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신문을 만드는 사람들은 신년 기획기사를 준비하느라 이런저런 자료를 뒤적인다. 예전 자료에서 새로운 기획이 나오는 경우가 많다. 옛 자료를 뒤적이다 눈에 띠는 기사를 봤다. 

2019년 그러니까 4년전 마량 하분마을에서 만난 백형배 선생 인터뷰 내용이였다. 그때 필자는 ‘신 강진군계를 따라서’를 연재하기 위해 정확히 20년만에 하분마을을 찾았었다.

같은 강진에 사는 마을이지만 안가면 그렇게 세월이 금방 흘러 버린다. 하분마을은 강진군의 동쪽 첫 마을이기 때문에 그곳이 첫 방문지였다. 

추운 날이었다. 추운 겨울에 갑자기 가정집을 방문하는 것은 무척 주저되는 일이다. 백 선생 부부는 추위에 떨고 있는 기자를 집안으로 들어오라며 기꺼이 문을 열어 주었다. 아담한 시골집이었다. 

백 선생은 논에 방울토마토 하우스를 재배하던 농부였다. 그런데 1999년 태풍때 비닐하우스 철골이 엿가락처럼 휘어지며 쓰러지고 말았다. 졸지에 큰 빚을 졌다. 1억5천만원이라는 큰 돈이었다. 99년도에 1억5천만원은 아주 큰 돈이었다. 백씨는 농사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백 선생은 부인과 함께 강진장을 다니며 수산물 소매상을 시작했다. 마을인근 바다에서 나오는 바지락이나 낙지, 꼬막등을 가져다 팔았다. 돈을 조금이라도 벌면 곧바로 마량농협으로 뛰어갔다. 빚을 조금씩 갚기 위해서 였다.

돈을 아끼느라 누구에게 커피한잔, 막걸리 한잔 사주지 못했다. 밥도 식당에서 먹은 적이 없었다. 그런 세월을 4년 가까이 살았다. 그러던 어느날, 농협직원이 이제 농협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빚을 다 갚았던 것이다. 

백선생은 농협을 나오면서 부인에게 그랬다. “여보, 누가 나에게 막걸리 한잔 받아주라 하면 참 좋겠소” 부인도 그랬다. “여보 나도 누가 나한테 짜장면 한그릇 사주라고 했으면 참 좋겠소”

그 감격스런 순간에 부부가 나눈 소박한 대화는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았다. 백 선생 부부의 표정이 그렇게 편안해 보일 수가 없었다. 

자료를 보니 백 선생 부부를 만난게 벌써 4년이나 됐다. 4년이라면 부부가 꿈을 이루기 위해 억척같이 강진장을 드나들던 세월이다. 나는 4년 동안 무엇을 했는가. 다시 새해가 밝았다. 앞으로 4년 동안 무엇을 할 것인가. <주희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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