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도 그렇고 나라도 그렇고 욕심을 부리면 전쟁이 나는거야”

그림 강화경
그림 강화경

 

상원은 갑자기 서울 용자 고모가 떠올랐다. 
‘우리 고모도 이 신문을 봤으면 좋겠네.’ 
고모는 작년에 시집을 갔다. 고모부는 서울 종로 어딘가에서 자전거 고치는 가게를 했다. 고모가 시집 가던 날 상원과 동생 연초는 가지 말라고 고모 옷자락을 붙잡고 울었다.  
 마침내 이승만 대통령이 살고 있는 경무대에서도 이 기사를 읽게 되었다. 비서실 직원들이 신문을 들고 대통령에게 다가갔다.    
“각하, 오늘도 축하드리옵니다.” 
“또 무슨 일이오?”
비서실장이 신문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1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우리나라 바닷가에 바위만 한 거북이 나타났다 하옵니다.”
“허허허. 정말이오?”
“아마 파랑새를 대신해서 찾아온 것 같습니다.”
석 달 전에도 날개에 흰 무늬가 있고 털빛이 파란 파랑새가 창경원 나뭇가지에 앉아 있었다. 
경무대 직원들은 대통령에게 듣기 좋은 말만 했다. 
“각하! 창경원에 파랑새가 날아왔다 합니다. 각하의 취임 일 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하늘에서 보낸 사절단인가 봅니다.”
“맞습니다, 각하.”
“허허허. 고맙소.”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냥 행복감에 잠겼다. 그는 창경원에 나타난 파랑새가 자기를 위해 일부러 찾아들었다고 믿었다. 그 파랑새가 많은 행운을 가져다 줄 것만 같았다. 대통령은 파랑새가 오래오래 창경원에서 살아 주길 바랬다. 하지만 어느 날 파랑새는 훨훨 날아가 버렸다. 
대통령은 아직도 날아가 버린 파랑새를 아쉬워했다. 그런데 대신에 거북이 나타나 준 거였다.   
“각하, 천년을 살아온 평상만 한 거북이라 합니다.”
“나라의 운을 번성시킬 경사스러운 일 아닙니까?”
이번에도 비서들은 기분 좋은 말들을 쏟아냈다.
“맞는 말이오.”   
대통령은 이번만큼은 거북을 꼭 붙들고 싶었다. 비서들은 계속해서 거북 이야기를 이어 갔다.  
“각하, 이 거북은 귀한 붉은바다거북이라 하옵니다.”
대통령은 입꼬리를 올리며 활짝 웃었다. 거북이야말로 자신에게 복을 주기 위해 나타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 오후 대통령은 아내 프란체스카와 경무대의 뒤뜰을 거닐었다. 
“오느을 무스은 일 좋아(오늘 무슨 좋은 일 있어요)?”
이승만 대통령 부인은 한국말이 서툴렀다. 오스트리아 여자였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이승만은 1931년에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서 열린 모임에 갔다. 그때 그곳에서 그녀를 만나 사귀게 되었고 나중엔 결혼까지 했다.  
“아주 좋은 일이 있었소. 천년을 살아온 거북이 우리나라에 나타났다오.” 
“거복?”
이승만 대통령은 빙그레 웃었다. 
“거복이 아니고 거북.”
“한구말 어려요(한국말 어려워요).”
“어렵지 않소. 곧 익히게 될 거요.”
대통령은 잠시 북악산을 바라보았다. 경무대를 안고 있는 북악산은 언제나 조용했다.
“거어복 지금 어디 있어오(거북이 지금 어디 있어요)?”
“경무대엔 없소. 앞으로 데려올 생각이오.”
대통령은 신문에 난 거북 소식에 온통 마음이 쏠려 있었다. 아직 만나 보지 못했지만 행운을 가져다 준다는 거북. 지난번 파랑새는 날아가 버렸지만 이번 거북은 오래오래 곁에 둬야지. 행운, 복, 권력이란 말들이 자꾸 대통령의 마음에 들어왔다. 하나님을 믿는 대통령이었다. 미신인 줄 알면서도 거북을 믿고 싶었다.

