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랑생가 앞에 탑이 있어 탑동이라 했다

 

강진읍권 행정마을의 중심지다. 마을의 중심에 강진군청이 자리잡고 있고, 군청 주변에 주택이 즐비하다.

지금의 영랑생가 앞에 탑이 있어서 탑동(塔洞)이라는 마을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탑을 찾을 수 없다.

대신 해방후까지 마을의 한 주택에 석불이 있었다는 마을사람들의 증언을 감안할 때 이 일대가 불교유적이 있었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추정할 뿐이다. 탑동마을의 경계도 넓다.
 

구암정이다.
구암정이다.
마을회관이다.
마을회관이다.

 

남쪽으로는 우체국 건너편 새중앙병원부터 시작해 경찰서 좌측 골목이 동쪽의 경계다. 북쪽으로는 보은산 꼭대기까지 간다고 하며, 서쪽으로는 보은산 약수터를 포함해 고성사로 이어지고, 이곳에서 다시 남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고성저수지를 지나 순복음교회까지가 탑동이다. 

또 강진읍은 풍수지리학상 황소가 누워있는 형국이라고 한다. 지방의 중추관아인 동헌, 즉 지금의 군청이 소머리의 신경이 집중한 콧등 부분라고 한다. 군청청사에는 아주 오래전 칠성당이 있었다고 하니까 이 부지가 강진에서 굉장히 쎈 땅 임에는 틀림없다. 

 골목에 식당이 있다.
골목에 식당이 있다.
영랑생가에 눈이 쌓였다
영랑생가에 눈이 쌓였다

 

탑동마을은 2000년 강진향교입구~군청~서문정을 잇는 2차선 도로가 뚫리면서 교통이 획기적으로 발전했다. 영랑생가가 관광지가 되고, 마을 뒤쪽에 세계모란공원이 생긴 것도 마을에 이동인구가 많은 이유중의 하나다.

세계모란공원 동쪽의 일부 부지가 탑동으로 들어간다. 무엇보다 마을에 강진군청이 있어서 공무원들과 주민들이 쉴새없이 오가는 것은 탑동마을을 여느마을 보다 활기차게 하고 있다.

군청은 1417년부터 지금의 자리에 있었다. 1429년부터 1475년까지 송계(지금의 성전면 수양리 일대)로 옮겨 간 47년을 빼면 558년이나 됐다. 현재 강진군청에는 500여명의 공직자들이 근무하고 있다. 지금까지 해방이후 45명의 군수가 거쳐갔다. 군청사 내에는 강진군의회가 함께 자리잡고 있다. 현재 9대 군의회가 활동하고 있다.

여기저기 골목이 많다.
여기저기 골목이 많다.
읍교회에서 군청으로가는 골목.
읍교회에서 군청으로가는 골목.

 

시문학파기념관은 강진의 대표적 시인인 영랑 김윤식(1903∼1950), 김현구 시인(1904∼1950)뿐 아니라 1930년대 순수서정시 운동을 주도한 시문학파 9인을 기리기 위해 2012년 개관했다. 영랑생가 바로 옆에 시문학파 기념관이 있다.

보은산 약수터는 강진읍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강진읍 보은산 등산로에 구암정(鳩岩亭)이란 정자가 있다. 구(鳩)는 비둘기 구자다. 비둘기 바위 정자란 뜻이다. 비둘기바위는 특별한 역사가 있는 곳이다.

1919년 강진장날인 4월4일 정오에 강진읍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를 신호로 독립운동가 김후식 선생이 태극기를 비둘기바위에 꽂은 후 오응추, 김제문 선생등이 선언서와 태극기를 강진읍장에 나온 군중들에게 나눠줬고 이기성 선생이 선두에서 만세를 부르자 들불처럼 만세운동이 확산됐다고 한다./주희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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