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에 젊은 청년 농부들이 더 많아져야 합니다”

남영선씨가 올해 수확한 쌀을 선보이고 있다. 남 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의 아들도 현재 한국농수산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하며 농부의 길을 걷기 위해 준비중이다.
남영선씨가 올해 수확한 쌀을 선보이고 있다. 남 씨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부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의 아들도 현재 한국농수산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하며 농부의 길을 걷기 위해 준비중이다.

 

강진은 젊은층의 외부유출로 인해 인구감소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 인구감소를 막고 젊은이들을 지역으로 유입시키기 위해 군은 민선8기 들어서 청년정책과 신규마을 조성, 아동수당 지급 등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이는 달리말하면 그만큼 인구를 유입시키는 일이 어렵다는 반증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지역에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부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는다.

작천면 중당마을에는 아버지가 걷던 농부의 길을 걸고 있으며 자신의 아들도 농부의 길을 권하며 살아가고 있는 청년이 있다. 바로 작천 중당마을의 남영선(44)씨이다.

아버지보며 농부의 삶 선택
남 씨는 작천초등학교와 작천중학교, 강진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농수산대학에서 축산을 전공했다. 한번도 고향을 떠난적이 없는 청년이다. 남 씨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버지의 농사일을 도왔다. 평생 농부의 길을 걸어온 셈이다.

남 씨의 아버지는 축산업과 농업에 종사했다. 남 씨가 어린 시절 집에서는 젖소 120마리를 키웠고 그 외에도 논 50마지기 정도에서 벼농사도 함께 지었다. 초등학교 시절 남 씨는 아버지를 도와 들에서 심부름을 하기도 하고 볏짚을 모으는 일을 도왔다.
 

남영선씨가 건조기를 작동시키고 있다.
남영선씨가 건조기를 작동시키고 있다.

 

조금 더 성장했을 무렵인 중학교 시절부터는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배웠다. 아버지 대신 축사의 소들에게 볏짚과 사료를 공급하기도 했고 들에서 모내기 등의 일을 돕기도 했다.

이후부터는 아버지 대신 축사를 관리하고 벼농사를 지으며 학교를 다녔다. 낮에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고 학교가 끝나는 오후시간에는 농사일을 했던 것.

이렇게 또래 친구들이 운동장에서 놀거나 학원을 다닐때 남 씨는 농부의 삶을 선택했던 것이다. 남 씨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부가 된 이유는 농촌에서도 충분히 잘 살수 있다는 믿음때문이었다.

남 씨가 어린시절 아버지는 소를 키우면서 벼농사를 했고 적지 않은 소득을 올리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다. 여기에 마당에 나오면 월출산이 보이고 조금만 걸어가면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고 나무와 숲, 꽃들이 곳곳에 있는 모습이 좋았다.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즐거웠고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야겠다는 점도 아버지의 뒤를 이어 농부의 길을 선택하게 된 이유중 하나였다.

10대 시절부터 농사일 도와
이렇게 해서 아버지를 따라 10대 어린시절부터 축사관리와 벼농사를 도맡아하기 시작했고 한국농수산대학에서 전문적인 지식까지 배운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농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10여년전까지는 아버지가 운영해왔던 젖소를 사육해왔으나 10여년전 모두 처분하고 지금은 벼농사에만 매진하고 있다.

작천면방범대원들과 함께 떡국봉사를 하고 있다.
작천면방범대원들과 함께 떡국봉사를 하고 있다.

 

현재 남 씨는 작천면 중당마을 인근 들녘 약 200마지기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고 그 외에 조사료 작물인 이탈리안라이그라스도 160㏊정도 재배하고 있다. 그 외에 볏짚과 퇴비를 만들어 판매하는 일도 하고 있다.

퇴비생산은 관내 축산농가들로부터 원재료를 공급받아서 자신의 비어있는 축사에서 일정기간 부숙과정을 거쳐 퇴비로서 기능을 할 수 있게되면 주변 농민들에게 판매하는 일을 하고 있다.

특히 작천 들녘은 벼농사와 함께 마늘까지 논에서 재배하고 있기 때문에 퇴비 공급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야만 땅의 기운을 복돋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남 씨가 1년이면 약 4천톤정도 퇴비를 생산해 각 농민들에게 공급하고 있다. 직접 돈을 받고 판매를 하기도 하고 8톤당 900평 농토의 볏짚으로 대신 가져오기도 한다. 가져온 볏짚은 또다시 하나로 묶어 축산농가에 되팔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일년내내 쉬지 않고 열심히 농사일을 하며 지내면서 적지 않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일정 소득을 올리고 지역에서 자리를 잡게 되면서는 지역에서 다양한 사회단체에 가입해 고령의 어르신들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선택했다.

사회단체 활동 참여 적극
남 씨가 현재 활동하고 있는 단체는 크게 작천면농업경영인회와 작천면청년회, 작천면방범대, 강진군한우협회 등 4개와 그 외에 청자로타리클럽에 가입해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여러단체중 작천면농업경영인회는 회원으로 가입한 지 약 6년정도 됐으며 현재 사무국장으로 단체의 살림살이를 맡고 있다.

남 씨는 여러 회원들과 함께 단체에 속해있는 공동경작지에서 농사를 짓고 그곳에서 얻은 수익금을 활용해 지역내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성금을 기탁하거나 학생모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교인 작천초등학교에 장학금을 전달하기도 한다.

또 청년회에서는 10년째 활동중인데 지역내 각종 도로변 풀베기와 벌초대행 일을 하며 깨끗한 작천면을 만드는데 일조하고 있다. 또 작천면방범대는 벌써 20년째 활동하고 있으며 매년 회원들과 수확한 쌀의 일부를 모아 떡국떡을 만들어 지역 어르신들에게 전달하는 일도 해오고 있다.

남씨는 현재 트랙터 5대, 포크레인 2대, 덤프트럭, 베일러, 예취기 등 농사일에 필요한 농기계는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청년회나 방범대에서 대형 농기계가 필요할때면 항상 가장 먼저 앞장서서 재능기부 봉사를 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많은 눈이 내려 제설작업이 필요할때에도 트렉터 등을 동원해 지역 청년들과 함께 제설작업을 하는데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이덕분에 관내에서도 작천면은 제설작업이 빠른 곳이라는 이야기도 들을 정도다.

남 씨는 “앞으로 가업2세 농업인들을 넘어 3세들도 농촌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 수 있도록 하는데 앞장서고 싶다”며 “지역 청년들과 함께 힘을 모아 청년들이 작천으로 유입돼 살 수 있도록 토지임대 등 필요한 지원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 등을 고민중이다”고 말했다.           /오기안 기자 

저작권자 © 강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