방학이 끝나고 학교가 문을 열자, 상원은 아침마다 바닷가 기눅굴에 들렀다. 물이 빠진 시간에는 거북이 잘 보였다. 해수는 짧고 굵은 다리를 움직여 기어 다니며 상원의 이야기를 듣곤 했다.
“거북아, 잘 잤어? 학교 갔다 올게. 이따 봐.”
‘한눈팔지 말고 잘 다녀와.’
해수는 등껍질에 숨겨 둔 머리와 다리를 쏙 내밀며 알은체 했다. 상원이 알아듣는지는 알 바 아니었다.
그날은 상원의 교실에 뜬금없이 옆 반 선생님이 들어왔다. 담임 선생님이 집에 일이 생겨 대신 들어온 것이다. 옆 반 선생님은 국어나 산수(수학)가 아닌 역사 이야기만 들려줬다.
어른들이 늘 하는 얘기였지만, 다시 들어도 어렵고 재미가 없었다. 6학년 형들이라면 알아들을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런데 짝꿍 동수는 궁금한 게 많은지 질문을 여러 번 했다.         
“선생님!”
동수는 툭하면 손을 들었다. 
“알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1945년 8월 15일에 일본이 망하면서 우리가 나라를 다시 찾았잖아요.”
“그랬지.”
“그런데요, 왜 남과 북으로 나뉘어졌나요? 이제 북쪽은 다른 나라가 된 거예요?” 
“아휴. 너 참 똑똑하구나.”
“히히, 반장이잖아요.”
반 아이들이 동수를 바라보며 큰 소리로 웃었다. 동수의 질문은 사실 상원도 가끔 궁금했던 내용이다. 왜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나뉘어졌는지 이유를 알고 싶었다.  
“응, 그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선생님은 되도록 알기 쉽게 말을 이었다.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욕심 때문이지. 나라마다 땅을 넓히려는 욕심. 침략전쟁을 하다 보니 더욱 욕심이 생겨나서…….”
“땅 따먹기요?”
어떤 아이가 물었다. 
“아니. 그건 너희들이 하는 놀이고. 일본이 우리나라를 차지한 후에 중국을 쳐들어가고 또 미국 진주만까지 공격을 했지. 유럽에선 독일의 히틀러가 전쟁을 일으켜서 전 세계가 아주 난리가 났어. 이걸 제2차 세계대전이라 부른단다. 알겠니?”
상원은 눈만 껌벅였다. 아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게 보였다.
‘나만 모르는 거야? 히틀러는 대체 누구지?’
“미국을 공격한 일본 때문에 전쟁은 더욱 복잡해졌어. 그동안 미국은 유럽의 나라들과 손잡고 독일을 상대로 싸웠는데, 이제는 일본까지 상대해야 했으니까. 결국 미국은 세계 최초로 만든 원자폭탄을 일본에다 꽝! 떨어뜨려 버렸단다.” 
이 이야기도 어른들한테 자주 들었던 거였다. 
“핵폭탄을 맞은 일본이 1945년 8월 15일 무조건 전쟁에서 졌다고 항복 선언을 했어. 덕분에 일본에게 빼앗긴 우리나라를 다시 찾게 된 거지.”
선생님은 목소리를 살짝 낮추며 반 아이들에게 고루고루 눈길을 줬다. 
“일본이 망해서 우리나라는 독립을 했지만 바로 그 다음이 문제였어. 이제 미국과 소련이 우리나라를 욕심냈거든. 오랫동안 일본의 지배를 받았기에 우리 스스로 나라를 세울 힘이 없다는 거였어.”
“…….”
“5년 동안 우리나라를 북위 38도선 위쪽은 소련이 맡고 아래쪽은 미국이 맡아서 지배하겠다는 거야. 이걸 ‘신탁통치’라고 했어. 나 원 참.”
선생님은 한숨을 쉬었다.
“미국과 소련이 남의 땅을 가지고 자기들끼리 멋대로 정해 버린 거야.” 
“못하게 막았어야죠.”
동수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막으려고 했지만 우리끼리 갈라져서 쉽지 않았어. 못하게 반대한 쪽은 반탁, 찬성한 쪽은 찬탁이라 주장하며 서로 싸웠단다.”
선생님은 동수의 눈을 보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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