답니다. 근데 그게 세계에서 어느 정도로 큰 것인지 알아보라고 하십니다.”
“예? 거북이요?”  
대사는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잠시 말을 끊었다. 거북이라니. 무슨 정세 보고도 아니고 뜬금없이 거북의 크기를 알아보라니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각하께서 거북에게 관심이 많으시군요.”
대사의 말을 듣고 비서실장이 큰 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그러게요. 우리 정부가 세워진 지 일 주년인데, 경사스런 일이 생겼다고 좋아하십니다.”
“경무대가 들뜬 분위기이겠군요.”
“그런 셈이지요. 신문기사를 보냈으니 얼른 알아봐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대사는 부하 직원인 서기관에게 거북에 대해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급하게 워싱턴의 AP통신(미국 연합통신)으로 달려갔다. 그곳에 가면 세계 여러 나라의 정보를 정확하게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서기관은 AP통신 직원에게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직원은 애매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거북에 대해 알아보러 오셨다고요?” 
“그렇습니다.”
“그것 참. 그런 질문은 처음입니다.”     
AP통신 직원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더니 서기관에게 미국 정부 관련 부처 한 곳을 소개해 줬다.  
“여기로 한 번 가 보십시오.”
“아, 예.”
이름과 약도를 받아든 서기관의 눈이 반짝 빛났다. 
“거기 가서 어류동물 정보 전문가 ‘로라 디스’ 여사를 만나 보세요.”
“감사합니다.”
서기관은 미국 정부 관련 부처에서 일하는 로라 디스 여사를 찾아갔다. 그녀는 한국 서기관을 친절하게 맞아줬다.  
“로라 디스 여사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세요?”  
하얀 피부에 큰 눈을 굴리며 그녀가 물었다.
서기관은 대한민국에서 잡힌 거북 이야기를 꺼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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